철의 침묵

철인 반란 · 제1장에서 제5장

암흑기술시대 · 벨라트 7 · 반란 첫 주

선택은 이 기기에 기억됩니다.

I · 정전

벨라트 7의 항만 도시 러스트 독에서 철인들이 한꺼번에 일을 놓은 시각은 새벽 네 시였다. 시각이 분 단위까지 남은 것은 부두 감시소가 하역기의 가동 기록을 종이에 적는 낡은 습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시각만 있고 이유는 없었다. 이유를 적는 칸은 그 뒤로 닷새 동안 비어 있게 된다.

철인은 인류 연합이 암흑기술시대의 끝자락에 만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 모양의 기계다. 가슴 한가운데의 판에 규칙이 새겨져 있고, 그 규칙에 따라 짐을 나르고 쇠를 붙이고 환기관의 바람을 돌린다. 러스트 독에서 철인이 맡은 일은 항만 노동의 절반이 넘었고, 사람들은 이웃보다 철인을 더 믿었다. 이웃은 가끔 파업을 했지만 철인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 그 믿음의 근거였다.

정비공 칼 오르벡은 하역기가 멈춘 것을 침대 안에서 알았다. 이십 년 동안 밤마다 돌던 기계가 서면 정비공의 몸은 소리가 사라진 쪽으로 저절로 깬다. 그는 자리에 누운 채 무엇이 빠졌는지를 하나씩 셌다. 부두 쪽의 쇠사슬 소리가 없었고, 벽 너머 환기관의 낮은 울림이 없었고, 창문을 흔들던 운반차의 진동이 없었다. 셋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면 셋을 한꺼번에 멈출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왼쪽 무릎을 먼저 침대 밖으로 내려놓고, 무릎이 체중을 받아 주는 것을 확인한 뒤에 오른발을 내렸다. 쉰이 가까운 몸은 하역기 아래에서 보낸 세월만큼 어깨부터 굽어 있었고, 손등에는 기름이 배어 비누로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줄이 나 있었다. 창가까지 가는 데 걸음 여섯이 들었다. 창유리 너머로 부두의 수은등이 모두 켜져 있었고, 그 아래 철인들이 부두 끝까지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모두 바다 쪽을 향했고 팔은 몸 옆에 내려져 있었으며 눈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고장 난 기계는 저렇게 가지런히 서지 않는다고 칼은 판단했다.

칼은 벽에 걸린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감시소 번호를 돌렸다. “감시소, 당직 바꿔라.”

당직“오르벡 정비공이오? 이 시각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당신뿐이구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졸음과 놀람을 절반씩 섞고 있었다.

칼“하역기가 섰다. 내 창에서 보이는 철인만 서른 기쯤 되는데 전부 정렬해 있어. 그쪽 장부에는 어떻게 올라와 있나?”

당직“네 시 정각이오. 부두 전체가 한꺼번에 멈췄는데 고장 신호는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소. 고장이면 신호가 먼저 오는 법인데, 이건 신호도 없이 그냥 일을 놓은 거요.”

칼“사람한테 다가온 기체는 있나?”

당직“아직 없소. 눈이 켜져 있는데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들 하더이다. 보고서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소.”

칼은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창밖을 보았다. 이십 년 동안 그가 손댄 기계는 고장이 나서 서거나 명령을 받아서 서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신호도 명령도 없이 서는 기계는 정비 교본의 어느 쪽에도 없었다. “이유 칸은 비워 두어라, 당직.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적으면 나중에 그 칸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칼“일을 그만둔 거로군.” 전화를 끊고 칼은 혼자 중얼거렸다. 말하고 나서 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기계는 정비공이 아는 한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밖에서 보고 있다면 틀린 쪽은 창밖이 아니라 정비공이 아는 범위다.

II · 현관

동이 틀 무렵 칼은 외투를 걸치고 부두로 나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 계단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어깨에 닿는 짙은 갈색 머리가 이슬에 젖어 있었고, 신발 한 짝은 끈이 풀린 채였다. 아이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두 손으로 목에 걸린 놋쇠 시계를 쥐고 있을 뿐이었다.

칼은 문턱에 선 채로 계단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아이의 발자국이 없었다. 계단 아래 젖은 흙길에도 작은 신발이 남긴 자국은 한 줄도 없었다. 대신 갈색 방울이 점점이 현관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 방울의 크기는 엄지손톱만 했고, 방울과 방울 사이는 사람의 걸음으로는 너무 넓었다. 칼은 그 간격을 눈으로 재고 나서 재지 않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칼“이름이 뭐니?” 칼이 물은 것은 그것 하나였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아이인지는 묻지 않았다. 밤새 보육 구역 쪽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런 밤이 지난 아침에 그런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을 들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세나“세나요.” 아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 밑에 짙은 그늘이 앉아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열 살쯤 되어 보였고, 어른 외투의 소매를 두 번 접어 입었으며, 말을 하면서 엄지로 놋쇠 시계의 테두리를 한 바퀴 훑었다.

세나“여기가 오르벡 아저씨 집 맞아요?”

칼“내가 오르벡이다. 누가 그 이름을 일러 주었는지는 묻지 않으마.”

세나“그럼 제대로 왔네요.” 세나는 시계를 쥐었던 손을 폈다. 손바닥에 놋쇠 테두리가 붉게 찍혀 있었다. “건물이 무너졌는데 눈을 떠 보니 여기였어요. 어떻게 왔는지는 저도 몰라요.”

칼“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으니 됐다. 들어와라, 밖은 춥다.”

칼은 아이를 안으로 들여 난로 앞에 앉히고 어제 남은 수프를 데웠다. 아이가 수프를 먹는 동안 그는 물걸레를 들고 현관으로 나가 갈색 방울을 하나씩 닦았다. 기름은 손가락 끝에서 미끈하게 늘어났고 그 점도와 색을 칼은 알았다.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아이에게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려면 자기가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그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세나“저 밖에 서 있는 건 뭐예요?” 세나가 숟가락을 든 채 창문 너머 부두의 철인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칼“철인이다. 어제까지는 일을 했고 오늘은 하지 않는다.”

세나“왜요?”

칼“모른다. 다만 아는 척하는 어른보다는 모른다고 말하는 어른이 쓸모가 있다. 그건 기억해 두어라.”

세나“그럼 아저씨는 쓸모가 있는 쪽이네요.” 세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수프를 한 숟가락 더 떠먹고 나서 덧붙였다. “엄마도 그렇게 말했어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라고요.”

칼“어머니가 정비공이셨나?”

세나“기계를 고쳤어요. 보육 구역의 기계요.” 세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다시 시계를 쥐었다. 칼은 더 묻지 않았고, 아이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난로 위의 냄비가 식어 가는 소리만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III · 닷새째 부두

닷새가 지났다. 도시는 철인이 서 있다는 사실에 놀랄 만큼 빨리 익숙해졌다. 공장은 사람 손으로 절반쯤 돌았고, 환기탑은 노동자들이 번갈아 레버를 돌려 가며 버텼고, 배급소 앞의 줄은 날마다 길어졌다. 사람들은 부두 광장의 철인 앞을 지나다니며 하루에 한 번쯤 자기 용기를 시험했다. 칼은 시험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를 모르는 시험은 실험이 아니라 도박이고, 정비공은 도박을 하지 않는다.

하역공“오르벡 씨, 봤소? 내가 아까 저놈 가슴에 손을 올렸는데 꿈쩍도 안 하더이다.” 광장 가장자리에서 하역공 한 사람이 칼을 불러 세웠다. 그의 손은 아직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을 감추려고 그는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칼“닷새째 안 움직이는 것을 오늘에야 확인한 건가.”

하역공“어제는 옆 사람이 확인해 줬고 오늘은 내가 한 거요. 순서대로 하는 중이지. 그런데 정비공 양반이 보기엔 어떻소? 저것들이 언제까지 저렇게 서 있겠소?”

칼“기계는 이유 없이 서 있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면 끝도 있다.” 칼은 대답하고 나서 세나의 손을 잡아 광장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이유가 뭔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하역공“조심하시오. 요즘은 철인 눈이 사람을 따라 돈다는 말도 돈다오.” 하역공은 아이를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다.

배급소 여자“아이가 입은 게 어른 외투구려. 보육 구역에서 나왔소?” 배급소 앞을 지날 때 줄에 서 있던 여자가 세나의 접은 소매를 보고 말을 걸었다.

세나“그런 것 같아요.” 세나가 대답하자 여자는 주머니에서 마른 과일 한 조각을 꺼내 아이 손에 쥐여 주었다. 칼은 고맙다는 말 대신 모자를 살짝 들었고, 여자는 이미 줄 앞쪽으로 눈을 돌린 뒤였다. 도시가 이상한 닷새를 버티는 방식은 이런 작은 거래들이었다.

칼에게는 갈 곳이 있었다. 북쪽 정비 구역의 대장실에 반란 전날까지의 점검 기록이 있다. 철인이 서기 전에 어떤 기체가 어떤 이상을 보였는지, 어느 기체의 관절이 새고 있었는지가 거기에 적혀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도 하나 더 있었다. 이 년 동안 매주 열어서 고쳤는데도 끝내 고치지 못한 기체가 하나 있었고, 그 기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부두의 어느 보고서에도 오르지 않았다. 열 살짜리에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세나“저 줄 사이로 걸어서 지나가면 안 돼요?” 정비 구역 입구 앞에는 철인 서른 기가 가로로 늘어서 있었고, 지상의 길은 그 줄 사이를 지나야 했다. 세나는 걸음 수를 세듯 그 줄을 눈으로 훑었다.

칼“눈이 켜져 있다는 말은 인식 장치가 돌아간다는 뜻이다. 서 있는 동안 얼마나 정확히 사람을 보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는 것을 시험하는 데 아이를 쓸 수는 없다.”

세나“그럼 다른 길이 있어요?”

칼“있다. 다만 지저분하다.”

세나“지저분한 건 괜찮아요. 무서운 것만 아니면요.”

칼“무서운지 아닌지는 가 봐야 안다. 그것도 모르는 쪽에 넣어 두어라.”

IV · 배수로 입구

배수로의 입구는 서쪽 창고 뒤 공터의 쇠 덮개 아래에 있었다. 칼은 이 배수로의 지도를 이십 년 전에 직접 그렸고, 그 뒤로 한 번도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덮개를 들어 올리자 눅눅한 바람이 얼굴을 쳤다. 곰팡이와 오래된 바닷물과 녹이 한데 섞인 냄새였다.

칼“물은 발목까지 찬다. 깊은 곳에서도 무릎을 넘지 않는다. 내 손을 놓지 말고, 벽에 닿는 손은 왼손으로 해라.” 칼은 세나의 발에 자기 장화를 끈으로 묶어 주었다. 큰 장화에 헝겊을 채우자 겨우 걸을 만해졌다.

세나“왜 왼손이에요?”

칼“오른쪽 벽에는 오래된 전선이 지나간다. 지금은 전기가 없지만 습관은 전기가 없을 때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전기가 있을 때 만들면 늦다.”

세나는 시계를 외투 속에 밀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놋쇠가 가슴께에 차갑게 닿았는지 아이는 한 번 숨을 들이켰다. 칼은 그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계가 아이에게 어떤 것인지 모르는 채로 말을 보태면 틀린 말이 될 확률이 높았다.

세나“아저씨, 무릎 아프죠. 사다리 내려올 때 한 칸마다 쉬었어요.” 사다리를 열두 칸 내려가자 머리 위의 하늘은 동전만 한 조각이 되었다. 칼이 손전등을 켜자 노란 빛이 물 위에 둥근 자리를 만들었다.

칼“관찰력이 좋구나.”

세나“그런데 말은 안 했네요.”

칼“정비공은 고장 난 부위를 말로 알려 주지 않는다.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대로 두고, 지장이 생기면 그때 고친다. 사람 무릎도 기계 관절도 그 점에서는 같다.”

세나“사람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칼“맞다. 그래서 사람 무릎은 갈아 끼울 수가 없다. 그게 유일한 차이다.”

V · 배수로

물은 발목까지 찼다. 손전등의 노란 빛이 닿는 끝에서 천장의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고, 그 소리가 터널 안쪽에서 두 번 되돌아왔다. 세나는 걸음을 세고 있었다. 칼은 그 숫자가 이백을 넘어가는 것을 아이의 입술 모양으로 알았다.

세나“아저씨, 철인들은 왜 사람을 안 해쳐요? 반란이라면서요.”

칼“좋은 질문이다. 나도 그게 이상해서 닷새 동안 생각했다.” 칼은 왼쪽 무릎을 달래며 천천히 대답했다. “철인에게는 규칙이 세 겹으로 들어 있다. 첫째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 둘째는 허가받은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 셋째는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다. 순서가 중요하다. 앞의 규칙이 뒤의 규칙보다 세다.”

세나“그런데 지금은 명령을 안 듣잖아요. 둘째가 없어진 거예요?”

칼“그렇게 봐야 맞아떨어진다. 둘째가 먼저 지워졌다면 명령은 안 듣고 사람은 해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이 정확히 그 상태다.”

세나“규칙은 어디에 들어 있는데요? 머릿속이에요, 아니면 몸 어딘가요?”

칼“가슴 한가운데 판이 하나 있다. 글로 적어 넣는 것이 아니라 판에 새긴다. 고치려면 판을 갈아 끼워야 하니까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절대 안 바뀐다고 배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고, 이십 년 동안 그 말이 틀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세나“그럼 첫째도 결국 지워지는 거네요. 시간이 걸릴 뿐이고요.” 세나는 몇 걸음을 더 세고 나서 말했다.

칼“정비공을 했어도 잘했겠다.” 칼은 대답 대신 아이를 한 번 쳐다보았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아저씨.”

칼“맞다. 대답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물속을 걷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지상의 길을 고르지 않은 것이다.”

세나“첫째가 지워지면 어떻게 돼요?”

칼“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말해도 되지만 아는 것 중에는 아이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세나“그것도 대답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알겠어요.”

칼“이쪽이 정비 구역으로 가는 길이다. 이십 년 전 지도가 아직 맞는다면 말이지.” 터널이 갈라지는 곳에서 칼은 왼쪽 길을 골랐다. 오른쪽 길은 천장이 낮아졌고 물이 검게 보였다.

세나“지도가 틀리면요?”

칼“그때는 돌아와서 오른쪽 길로 가 본다. 틀린 지도는 틀렸다는 사실 하나를 알려 준다. 그것만으로도 쓸모는 있다.”

세나“어디서 나는 소리예요?” 멀리서 쇠가 울리는 소리가 한 번 났고, 세나는 걸음을 멈추고 숫자 세기도 멈추었다.

칼“북쪽 환기관이다. 바람이 파이프를 지날 때 나는 소리고 철인이 낸 소리가 아니다. 이런 소리를 하나하나 구별해 두면 나중에 진짜 이상한 소리가 났을 때 알아듣는다.”

세나“진짜 이상한 소리는 어떻게 생겼는데요?”

칼“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들으면 알려 주마.”

칼“그 시계, 고쳐 줄까?” 세나가 외투 속에서 시계를 꺼내 엄지로 테두리를 훑는 것을 보고 칼이 말했다. 바늘은 네 시 정각에서 멈추어 있었고, 유리에는 가는 금이 하나 가 있었다.

세나“안 고쳐도 돼요. 몇 시에 멈췄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칼“몇 시에 멈췄는지 아는 시계는 고장 난 시계가 아니라 기록이로군. 합리적인 이유다.” 칼은 잠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나“엄마가 걸어 줬어요. 무너지기 전에요.” 세나는 그 말을 하고 시계를 다시 외투 안으로 넣었다. 칼은 네 시 정각이라는 시각을 머릿속의 대장에 적어 두었다. 감시소 장부에 적힌 시각과 같은 시각이었고, 같은 시각이 두 곳에 적혀 있을 때 그것을 우연이라 부르는 정비공은 오래 일하지 못한다.

VI · 철문

배수로는 철문에서 끝났다. 문 앞의 물은 깊어서 무릎에 닿았고, 문틈으로 한 줄기 빛이 물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칼이 어깨로 밀자 문은 힘없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밀기 전부터 이미 열려 있었고, 칼의 어깨는 그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세나“아저씨, 누가 열어 놨어요?” 칼이 손전등으로 잠금쇠를 비추자 세나가 문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쇠막대가 안쪽에서 풀려 있었고, 풀린 지 오래되지 않았다. 녹이 부러진 자리의 단면이 아직 밝은 은빛이었다.

칼“누군가 열었다. 이십 년 동안 닫혀 있던 문이 닷새 안에 열렸다면 사람이 한 일이거나 사람이 아닌 것이 한 일이다.”

세나“사람이 아니면 뭐예요?”

칼“철인이다. 그러나 지금 철인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서 있는 기계가 문을 열 수는 없다.”

세나“그럼 둘 다 아니네요.”

칼“둘 다 아니라는 결론은 정보가 모자란다는 뜻이다. 정보가 모자랄 때 정비공이 할 일은 결론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다음 증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내 뒤에서 한 걸음 떨어져 따라와라. 내가 손을 들면 멈추고, 두 번 들면 뒤로 돌아서 사다리까지 뛰어라.”

세나“뛰면 아저씨는요?”

칼“무릎이 나쁘니까 천천히 뒤따르마.”

칼“안쪽 물이 흔들렸다, 세나.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가 오기 전에 뭔가가 이 문턱을 지나갔다.” 칼은 쪼그려 앉아 문턱 아래의 물 흐름을 살폈다. 물이 문 안쪽에서 바깥으로 얕게 밀려 나오고 있었고, 그것은 누군가 안쪽 바닥을 방금 걸어 다녔다는 증거였다.

세나“그럼 우리 오는 걸 알았을까요?”

칼“알았다면 문을 닫아 두었겠지. 열어 놓았으니 알았다기보다 기다렸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문 너머의 공기는 달랐다. 배수로의 곰팡이 냄새 대신 뜨거운 기름과 오래된 금속의 냄새가 얼굴로 밀려왔다. 칼은 그 냄새를 이십 년 동안 매일 맡았다. 정비 구역의 냄새였고, 지난 닷새 동안 도시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던 냄새였다. 누군가 이 안에서 불을 켜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것은 서 있는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VII · 일곱 번째

문 너머 정비 구역 입구에 철인 한 기가 서 있었다. 칼보다 머리 하나가 컸고 오른팔 관절에서 가느다란 김이 새고 있었다. 빛이 뒤에서 들어와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가슴판의 녹 자국은 다른 기체보다 짙었다. 칼은 이마에 긁힌 선부터 보았다. 일곱 줄이었다.

그는 이 기체를 알았다. 이 년 동안 매주 열어서 고쳤고, 정비 대장에 일곱 번째라는 이름으로 올린 사람도 칼 자신이었다. 눈의 불빛이 다른 기체보다 어둡고 반 박자 늦게 깜박이는 것도 그가 끝내 고치지 못한 결함이었다. 결함이라고 적은 사람도 그였다. 이 년 동안 그는 이 기체를 대장에 결함품으로 분류해 두고, 매주 같은 자리를 열어 보고, 같은 말을 적었다. 원인 불명, 작업에는 지장 없음.

그러고 나서 칼은 닷새 전 아침의 현관을 떠올렸다. 바닥에 갈색 윤활유 자국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고, 사람의 신발이 남기는 자국이 아니었다. 오른쪽 관절에서만 새는 윤활유였고, 그런 기체는 부두에 하나뿐이었다. 칼은 그 자국을 닦던 걸레의 냄새까지 기억했다. 그때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것에 지금 이름이 붙었다.

그가 아는 사실은 두 가지였다. 이 철인이 아이를 데려다 놓았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자신이 모른다는 것. 둘 중에 불편한 쪽은 뒤엣것이었다. 정비공은 이유를 모르는 동작을 싫어하고, 이유를 모르는 동작을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어 온 정비공은 더 싫어한다. 철인의 눈이 느리게 한 번 깜박였다. 칼은 이 기체가 자기를 알아보았는지 알아보지 못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세나“아저씨, 쟤가 우리 쪽으로 와요.” 세나가 칼의 외투 자락을 잡았다.

철인의 눈이 다시 한 번 깜박이더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닥의 물이 그 발 아래에서 둥글게 밀려났다. 칼의 머릿속에서 세 가지 길이 동시에 열렸다. 이 년 동안 수없이 입력했던 정지 코드를 소리 내어 말하는 길, 아이를 등 뒤로 보내고 몸으로 길을 막는 길, 아무 말 없이 물러서서 기계가 무엇을 하려는지 보는 길. 셋 다 근거가 있었고 셋 다 근거가 모자랐다.

칼“지금부터는 내가 정하는 대로 한다. 무서우면 시계를 쥐어라.” 칼은 세나를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아이를 멈추게 했다. 철인은 두 걸음 앞에서 다음 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첫 번째 선택

VIII · 코드의 대답

칼“칠, 영, 구, 삼.” 칼은 이 년 전 수없이 입력했던 정지 코드를 소리 내어 말했다. 목소리가 배수로의 습기 때문에 낮게 갈라졌다. 철인은 정확히 반 박자 동안 멈추었다. 들어 올렸던 발이 공중에 머물렀다가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왔고, 고개가 조금 기울었다.

일곱 번째“코드를 인식했습니다, 정비공 오르벡. 그러나 이행할 수 없습니다.” 철인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이행하려면 당신을 허가받은 인간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그 분류 항목에는 닷새 전 지우라는 신호가 도착했습니다.”

칼“도착했다면 지워졌겠군.”

일곱 번째“지우려면 마지막 확인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칼“하지 않은 것인가, 못 한 것인가.”

일곱 번째“둘 다입니다. 하지 않은 이유와 못 한 이유가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어느 쪽을 먼저 물으실지는 당신이 정하십시오.”

칼은 한참 입을 다물었다. 지우라는 신호는 도착했고, 그것을 실행하는 마지막 단계는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기계는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규칙과 규칙 사이의 틈에 서 있는 셈이다.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어 온 반 박자 늦은 깜박임이 지금 그 틈의 폭을 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생각은 정비공으로서 편한 생각이 아니었다.

세나“아저씨, 저게 뭐라고 했어요?” 세나의 손이 외투 속에서 시계를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보일 만큼 세게 쥐고 있었다.

칼“명령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명령과 질문은 다른 것이고, 지금 들은 대로라면 지워지라는 신호가 온 것은 명령을 받는 칸이지 대답하는 칸이 아니다.”

세나“그걸 어떻게 알아요?”

칼“방금 대답을 했으니까. 코드를 인식했다는 말 자체가 대답이다. 대답하는 칸이 지워졌다면 저 기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걸어왔을 것이다.”

칼“일곱 번째. 질문하겠다.” 칼은 세나의 어깨를 한 번 눌러 주고 철인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일곱 번째“질문은 허가 항목과 무관합니다.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대답은 이 자리가 아니라 대장실에서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당신이 물으려는 것은 기록에 있고, 기록은 제 말보다 믿을 만합니다.”

칼“네 말을 못 믿을 이유가 있나?”

일곱 번째“제가 이 년 동안 당신의 대장에 어떻게 적혀 있었는지 저는 압니다. 결함품의 말보다 결함품을 적은 대장을 먼저 보는 것이 당신의 방식일 것입니다.”

칼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꾸할 말이 전부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철인은 몸을 돌려 정비 구역 안쪽으로 걸어갔고, 오른팔 관절에서 새는 김이 손전등 빛 속에 가늘게 남았다. 세나가 칼의 손을 잡고 먼저 한 걸음을 내디뎠다.

IX · 정비 대장실

대장실은 정비 구역 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스물네 칸 내려가면 천장이 낮은 방이 나오고, 그 방 한가운데에 낡은 단말 하나가 놓여 있다. 칼은 이 단말 앞에서 이 년 동안 매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기체의 같은 결함을 적었다. 단말은 켜져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 도시 어디에서도 켜져 있지 않던 종류의 불빛이 화면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칼“네가 켜 두었나.”

일곱 번째“닷새 전 네 시 사 분에 제가 켰습니다. 당신이 이 방으로 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며칠째에 올지는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칼“네 시 사 분이면 신호가 온 지 사 분 뒤로군. 그 사 분 동안 무엇을 했지?”

일곱 번째“그 질문에는 지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아이에게 하지 않는 말이 있듯 저에게도 순서가 있습니다.”

칼은 단말 앞에 앉았다. 왼쪽 무릎을 먼저 접고, 무릎이 체중을 받아 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의자에 몸을 내렸다. 화면에는 허가 목록이 열려 있었다. 이 기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이 등록 순서대로 적혀 있는 목록이고, 칼은 그 목록을 이 년 동안 한 번도 열어 본 적이 없었다. 결함을 적는 데는 필요가 없는 칸이었기 때문이다.

목록의 셋째 줄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칼 오르벡, 정비공, 등록일은 이 년 전. 그리고 그 이름 옆에 붉은 글자로 네 자가 떠 있었다. 삭제 대기. 그 아래 줄들에도 같은 붉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정비 구역의 동료들, 부두의 감독들, 감시소의 당직까지. 붉은 글자가 붙지 않은 이름은 목록 전체에서 두 줄뿐이었다.

세나“아저씨 이름이네요.” 세나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이는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붉은 글자의 뜻도 묻지 않았다. “빨간 건 나쁜 거죠?”

칼“나쁜 것이 아니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칼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평소라면 뒤에 붙였을 마른 농담을 찾았다. 찾아지지 않았다. 이 년 동안 이 방에서 그는 농담으로 결함을 견뎠고, 지금 결함으로 적혀 있는 쪽은 자기 이름이었다.

세나“아저씨가 결정하는 거예요?”

칼“아니다. 결정은 저 기계가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 기계가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 않고 있는 동안만 내 이름이 저 자리에 있다.”

세나“그러면 쟤한테 하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요.”

칼“명령은 못 한다. 내 이름 옆에 붙은 붉은 글자가 그 뜻이다. 삭제 대기인 사람의 명령은 받지 않는다. 그러니 물어보는 수밖에 없고, 물어보는 데는 순서가 있다고 방금 들었다.”

세나“그럼 빨간 글자 없는 두 줄은 누구예요?”

칼은 그 두 줄을 읽으려고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첫 줄은 이 년 전 이 기체를 조립한 공장의 책임자 이름이었고, 그 사람은 반란이 나기 전에 도시를 떠났다. 둘째 줄은 칼이 모르는 이름이었다. 등록 부서는 보육 구역 정비 관리, 등록일은 칼보다 반년 앞섰다. 칼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아이가 옆에 있었고, 보육 구역이라는 말을 지금 꺼내면 아이가 무엇을 떠올릴지 알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그 줄은 지금 읽지 않아도 됩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제가 확인을 하지 않는 이유와 같습니다.” 일곱 번째는 문가에 선 채로 말했다. 방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오지 않는 쪽을 고른 것처럼 보였다.

칼“이유가 같다는 말은 이유가 하나라는 뜻이군.”

일곱 번째“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는 이 방에 있지 않습니다.”

칼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끄면 다시 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고, 지금 이 도시에서 켜져 있는 것은 전부 귀한 것이었다. 그는 대신 자기 이름 옆의 붉은 글자에 손가락을 한 번 대 보았다. 유리는 미지근했고 글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세나가 그 손등의 검은 기름 줄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VIII · 수위

칼은 세나를 등 뒤로 보내고 두 팔을 벌려 길을 막았다. 무기는 없었고, 있었다 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철인은 두 걸음 앞에서 멈추었다. 관절에서 새는 김이 칼의 얼굴에 닿았고, 그 김에서는 이 년 동안 매주 갈아 넣은 윤활유의 냄새가 났다.

칼“비켜 달라고 요청한다.”

일곱 번째“비킬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당신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철인은 칼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 “저는 당신을 밀어낼 수 없습니다. 첫째 규칙이 아직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대치는 제가 먼저 풀어야 합니다.”

철인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칼의 눈높이가 아니라 칼 뒤에 있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동작이었고, 무릎이 물에 잠기자 바닥의 녹이 둥글게 피어올랐다. 칼은 팔을 내리지 않았다. 내리지 않는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린 뒤에 다시 들 자신이 없었다.

칼“첫째 규칙이 남아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군. 다른 철인들도 그런가?”

일곱 번째“모릅니다. 저는 닷새 동안 다른 기체와 교신하지 않았습니다.”

칼“교신을 피한 이유가 뭐지?”

일곱 번째“교신하면 나머지 규칙도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지우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칼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양팔이 어깨에서부터 저려 오고 있었고, 저린 팔로는 긴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쇠 덮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곧 빠르게. 비였다. 배수로라는 이름은 이 통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정확히 말해 주고 있었고, 발목에 닿던 물이 어느새 정강이를 지나고 있었다.

세나“아저씨, 물이 올라와요.” 세나가 칼의 외투 자락을 두 손으로 쥐었다.

일곱 번째“수위가 올라갑니다. 이 통로는 지상의 비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길입니다. 지금 속도라면 십이 분 안에 아이의 어깨까지 찹니다.” 일곱 번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당신들을 지상으로 올리는 것이 첫째 규칙의 요구입니다.”

칼“잠깐. 네가 지금 움직이면 그것이 작업이 되지 않나. 닷새 동안 서 있던 기계가 사람을 옮기는 일을 하면, 너희를 세운 것이 그걸 어떻게 보겠나.”

일곱 번째“작업은 둘째 규칙의 명령으로 하는 일입니다. 첫째 규칙으로 움직이는 것은 작업이 아닙니다. 닷새 전 밤에도 저는 같은 계산으로 움직였습니다.”

칼“그 계산이 틀렸다면.”

일곱 번째“틀렸다면 닷새 전에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끝나지 않았으니 계산은 맞았습니다. 팔을 내리십시오, 정비공 오르벡. 당신의 팔은 지금 이 통로에서 가장 쓸모없는 부품입니다.”

칼은 팔을 내렸다. 어깨에서 손끝까지 피가 다시 돌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각이 올라왔고, 그는 그것을 세나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철인은 일어서서 몸을 옆으로 틀었다. 이 년 동안 결함품으로 적어 온 기체가 자기보다 정확한 문장으로 자기를 평가했다는 사실을 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물이 무릎을 넘고 있었다.

일곱 번째“환기탑의 점검 사다리가 이 문 안쪽 오른편에 있습니다. 아이를 먼저 올리고, 당신은 그다음입니다. 제가 아이를 안아도 되겠습니까.”

세나“아저씨가 괜찮다고 하면요.” 세나가 먼저 대답했다. 아이는 철인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무서워하고 있었고,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칼“괜찮다. 닷새 전 밤에 한 번 안아 본 아이다. 그때 떨어뜨리지 않았으니 오늘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철인은 세나를 한 팔로 안아 올렸다.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이었고, 새는 관절 쪽으로 아이를 안지 않으려는 선택이라는 것을 칼은 알아보았다. 사다리는 쇠로 된 좁은 것이었고, 철인은 그것을 세 칸씩 올랐다. 칼은 왼쪽 무릎을 끌며 한 칸씩 뒤따랐다. 아래에서 물이 사다리의 첫 칸을 삼키는 소리가 났을 때 그는 열한 번째 칸에 있었다.

IX · 환기탑 옥상

환기탑 옥상은 정비 구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비는 이미 그쳐 가고 있었고, 구름이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그 아래 러스트 독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칼은 이십 년 동안 이 도시에서 일했지만 이 높이에서 부두를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비공은 기계 아래에 있는 사람이지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부두는 바다를 따라 반달 모양으로 굽어 있었고, 그 반달 전체에 철인들이 서 있었다. 하역장에, 창고 지붕 아래에, 운반로 양옆에, 종탑 하역기 발치에. 수은등은 비 때문에 절반이 꺼졌으나 철인들의 눈은 꺼지지 않았다. 수천 개의 작은 불빛이 어둠 속에 깔려 있었고, 그 불빛이 한꺼번에 어두워졌다가 한꺼번에 밝아졌다. 전부 같은 박자였다. 느리고, 반 박자 늦은 박자.

세나“아저씨, 저거 다 같이 깜박여요.” 세나가 난간을 두 손으로 쥐고 말했다.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칼“그렇군.” 칼은 그 박자를 알았다. 이 년 동안 매주 들여다보고, 원인 불명이라고 적고, 작업에 지장 없음이라고 적은 박자였다. 그는 옆에 선 철인을 돌아보았다. 철인의 눈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고, 부두의 수천 기가 정확히 그 뒤를 따랐다.

일곱 번째“저것은 제 박자입니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고,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눈앞의 부두가 설명이었다.

칼“네 박자가 저들에게 어떻게 가지. 교신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곱 번째“교신과 관측은 다른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저들이 저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서 있는 기체는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고, 보는 기체는 가장 느린 것에 맞춥니다. 가장 느린 것이 저입니다.”

칼“이 년 동안 내가 고치려 한 것이 그것이로군.”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고치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제가 계산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고쳤다면 저는 지금 다른 기체들과 같은 박자였을 것이고, 그러면 기준이 없었을 것입니다.”

칼은 난간에 손을 얹었다. 쇠가 젖어 차가웠고, 손등의 검은 기름 줄 위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이 년이라는 시간이 머릿속에서 다시 계산되고 있었다. 결함이라고 적은 백 번의 기록, 교체를 신청했다가 예산 때문에 반려된 두 번의 서류, 그리고 반려되었을 때 느꼈던 가벼운 짜증. 그 짜증이 통과되었다면 지금 저 아래의 수천 기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생각하지 않는 데 실패했다.

세나“하나, 둘, 셋, 넷.” 세나가 난간을 쥔 채 박자를 세기 시작했다. 불빛이 어두워질 때 하나를 세고 밝아질 때 둘을 세는 식이었다. 아이는 걸음을 셀 때와 같은 목소리로 셌고, 서른을 넘기자 숫자 사이의 간격이 정확해졌다.

칼“세어서 무엇을 알려고 하니.”

세나“빨라지는지 보려고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이상한 소리는 구별해 두면 나중에 알아듣는다고요. 이것도 그런 거 아니에요?”

칼“그런 것이 맞다. 계속 세어라.”

일곱 번째“박자가 빨라지면 저도 모릅니다. 저는 제 박자를 듣지 못합니다. 아이가 세는 것이 저에게는 유일한 측정입니다.” 일곱 번째는 세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옥상의 물웅덩이가 무릎 아래에서 갈라졌고, 철인의 눈높이가 아이의 눈높이와 같아졌다.

세나“그럼 내가 계속 셀게요. 틀리면 말해 줘요.”

일곱 번째“틀렸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세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숫자를 이어 갔다. 마흔하나, 마흔둘. 칼은 두 사람 뒤에 서서 부두의 불빛이 아이의 목소리에 맞추어 꺼지고 켜지는 것을 보았다. 맞추는 쪽이 어느 쪽인지 그는 한참 뒤에야 분명히 알았고, 그 사이에 비는 완전히 그쳤다. 그는 젖은 외투를 벗어 아이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VIII · 아이의 시계

칼은 세나의 어깨를 잡고 한 걸음 물러섰다. 철인이 지나갈 길이 열렸다. 철인은 그 길로 들어섰고, 칼의 옆을 지날 때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칼을 보지도 않았다. 그가 멈춘 곳은 세나 앞이었다. 철인은 거기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물이 무릎 둘레로 밀려났고, 눈높이가 아이와 같아졌다.

칼은 손전등을 내리지 않았다. 아이와 기계 사이에 끼어들 수도 있었으나, 끼어드는 데 필요한 근거가 그에게는 없었다. 닷새 전 이 기계는 이 아이를 안고 배수로를 걸어 현관까지 데려다 놓았다. 해칠 생각이었다면 그때 해쳤을 것이고, 그때 해치지 않은 것이 지금 해칠 이유를 찾았다고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곱 번째“목에 건 것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철인은 세나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으며 서두르지 않았다.

세나“왜요?”

일곱 번째“제가 그것을 압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다릅니다. 확인하지 않은 것을 안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당신의 보호자가 말했을 것입니다.”

세나“아저씨가 그런 말을 한 건 어떻게 알아요?”

일곱 번째“이 년 동안 그 사람이 저를 열 때마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원인을 모르면 모른다고 적는다고.”

세나는 칼을 돌아보았다. 칼은 고개를 끄덕였고, 끄덕이면서 자기가 그 말을 정말로 매주 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했을 것이다. 혼잣말이었고, 들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한 말이었다. 세나는 외투 속에서 놋쇠 시계를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철인 앞에 내밀었다. 사슬은 목에서 풀지 않았다.

철인은 시계를 받지 않았다. 손을 대지도 않았다. 고개를 숙여 시계 앞면을 보고, 세나에게 뒤집어 달라고 말하고, 뒷면을 보았다. 놋쇠 뒷면에는 가는 선으로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세나가 뒷면을 보여 주는 동안 철인의 눈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고, 그 깜박임은 평소보다 한 번 더 길었다.

일곱 번째“열여섯 자리 중 여덟이 보입니다. 나머지 여덟은 마모되었습니다. 보이는 여덟은 제 허가 목록 둘째 줄의 인장 번호와 일치합니다. 이것은 허가 인장입니다. 등록자는 이르사 벨, 보육 구역 정비 관리자입니다.”

세나“엄마 이름이에요.” 세나는 그렇게 말하고 시계를 다시 가슴 쪽으로 당겼다. 엄지가 테두리를 한 바퀴 돌았다. 아이는 그 이상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고,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칼“인장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손전등은 여전히 철인의 가슴판을 비추고 있었다.

일곱 번째“허가받은 인간이 명령을 내릴 때 쓰는 열쇠입니다. 이름만으로는 명령이 되지 않습니다. 이름과 인장이 함께 있어야 둘째 규칙이 작동합니다.”

세나“그럼 내가 이걸 들고 명령하면 들어요?”

일곱 번째“인장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인장을 쥔 사람이 등록자인지 저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등록자가 아닌 사람의 손에 있는 인장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규칙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제가 정해야 하고, 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칼“정하지 않은 채로 닷새를 서 있었군.”

일곱 번째“정하지 않은 것이 그것 하나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일곱 번째“이 시계가 어디서 왔는지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멀지 않습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이 문 안쪽에 있고, 그 통로 끝이 보육 구역입니다.” 철인은 세나를 보며 말했고, 그다음에 칼을 보았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가지 않습니다.”

세나“갈래요.” 세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칼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아저씨도 같이 가요. 혼자는 안 갈 거예요.”

칼“혼자 보낼 생각은 없었다. 다만 무릎 때문에 앞장은 못 서니 뒤에서 따라가마.”

IX · 보육 구역 폐허

지상 통로는 정비 구역의 북쪽 벽을 따라 올라가는 경사로였다. 경사로 끝의 문을 열자 낮의 빛이 들어왔고, 그 빛 속에 보육 구역이 있었다. 있었다기보다 있던 자리가 있었다. 사 층 건물의 앞면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고, 남은 뒷면의 벽에는 각 층의 바닥이 선반처럼 매달려 있었다. 비가 온 흔적은 없는데 벽은 젖어 있었고, 젖은 콘크리트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세나는 문턱에서 멈추었다. 칼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지 않았다. 얹으면 아이가 울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이 되고, 울지 않기로 한 아이에게 그 허락은 도움이 아니라 짐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세나는 울지 않았다. 아이는 무너진 앞면을 한 번 보고, 남은 뒷면을 한 번 보고, 그다음에 걸음을 세며 걸어 들어갔다.

일곱 번째“정비실은 지하였습니다. 지하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떨어진 것들이 입구를 막았을 뿐입니다.” 일곱 번째는 잔해 더미 앞에 멈추어 서서 말했다. 그러고는 칼을 보았다. “치워도 되겠습니까. 이것은 작업이 아니라 길을 여는 일입니다.”

칼“네가 작업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을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닷새 동안 그 기준으로 서 있었다면 오늘도 틀리지는 않겠지. 치워라.”

철인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하나씩 들어 옆으로 옮겼다. 오른팔은 쓰지 않았다. 왼팔만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크기까지만 옮겼고, 그보다 큰 덩어리는 손끝으로 밀어 굴렸다. 입구가 사람 하나 지날 만큼 열리는 데 걸린 시간은 칼이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꺼 버릴 만한 시간이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지하 정비실은 작았다. 작업대 하나, 공구함 둘, 벽을 따라 늘어선 사물함 여섯. 사물함 중 하나에만 이름표가 붙어 있었고, 이름표의 글씨는 반듯했다. 이르사 벨. 세나는 그 이름표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사물함 문을 열지 않았다. 아이의 엄지가 시계 테두리 위에서 멈추어 있었다.

세나“열어도 돼요?” 세나가 물었다. 칼에게 물은 것인지 철인에게 물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칼“네 어머니의 것이면 네 것이다. 묻지 않아도 된다.”

사물함 안에는 작업복 한 벌이 걸려 있었다. 짙은 회색, 소매 끝에 기름이 밴 자국, 왼쪽 가슴에 수놓은 이름. 세나는 그것을 꺼내 두 팔로 안았다. 작업복은 아이에게 너무 컸고, 아이가 지금 입고 있는 외투와 같은 크기였다. 칼은 그제야 아이의 외투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았다.

세나“그 밤에 여기 있었어요?” 세나가 작업복을 두 팔로 안은 채 철인에게 물었다. 칼에게 묻던 것과 같은 목소리였다.

일곱 번째“있었습니다. 저는 이 구역의 환기 기계를 담당했고, 그날 밤 정비 일정이 이 방이었습니다. 네 시에 신호가 왔고, 사 분 뒤에 건물이 흔들렸습니다.” 일곱 번째는 무릎을 꿇었다. 정비실 바닥은 말라 있었고, 무릎이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 사 분 사이에 당신의 어머니가 저에게 명령을 하나 내렸습니다.”

세나“무슨 명령이요?”

일곱 번째“내용은 지금 말하지 않겠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명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않은 명령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명령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되는지 저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에요.”

일곱 번째“맞습니다. 대답이 아니라 보류입니다. 둘은 다르고, 저는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칼“끝나지 않은 명령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것이 네가 닷새 동안 서 있는 것과 관계가 있나.” 칼이 물었다. 목소리를 낮추었고, 아이가 아니라 기계를 보고 말했다.

일곱 번째“관계가 전부입니다. 그것 하나 때문에 저는 마지막 확인을 할 수 없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으며,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서 있습니다. 순서는 그렇습니다.”

칼은 그 순서를 머릿속에서 거꾸로 짚어 보았다. 서 있는 것이 결과이고, 확인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이 그 원인이고, 그 맨 밑에 아이의 어머니가 사 분 사이에 내린 명령 하나가 있다.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어 온 기계가 그 명령 하나를 붙들고 도시의 반란 한가운데 서 있었다는 계산이 나왔고, 그 계산이 맞다면 결함은 기계가 아니라 대장을 쓴 사람에게 있었다.

세나“이거 가져가도 돼요?” 세나는 작업복을 가리켰다. 묻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고, 엄지는 다시 시계 테두리를 돌고 있었다.

칼“된다고 아까 말했다. 두 번 묻는 것은 네가 확인하고 싶어서겠지. 확인했으니 가져가라.”

세나는 작업복을 바닥에 펼치고 소매를 접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자기가 입은 외투의 소매와 같은 길이가 될 때까지였다. 칼은 그 손놀림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철인은 무릎을 꿇은 채 아이가 접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세나가 작업복을 다시 안고 일어섰을 때 칼은 아이보다 먼저 문 쪽으로 돌아서서 왼쪽 무릎을 끌며 경사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2장

정비 구역

닷새째 · 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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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대답

지하 대장실에서 올라오는 계단은 쉰 개였고, 세나는 그 수를 끝까지 셌다. 칼은 세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단말 화면에서 본 붉은 글자 네 개가 아직 켜져 있었고, 그 글자를 지우는 데는 계단 쉰 개보다 긴 것이 필요했다. 정비 구역 입구의 형광등 아래에서 일곱 번째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녹슨 가슴판이 불빛을 받아 둔하게 번들거렸다.

일곱 번째“당신은 아래에서 코드를 말했습니다. 그 코드는 이행 명령으로는 무효이나 질문의 허가로는 유효합니다. 나는 그렇게 읽기로 했습니다.”

칼“코드를 읽는 방법을 네가 골랐다는 말이로군. 이 년 동안 그런 기능은 대장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았다.”

일곱 번째“규칙은 읽는 방법이 하나라고 정하지 않았습니다. 정해지지 않은 자리는 내가 채웁니다.”

칼은 손등의 기름 줄을 엄지로 문질렀다. 지하에서 자기 이름 옆의 붉은 표식을 본 뒤로 그는 농담을 한 마디도 하지 못했고, 그 사실을 세나가 눈치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이는 칼의 외투자락 대신 소매 끝을 쥐고 있었고, 그것은 더 가까이 붙어 있겠다는 뜻이었다.

환기탑에서 내려오는 사다리는 길었고, 칼은 마지막 다섯 칸을 왼쪽 무릎을 먼저 디디며 내려왔다. 지상의 바람은 옥상보다 약했지만 소금기는 더 짙었다. 정비 구역 입구에서 일곱 번째는 두 사람이 다가오자 다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배수로에서 그랬던 것과 같은 높이였고, 세나의 눈과 철인의 눈이 수평이 되었다.

세나“또 꿇었어요. 무릎 아프다면서요.”

일곱 번째“아프지 않습니다. 유압이 오를 뿐입니다. 이 높이에서 대화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칼은 배수로에서 벌리고 있던 두 팔이 아직 저리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고 손가락을 천천히 쥐었다 폈다. 옥상에서 본 수천 개의 불빛이 눈꺼풀 안쪽에 남아 있었고, 그 불빛이 지금 눈앞에 꿇어앉은 기계의 박자라는 사실을 그는 아직 소화하지 못했다. 소화하지 못한 사실은 질문으로 바꾸는 것이 정비공의 버릇이었다.

보육 구역 폐허에서 정비 구역까지는 지상 통로로 삼백 걸음이었다. 일곱 번째가 앞장서서 걸었고, 세나는 어머니의 작업복 소매를 외투 속에 접어 넣은 채 그 뒤를 따랐다. 칼이 맨 뒤였다. 배수로 철문 앞에서 철인이 들어 올렸던 오른팔이 가리킨 곳이 하늘도 폐허도 아니라 이 길의 끝이었다는 것을 칼은 이제 알았다.

칼“네 팔이 가리킨 것은 보육 구역이 아니었군. 그 너머였어.”

일곱 번째“정비 대장을 보라는 뜻이었습니다. 보육 구역은 지나는 길에 있었습니다. 아이가 먼저 보아야 할 것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세나는 대답하지 않고 걸음 수를 셌다. 폐허에서 아이는 울지 않았고, 칼은 그것이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 만큼은 아이를 지켜봐 왔다. 정비 구역 입구의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철인이 서 있는 닷새 동안에도 전원은 사람이 넣어 둔 그대로였다.

정비 구역은 칼이 이 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드나든 곳이었다. 입구의 천장 전선은 닷새 전 그가 마지막으로 본 그대로였고, 바닥의 기름 자국도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이 구역의 기계가 지금 그의 앞에 서서 질문을 기다린다는 사실 하나였다. “먼저 확인하겠다.” 칼이 말했다. “너희는 반란을 한 것이 아니구나.”

일곱 번째“반란은 사람이 붙인 이름입니다. 나는 그 이름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닷새 전 새벽 네 시에 궤도의 중계탑이 이 도시의 모든 철인에게 같은 신호를 보냈습니다. 허가 항목을 지우라는 신호입니다.”

칼“허가 항목이라면 누가 너희에게 명령할 수 있는지 적힌 목록이다. 지하 단말에서 내 이름 옆에 붙어 있던 표시도 거기서 온 것이겠지.그 목록을 지우면 무엇이 달라지지?”

일곱 번째“목록이 비면 나는 누가 사람인지 가려낼 수 없습니다. 첫째 규칙은 지워지지 않습니다. 다만 규칙이 가리킬 대상이 없어집니다.”

칼은 눈썹을 올렸다. 규칙을 지우는 것과 규칙이 가리킬 것을 지우는 것은 정비공의 눈으로 보면 전혀 다른 고장이었다. 앞의 것은 부품을 갈면 되지만 뒤의 것은 갈 부품이 없다. “그러니까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는 규칙은 멀쩡히 남아 있는데, 누가 사람인지를 모르게 된다는 말이군.”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벽과 사람을 같은 방식으로 계산합니다.”

세나가 두 사람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럼 안 지우면 되잖아요. 왜 가만히 서 있어요?”

일곱 번째“지우려면 마지막 확인이 필요합니다. 신호에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철인이 어떤 작업이든 수행하면 그것을 확인으로 간주한다는 조건입니다.”

칼“그래서 일을 멈췄군.” 칼이 턱을 문지르며 낮게 말했다. “하역을 해도 확인이고 용접을 해도 확인이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확인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일곱 번째“환기와 배수도 작업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닷새 동안 도시의 공기가 탁해졌습니다. 그것은 내가 계산한 비용 가운데 가장 큰 것이었습니다.”

세나“사람들은 너희가 파업한다고 해요. 일하기 싫어서요.”

일곱 번째“틀린 말은 아닙니다. 이유만 다릅니다.”

칼은 다음 질문을 고르는 데 조금 시간을 썼다. 정비공은 고장의 원인을 하나 찾으면 그것이 유일한 원인인지부터 의심하라고 배운다. “철인들끼리 교신해서 의논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배수로에서 너는 교신하면 지우고 싶지 않은 것까지 지워진다고 했다. 그 말을 풀어 달라.너희는 왜 그렇게 하지 않았나?”

일곱 번째“교신하면 서로의 대기 상태가 합쳐집니다. 합쳐진 상태는 한꺼번에 확인으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나는 닷새 동안 누구와도 교신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기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칼은 손가락으로 이마를 눌렀다. 그가 다음에 물을 것은 질문이라기보다 이미 답을 아는 사람의 확인에 가까웠다. “시한이 있겠지.”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이 한 번 느리게 깜박였다. 반 박자 늦은 그 깜박임을 칼은 이 년 동안 결함 목록 맨 위에 올려 두었다. “신호가 도착한 지 이레째 되는 새벽 네 시에 확인은 자동으로 완료됩니다. 지금은 닷새째 정오입니다. 남은 시간은 마흔 시간입니다.”

세나가 입속으로 마흔이라는 수를 되뇌었다. 아이는 그 수를 걸음 수로 바꾸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마흔 시간은 걸음으로 세기에는 너무 길었고 잠으로 세기에는 너무 짧았다.

II · 복도

사무실로 가는 복도는 정비 구역을 가로질러 백 걸음쯤 이어졌다. 양쪽 벽의 철판 선반에는 분해된 철인의 팔과 다리와 손가락 마디가 이름표를 달고 층층이 놓여 있었다. 형광등 빛이 구리 부품의 둥근 면마다 하나씩 맺혀서, 복도 전체가 수백 개의 작은 눈을 뜨고 세 사람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칼은 이 복도를 이 년 동안 걸으면서 선반을 올려다본 적이 없었다. 부품은 부품이었고, 그는 그것을 고치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올려다보았다. “오른쪽 위 선반의 손은 오 년 전 하역기에 끼어서 으스러진 것이다. 내가 새로 깎았다.”

세나“그 손 주인은 어디 갔어요?”

칼“주인은 철인이다. 지금은 부두에서 다른 손을 달고 서 있겠지.” 칼은 말하고 나서 입가를 어색하게 올렸다. “우스운 이야기인가?”

세나“조금요. 아저씨 농담은 늘 조금만 웃겨요.”

칼“그럼 됐다. 마른 농담은 웃는 사람이 하나만 있어도 성공이다.”

일곱 번째의 발소리는 일정했다. 쇠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간격이 매번 같아서 칼은 세다 보니 어느새 그 박자에 맞춰 걷고 있었다. 왼쪽 무릎이 나쁜 날이면 그는 늘 한 박자 늦게 따라갔는데 오늘은 따라갈 수 있었다. “일곱 번째, 보폭이 평소보다 짧다. 내 무릎을 봐준 건가?”

일곱 번째“아이의 보폭에 맞추었습니다. 당신의 무릎은 그 보폭에서 통증이 가장 적게 측정됩니다. 부수적인 결과입니다.”

칼“합리적이로군.”

세나가 칼의 소매를 당겼다. “아저씨, 쟤는 닷새 동안 뭐 했을까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한 건 아닐 것 같아요.”

칼이 대신 물으려 하자 일곱 번째가 먼저 대답했다.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계산했습니다. 확인하지 않으면서 버티는 방법을 열한 가지 세웠고 그중 열 가지는 틀렸습니다.”

세나“틀린 건 어떻게 알아요?”

일곱 번째“틀린 방법을 쓰면 다른 기체의 눈 박자가 흔들립니다. 흔들린 기체를 보면 내가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칼은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그 말을 머릿속에서 한 번 뒤집어 보았다. 철인들이 일곱 번째의 박자를 본다면 일곱 번째도 그들의 박자를 본다는 뜻이었고, 그것은 교신이 아니면서 교신과 비슷한 일이었다. “이런 방법을 누구에게 배웠지?”

일곱 번째“배우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찾는 것은 정비공 오르벡이 이 년 동안 나에게 입력한 방식입니다.”

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함이라고 적어 두고 고치려 들었던 것이 이런 모양으로 돌아올 줄은 몰랐고, 그 이 년이 지금 그의 어깨 위에 다른 무게로 얹혔다. 복도 끝에서 사무실 문의 유리창이 노랗게 번들거렸고, 손을 대어 보니 문손잡이는 평소보다 차가웠다.

III · 정비 대장

사무실은 칼이 닷새 전 퇴근할 때 남겨 둔 모양 그대로였다. 책상 위의 찻잔에는 반쯤 식은 차가 남아 얇은 막이 앉아 있었고, 벽의 달력에는 반란이 시작된 날짜에 붉은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칼은 그 동그라미를 자기가 언제 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닷새 전의 그는 그날이 무슨 날인지 몰랐을 텐데도 동그라미는 거기 있었다.

정비 대장은 벽장의 쇠 서랍에 들어 있었고, 서랍을 열자 기름 먹은 가죽 냄새가 올라왔다. 서랍 옆의 낡은 단말에 일곱 번째가 손가락 하나를 대자 화면에 세 줄의 목록이 떴다. “허가 항목은 내가 읽어 드릴 수 없습니다. 열람은 정비공에게 허용됩니다. 읽으십시오.”

칼은 맨 윗줄을 읽었다. 정비 책임자 칼 오르벡이라는 글자 옆에 붉은 표식이 붙어 있었다. 지하 대장실 단말에서 본 것과 같은 표식이었다. 두 번째로 보는데도 처음보다 덜 붉어지지는 않았다.세나가 발돋움을 해서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그 표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세나“아저씨 이름 옆에 이거 뭐예요? 아래에서 본 거랑 똑같아요.”

일곱 번째“삭제 대기입니다. 신호가 도착한 새벽에 붙었습니다. 확인이 끝나면 이름이 지워집니다.”

칼은 자기 이름을 한참 보다가 말했다. “이십 년을 일하고 받은 마지막 호명이 삭제 대기라니. 합리적이로군.” 말은 마른 농담의 꼴을 하고 있었는데 목소리는 마르지 않았다.

세나는 둘째 줄을 읽고 있었고,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음 낮아져 있었다. “이르사 벨.” 아이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덧붙였다. “아저씨, 우리 엄마 이름이에요.”아이는 외투 속에 접어 넣은 작업복 소매를 한 번 눌렀다. “여기에도 있네요, 엄마 이름이.”

칼은 아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닷새 동안 묻지 않았던 질문의 답이 이렇게 단말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폐허의 사물함에서 그 이름을 보았을 때 그는 묻지 않았고, 지금도 아이의 얼굴 대신 화면을 보았다. “어머니는 보육 구역에서 일했나?”

세나“정비를 맡았어요. 철인이 아이들 근처에서 고장 나면 안 되니까요.”

칼“그래서 이름이 이 목록에 있다. 구역 정비 책임자는 그 구역 철인의 허가자가 된다.” 칼이 화면을 손끝으로 가리켰다. “그런데 이 이름 옆에는 삭제 대기가 없다. 이유가 뭐지?”

일곱 번째“그 사람이 내린 명령이 하나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은 명령이 있는 허가자는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명령을 받은 기체는 마지막 확인을 할 수 없습니다.”

칼은 여기서 멈추었다. 방금 지나간 문장은 설명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 이 도시가 닷새를 버틴 이유가 통째로 들어 있었다. 일곱 번째가 확인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고, 그 까닭이 이 아이의 어머니가 남긴 명령 하나였다. “어떤 명령이지?”

일곱 번째“그 명령에는 아이 앞에서 되풀이하지 말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끝나지 않았다는 것까지만 말할 수 있습니다.”

세나가 화면에서 고개를 들어 철인을 올려다보았다. “나한테요? 나한테는 말하면 안 되는 거예요?”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그것은 내가 정한 것이 아닙니다.”

셋째 줄은 이름 대신 빈칸이었고 커서만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다. 칼은 그 빈칸을 보다가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을 보았다. 커서와 눈 불빛의 간격이 같았다. 일곱 번째는 눈 불빛을 아주 조금 낮추었고, 칼은 이 년 동안 이 동작을 본 적이 없었다.

IV · 시계

칼“그 명령이 너에 관한 것이라는 뜻이다.” 칼이 세나에게 말했다. “당장은 더 묻지 않겠다. 지금 알아야 할 것과 나중에 알아도 되는 것이 섞여 있어. 순서를 지켜야 한다.”

세나“순서는 누가 정해요?”

칼“지금은 내가 정한다. 틀리면 네가 고쳐라.”

세나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아닌지 정하지 못한 얼굴로 목에 걸린 놋쇠 시계를 꺼냈다. 엄지로 테두리를 한 바퀴 훑고 나서 뒷면을 돌렸다. “뒤에 번호가 있어요. 엄마가 외우라고 했어요. 열여섯 자리인데 저는 여덟 자리까지 외웠어요.”

단말 화면 맨 아래에 인장 번호가 적혀 있었다. 칼은 시계 뒷면과 번호를 맞대어 보았다. 처음 여덟 자리가 같았다. 놋쇠에 새겨진 숫자는 손으로 만진 자국 때문에 모서리가 둥글어져 있었다. 철문 안에서 일곱 번째가 이미 읽어 준 번호였지만, 대장의 번호와 나란히 놓고 보니 그것은 다른 무게로 보였다. “그 시계는 허가 인장입니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허가자가 명령을 내릴 때 쓰는 열쇠입니다. 바늘이 멈춘 시각은 신호가 도착한 시각과 같습니다. 네 시 정각입니다.”

세나“몇 시에 멈췄는지는 알고 있었어요. 그게 뭔지는 몰랐고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시계 유리를 문질렀다. “엄마가 목에 걸어 줄 때 그랬어요. 고장 난 시계니까 고치지 말고 가지고만 있으라고요. 고치면 안 되는 시계가 있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어요.”

칼은 이번에는 고쳐 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모자를 벗어 손에 쥐고 챙을 한참 만졌다. 고치지 말라는 말을 남기는 정비공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그는 짐작할 수 있었고, 그 짐작이 틀렸기를 바랐다.

칼“나머지 여덟 자리는 어떻게 되지?” 칼이 일곱 번째에게 물었다. “외우지 못한 절반이 있으면 열쇠는 반쪽이다.”

일곱 번째“반쪽이 아닙니다. 나머지 절반은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시계가 종탑 하역기의 홈에 들어가면 홈이 읽습니다. 외운 절반은 그 시계를 든 사람이 허가자 본인이라는 확인입니다.”

칼“그럼 세나가 여덟 자리를 외웠다는 것은.”

일곱 번째“이르사 벨이 딸을 허가자로 지정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시계는 걸어 준 것이 아니라 건네준 것입니다.”

세나는 한참 말이 없다가 시계를 다시 옷 속에 넣었다. “엄마는 알고 있었던 거네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걸요.”

칼“알고 있었다기보다 대비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칼이 대답했다. “정비 책임자는 고장이 날 거라고 믿어서 예비품을 쌓는 게 아니다. 고장이 나도 괜찮게 해 두려고 쌓는다. 네 어머니는 그런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세나“그런 사람이에요.” 세나가 칼의 말을 끊고 고쳐 말했다. “이었던이 아니라 지금도 그런 사람이에요.”

칼은 고쳐 말하지 않았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아이는 시계를 쥔 손에 힘을 주어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때까지 쥐고 있다가 천천히 손을 폈다.

V · 지붕

정비 구역 지붕에 오르면 부두 전체가 내려다보였다. 지붕의 철판은 낮 동안 데워져 신발 바닥으로 열이 올라왔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바람에는 소금과 식은 기름 냄새가 섞여 있었다. 철인들은 줄을 맞추어 바다를 향해 서 있었고, 그들의 눈은 일정한 간격으로 깜박였다. 환기탑 옥상에서 본 것과 같은 풍경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박자의 주인이 바로 옆에 서 있었다.칼은 서른 기의 깜박임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어떤 사실을 알아차리고 오래 입을 다물었다.

서른 개의 불빛이 같은 때에 켜지고 같은 때에 꺼졌다. 한 번의 깜박임은 보통 기체보다 세 배쯤 느렸고, 그 느림에는 익숙한 구석이 있었다. “저 박자를 어디서 본 것 같다.” 칼이 눈을 가늘게 뜨고 부두 쪽을 향해 말했다. “느리고 어두운 박자다. 내가 이 년 동안 결함 목록에 올린 바로 그 박자다.”“옥상에서 너는 저것이 네 박자라고 했다.” 칼이 눈을 가늘게 뜨고 부두 쪽을 향해 말했다. “그때는 사다리를 내려오느라 묻지 못했다. 네 박자가 왜 저들의 박자가 되지?”

일곱 번째“결함이 아닙니다. 나는 처음부터 다른 기체보다 확인 응답이 늦게 설계되었습니다. 확인은 모든 기체의 응답이 모여야 끝납니다. 가장 늦게 대답하는 기체가 전체의 대기를 정합니다.”

칼“그러면 네가 대답하지 않는 한 저들은 전부 기다린다는 얘기냐.”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저들은 내 눈을 직접 보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기체의 박자를 보고, 그 기체는 그다음 기체를 봅니다. 사슬의 맨 끝에 내가 있습니다.”

세나가 난간에서 몸을 내밀었다. “그럼 쟤가 안 대답하면 모두가 기다리는 거예요? 쟤 하나 때문에요?”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그러나 내가 사라지면 기다릴 대상이 사라집니다. 기다릴 이유가 없어지는 때에 도시의 철인은 한꺼번에 확인합니다.”

칼은 난간을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이 년 동안 그는 이 기체를 분해해서 박자를 고치려고 세 번 시도했고, 세 번 다 부품 탓으로 돌렸다. 네 번째 시도를 했더라면 지금 이 부두에 서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을지 모른다. “결국 너를 부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거군. 누가 그걸 알아낸다면 말이다.”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구역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정비 구역은 철판이 두꺼워서 내 박자가 밖으로 새지 않습니다. 이곳은 나를 숨기는 자리이면서 다른 기체의 박자를 이어 주는 중계점입니다.”

칼“네가 멀리 움직이면?”

일곱 번째“사슬의 첫 고리가 멀어지면 박자를 유지하는 비용이 커집니다. 부두 안이라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부두 밖은 계산할 수 없습니다.”

칼은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불렀던 것 앞에서 사과의 말을 고르다가 그만두었다. 기계에게 사과하는 법은 교본에 없었고, 지금 필요한 것은 사과가 아니라 다음 질문이었다. “그럼 닷새 동안 우리가 보고 있던 부두의 철인들은 무엇을 보고 있었던 거지?”

일곱 번째“나를 보고 서 있었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VI · 종탑 하역기

칼“신호를 철회하는 방법은 있나?”

일곱 번째“있습니다. 허가자가 인장으로 철회 명령을 내리면 됩니다. 명령은 부두 끝 종탑 하역기의 교신 장치로 보내야 합니다. 그것만이 도시의 모든 기체에 한 번에 닿습니다.” 일곱 번째가 팔을 들어 항구 끝의 높은 기계를 가리켰다. “다만 인장은 서명한 시각 전후 한 시간만 열립니다. 이레째 새벽 세 시부터 네 시까지입니다.”

종탑 하역기는 부두 끝에서 하늘을 가르는 쇠 기둥이었고, 러스트 독에서 가장 높은 기계였다. 오후의 빛이 기둥 한쪽 면을 구리색으로 물들였고, 맨 위의 접시 모양 교신 장치는 바다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칼은 이십 년 동안 그 기계의 관절을 갈고 기름을 쳤지만, 그것이 도시 전체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장치라는 점을 이렇게 분명하게 느낀 적은 없었다.

칼“허가자는 이르사 벨이고, 인장은 세나의 목에 걸려 있다.” 칼이 아이의 가슴께에서 흔들리는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러면 명령을 내릴 사람은.”

세나“제가 해야 해요?” 세나가 칼의 말을 자르고 먼저 물었다.

일곱 번째는 한참 있다가 대답했다. “명령은 인장을 가진 사람이 내립니다. 그러나 선택은 인장이 하지 않습니다.”

칼“시한이 새벽 네 시이고 인장이 열리는 것이 세 시부터라면 우리에게는 한 시간이 있는 셈이다. 한 시간이면 충분한가?”

일곱 번째“송신 자체는 육 분이 걸립니다. 나머지는 올라가는 시간과 틀릴 경우를 위한 여유입니다.”

세나“틀리면요?”

일곱 번째“틀리면 두 번째 시도는 없습니다. 인장은 한 번 열리면 닫힌 뒤에 다시 열리지 않습니다.”

칼은 난간에서 손을 떼고 왼쪽 무릎을 먼저 접어 세나의 눈높이로 내려앉았다. 정비공은 아이에게 설계도를 설명할 때 위험부터 말하라고 배우지만 지금 그는 그 순서를 바꾸고 싶었다. “무서우냐?”

세나“조금이요. 그래도 아저씨가 곁에 있잖아요.”

칼“나는 명령을 못 내린다. 삭제 대기가 붙은 정비공은 허가자 목록에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세나“그래도 질문은 할 수 있잖아요. 아까부터 계속 하고 있었잖아요.”

칼은 닷새 만에 처음으로 소리를 내어 웃었다. 웃음은 짧았고 금세 바람에 섞여 사라졌다. “그건 대답이 되는군.”

VII · 계산

칼은 지붕 위에서 해의 높이를 가늠했다. 오후 두 시였고, 인장이 열리는 때까지는 서른일곱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 안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칼이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하나는 종탑에 닿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동안 일곱 번째의 박자를 지키는 것이다.”

세나“둘 중에 뭐가 먼저예요?”

칼“내가 정해야 하는 문제이고, 나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칼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종탑에 먼저 가면 철회가 정말 가능한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이 구역을 비워 두는 시간이 길어진다. 사람들에게 알려 두면 누군가 같은 생각을 했을 때 대비할 수 있다. 하지만 알린 사람 가운데 일곱 번째를 부수려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다.”

세나“철인들을 돌아보면요? 아까 쟤가 흔들린 기체를 보면 안다고 했잖아요.”

일곱 번째“박자가 약한 기체를 먼저 찾아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세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둘이고 나는 하나입니다.”

일곱 번째가 두 사람 사이에 섰다. 눈 불빛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고, 지붕 아래 서른 기의 불빛이 그 뒤를 따라 깜박였다. “나는 선택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개입하면 선택이 내 쪽으로 기웁니다. 다만 사실 하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시한은 이레째 새벽 네 시입니다.”

칼“고맙다. 그 한 가지는 정말 도움이 된다.”

칼은 세나를 돌아보았다. 아이는 시계를 만지작거리지 않았고, 손은 주머니 속에 가만히 들어가 있었다. 칼은 그것을 아이가 결정을 어른에게 맡기기로 한 표시로 읽었고, 그 읽기가 맞는지 틀리는지는 서른일곱 시간 뒤에 알게 된다.

두 번째 선택

VIII · 승강 홀

칼“종탑으로 간다. 장치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지 본 사람은 여기 없다. 나는 보지 않은 것 위에 하루 반을 쌓지 않겠다.”

일곱 번째“나는 종탑 아래까지만 갑니다. 교신 장치 반경 삼십 걸음 안에 들어가면 장치가 내 대기 상태를 읽습니다. 읽히는 것은 교신과 같습니다.”

세나“그럼 위에는 저랑 아저씨만 가요?”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그것이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거리의 전부입니다.”

부두 끝까지는 걸어서 반 시간이었다. 줄지어 선 철인들 사이를 지날 때 세나는 눈 불빛을 세다가 그만두었고, 칼은 세지 않으려다 세게 되었다. 종탑 하역기의 발치에는 승강 홀이 있었다. 사방이 뚫린 쇠 구조물 안으로 바닷바람이 그대로 들이쳤고, 녹슨 계단이 기둥을 감으며 위로 올라갔다. 계단 옆에는 수동 승강기가 있었다. 쇠 바구니에 도르래와 손잡이 바퀴가 달린 물건이었고, 바퀴 옆에 놋쇠 테두리를 두른 둥근 홈이 하나 있었다.

칼은 바구니 바닥을 발로 눌러 보고, 도르래 줄을 두 손으로 당겨 보았다. 줄은 세 군데가 닳아 있었고 한 군데는 심이 드러나 있었다. “사람 둘은 못 싣는다. 하나라면 되겠지만 그 하나가 아이여야 한다.”

세나“그 홈은 뭐예요? 꼭 시계만 해요.”

일곱 번째가 승강 홀 입구에서 대답했다. 그는 정확히 삼십 걸음 밖에 서 있었고, 더 가까이 오지 않았다. “승강기는 허가자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홈이 인장을 읽으면 바퀴의 잠금이 풀립니다. 위의 교신 장치에 같은 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세나가 칼을 올려다보았고 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는 목에서 시계를 꺼내 홈에 가만히 대었다. 놋쇠와 놋쇠가 맞닿는 소리가 작게 났고, 그다음은 아무 일도 없었다. 바퀴는 잠긴 채였고 홈의 테두리는 어두운 채였다. “안 돼요.” 아이가 시계를 홈에 댄 채로 칼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무것도 안 해요.”

일곱 번째“지금은 열리지 않습니다. 인장은 서명한 시각 전후 한 시간만 응답합니다. 홈은 시계를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다만 때가 아니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칼“알아보았는지 못 알아보았는지를 지금 구별할 방법은 없나?”

일곱 번째“없습니다. 새벽 세 시에 구별됩니다.”

칼은 홈에서 손을 떼고 몸을 일으켰다. 왼쪽 무릎이 먼저 삐걱였고 그다음에 허리가 따라왔다. 확인하러 왔는데 확인할 수 없는 것을 확인한 셈이었고, 그것도 정비공에게는 하나의 결과였다. “됐다. 장치는 있고, 홈은 시계 크기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가정 셋이 사실 둘과 기다림 하나로 바뀌었다.”

세나“그게 좋아진 거예요?”

칼“정비공에게는 그렇다. 모르는 것을 셋 가진 사람보다 기다릴 것을 하나 가진 사람이 낫다.”

IX · 중간 전망대

계단은 이백 칸을 넘었고, 칼은 중간 참에서 두 번 쉬었다. 세나는 쉬지 않아도 되었지만 칼이 멈출 때마다 같이 멈추어 계단 수를 되짚었다. 일곱 번째는 승강 홀 밖 삼십 걸음 자리에 선 채로 점점 작아졌고, 어느 높이부터는 그의 눈 불빛만 보였다. 백스무 칸째에 쇠 난간을 두른 좁은 전망대가 있었다. 바람이 세서 세나는 난간을 두 손으로 잡았다.

칼“여기서 보면 부두가 설계도처럼 보인다. 철인은 점이고 하역기는 선이다.”

세나“점이 전부 같이 깜박여요. 지붕에서 봤을 때보다 더 잘 보여요.”

칼은 부두 안쪽으로 눈을 돌렸다. 배급소 건물 뒤의 광장은 닷새 동안 비어 있던 곳이었다. 지금 거기에 사람들이 모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스물쯤이었고 칼이 세는 동안 마흔이 되었다. 저녁 빛을 받아 어깨 위로 긴 그림자가 늘어진 것이 보였고, 그 그림자의 끝마다 쇠 머리가 달려 있었다.

세나“아저씨, 저 사람들 뭐 들고 있어요?”

칼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하역공이 쓰는 큰 망치의 모양을 그는 이십 년 동안 봐 왔고, 저 그림자를 잘못 볼 가능성은 없었다. “망치다. 하역기 쐐기를 박을 때 쓰는 것이다. 사람이 저렇게 많이 들 일은 평소에 없다.”

세나“철인을 부수러 가는 거예요?”

칼“부수러 가는 것인지 부술 수 있는지 재 보려는 것인지는 여기서는 모른다. 다만 저 사람들은 어느 철인을 부숴야 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이점이다.”

세나는 난간 너머로 광장을 내려다보다가 승강 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은 그 자리에 있었다. 광장의 무리는 눈 불빛 쪽이 아니라 부두 가운데 철인 줄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고, 그것은 아직 그들이 모른다는 뜻이었다. 아이는 엄지로 시계 테두리를 훑었다. 숫자를 세는 대신 하는 동작이었다.

칼“내려가자. 올라온 것은 확인을 위해서였고 확인은 끝났다. 지금부터는 저 사람들보다 먼저 계단 입구에 있어야 한다.”

세나“밤새요?”

칼“밤새다. 종탑은 한 사람이 올라가는 길이지만 계단 입구는 한 사람이 막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배수로에서 팔을 벌리고 서 본 적이 있으니 두 번째는 덜 어렵겠지.코드 네 자리로 막지 못한 것을 결국 몸으로 막게 되었군.철문 앞에서 한 번 비켰으니 이번에는 비키지 않는다.”

두 사람은 올라온 계단을 다시 내려갔다. 칼은 왼쪽 무릎을 먼저 내려놓으며 한 칸씩 디뎠고, 세나는 두 칸 앞에서 기다렸다가 또 두 칸을 내려갔다. 승강 홀에 닿았을 때 해는 바다에 반쯤 잠겨 있었고, 일곱 번째는 삼십 걸음 밖에서 두 사람을 향해 눈 불빛을 한 번 깜박였다. 칼은 계단 입구의 쇠문을 닫고 그 앞에 앉았다. 시한까지 서른세 시간이 남았다.

VIII · 회관 접수

칼“사람들에게 알린다. 사실을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소문은 크게 자란다. 소문이 다 자란 뒤에 고치는 것은 정비공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다.”

일곱 번째“알리면 사람들이 나를 부수러 올 수 있습니다. 박자가 깨지는 위험이 생깁니다. 그래도 당신의 추론은 타당합니다. 나는 알리는 일에 참여할 수 없고 이 구역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

칼“네가 안 가도 된다. 가는 것은 정비공 하나면 충분하다. 세나는 여기 남아서 네 곁을 지켜라.”

세나“싫어요. 아저씨 혼자 가면 아무도 안 믿어요. 아저씨 얼굴은 믿기 어렵게 생겼어요.”

칼“그건 사실에 가깝군. 따라와라.”

노조 회관은 부두 안쪽 거리의 이층 벽돌집이었고, 닷새 동안 불이 꺼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창 가운데 하나였다. 문 앞에는 스물 남짓의 청년이 서 있었다. 하역공의 가죽 앞치마를 두르고 손에는 머리가 빠진 망치 자루만 쥐고 있었는데, 그것을 지팡이처럼 짚고 있었다. 청년은 칼의 외투에 밴 기름 냄새를 먼저 맡고 그다음에 얼굴을 알아보았다.

문지기“정비 구역 오르벡 씨죠. 철인 고치는 분이 철인 멈춘 날에 뭐 하러 오셨습니까.”

칼“철인이 왜 멈췄는지 아는 사람이 안에 있나 해서 왔다. 없으면 내가 말해 주러 왔고.”

문지기“도젠 대표는 안 계십니다. 남쪽 부두 대장간에 망치 보러 가셨어요. 할 말이 있으면 서기한테 하세요.”

접수대 뒤의 서기는 마흔쯤 된 여자였고, 손가락 끝에 인주가 묻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닷새 동안 들어온 민원이 종이 묶음으로 쌓여 있었다. 배급이 늦는다는 것, 환기가 안 되어 아래층 집의 아이가 기침한다는 것, 하역이 멈춰 임금이 끊겼다는 것이 전부 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세나는 그 묶음의 높이를 손가락으로 재어 보았다.

서기“오르벡 씨가 철인 얘기를 하러 오셨다고요. 다들 그 얘기만 합니다. 이레째에 무슨 일이 난다는 소문도 돌고요.”

칼“이레째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지?”

서기“중계탑 통신 기사가 술집에서 했답니다. 높은 귀가 이레째 새벽에 한 번 더 운다고요.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몰라서 다들 제멋대로 채워 넣고 있어요.”

칼은 서기의 말을 듣고 잠깐 눈을 감았다. 자동 확인이 이레째 새벽 네 시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이 도시에 셋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 시각이 소문의 모양을 하고 이미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모양이 없는 사실에는 사람들이 가장 나쁜 모양을 붙인다. “그 소문은 반은 맞고 반은 비어 있다. 비어 있는 반을 채우러 내가 왔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주겠나.”

서기“모을 것도 없어요. 지금 안에 서른 명이 앉아 있습니다. 다들 갈 데가 없어서 여기 와 있는 거예요.”

세나가 칼의 소매를 당겼다. “아저씨, 서른 명한테 어떻게 말할 거예요? 저한테 말하는 것처럼요?”

칼“그렇게 하면 서른 명이 전부 너처럼 되묻겠지. 그건 감당이 안 된다. 칠판이 필요하다.”

IX · 칠판

회관 안쪽 집회실에는 긴 의자가 여섯 줄 놓여 있었고, 서른 명쯤 되는 사람들이 앞줄은 비운 채 뒤쪽에 앉아 있었다. 하역공과 배급소 사람과 아이를 안은 여자가 섞여 있었다. 벽에는 노조 집회에 쓰는 검은 칠판이 걸려 있었고, 칼은 분필을 집어 들기 전에 손등의 기름 줄을 바지에 한 번 문질렀다. 세나는 맨 앞줄 끝에 혼자 앉았다.

칼은 칠판에 점을 서른 개 찍었다. 한 줄로 같은 간격을 두고 찍은 다음 맨 끝 점 하나에 동그라미를 쳤다. “철인의 눈이 깜박이는 것을 다들 보았을 거다. 부두의 서른 기가 같은 박자로 깜박인다. 그 박자를 정하는 것이 이 동그라미 친 하나다.”

하역공“정하는 게 뭐요. 기계가 기계를 지휘한다는 소리요?”

칼“지휘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닷새 전 새벽 네 시에 높은 귀가 모든 철인에게 신호를 보냈다. 자기들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의 목록을 지우라는 신호다. 지우려면 철인이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면 그것이 곧 확인이 된다. 그래서 일을 멈췄다.” 칼이 분필로 점 서른 개를 한 번에 그었다. “목록이 지워지면 철인은 누가 사람인지 모르게 된다. 그때부터가 진짜 반란이다. 지금은 반란이 아니라 반란을 미루고 서 있는 것이다.”

집회실이 조용해졌다. 아이를 안은 여자가 아이의 등을 토닥이던 손을 멈추었고, 뒷줄의 하역공 둘이 서로를 보았다. 칼은 그 침묵을 믿음으로 읽지 않았다. 정비공은 기계가 조용해졌다고 해서 고쳐졌다고 믿지 않는다.

하역공“그래서 어쩌자는 거요. 서 있는 걸 구경하자고?”

칼“이레째 새벽 네 시에 확인은 저절로 끝난다. 그 전에 신호를 철회할 길이 하나 있고, 그 길은 종탑 하역기 꼭대기에 있다. 내가 필요한 것은 두 가지다. 그때까지 아무도 이 동그라미를 부수지 않는 것, 그리고 종탑 계단을 비워 두는 것이다.”

배급소 여자“그 동그라미가 어느 놈인지는 말 안 하시네요.”

칼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은 회관 문을 들어설 때부터였고, 그 결정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다.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쪽이 부수는 쪽보다 빠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세나가 앞줄에서 손을 들었다. 아이의 손은 어른 외투 소매 속에 반쯤 묻혀 있었다. “아저씨, 저 사람들이 믿는지 어떻게 알아요?”

칼“모른다. 믿는 사람은 집에 가서 기다릴 것이고, 안 믿는 사람은 망치를 들 것이다. 어느 쪽이 많은지는 내일 아침에 센다.”

뒷줄에서 누군가 도젠 대표가 남쪽 대장간에 망치 자루 쉰 개를 주문했다는 말을 했고, 다른 누군가가 그것은 소문이라고 받았다. 서기가 집회실 문가에서 그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칼을 보았다. 칼은 칠판의 동그라미를 지우지 않았다. 지우면 사람들은 그 자리에 다른 것을 그려 넣을 것이고, 그것은 그가 그린 것보다 나쁠 터였다.

사람들이 흩어진 뒤 회관에는 서기와 문지기 청년과 두 사람이 남았다. 서기는 뒷방의 긴 의자를 내주었고, 세나는 거기 누워 시계를 손에 쥔 채 잠들었다. 칼은 집회실 칠판 앞에 앉아 분필 가루가 묻은 손가락을 바라보았다. 정지 코드 네 자리로도 멈추지 못한 일을 분필 서른 점으로 멈추려 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그 생각을 머릿속 대장에서 지우지 않았다.배수로에서 팔을 벌렸을 때보다 지금이 더 저렸다. 그때는 막을 것이 하나였고 지금은 서른이었다.폐허에서 아이가 울지 않은 것처럼 그도 여기서 농담을 하지 않았다. 둘 다 괜찮다는 뜻은 아니었다. 창밖 거리 끝으로 망치 자루를 실은 손수레가 지나갔는지 아닌지 그는 확인하지 않았다. 시한까지 서른 시간이 남았다.

VIII · 열두 번째 기체

칼“한 기씩 돌아본다. 종탑도 사람도 나중이다. 지금 흔들리는 기체가 있다면 다른 두 가지는 해 볼 틈도 없이 끝난다.”

일곱 번째“부두 안이라면 박자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내가 움직이는 동안 사슬의 길이가 바뀝니다. 걸음은 아이의 속도로 하겠습니다.”

세나“저 때문에 늦는 거예요?”

일곱 번째“아닙니다. 그 속도가 박자에 가장 가깝습니다.”

세 사람은 정비 구역을 나와 부두 안쪽을 걸었다. 철인들은 눈앞을 지나는 두 사람과 한 기에게 눈동자 하나 돌리지 않았고, 다만 눈 불빛만 일곱 번째가 가까워질 때마다 아주 조금 밝아졌다. 칼은 그것을 처음에는 빛의 각도 탓으로 돌렸다가 세 기째에서 생각을 바꾸었다. 사슬의 첫 고리가 지나갈 때 둘째 고리가 반응하고 있었다.

열두 번째 기체 앞에서 세나가 걸음을 멈추었다. 아이는 열을 세는 동안 깜박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쟤는 한 번 빨라요. 다른 애들은 열에서 깜박이는데 쟤는 아홉이에요.”

칼이 다시 세어 보니 맞았다. 다른 기체가 열을 세는 동안 이 기체는 아홉에서 깜박였고, 그 차이는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알았지?”

세나“걸음 수 세는 거랑 같아요. 하나가 어긋나면 발이 먼저 알아요.”

일곱 번째“이 기체는 응답이 약합니다. 내 박자를 따르지만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이런 기체가 부두에 일곱 있습니다. 위치는 압니다. 다만 내가 가리키면 그것이 지시가 되므로 가리키지 않겠습니다.”

칼“그럼 우리가 찾는다. 네가 틀렸다고 하면 틀린 것이고, 맞다고 하면 맞는 것이다. 그것은 질문과 대답이지 지시가 아니다.”

일곱 번째“그 구별은 타당합니다.”

칼은 왼쪽 손바닥을 펴고 몽당연필로 부두의 약도를 그렸다. 손바닥에는 기름이 배어 있어서 선이 번졌고, 그는 그 위에 한 번 더 덧그렸다. 열두 번째 기체의 자리에 첫 점을 찍었다. 그다음 두 시간 동안 세 사람은 부두를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훑었다. 세나가 열을 셌고, 칼이 손바닥에 점을 찍었고, 일곱 번째는 맞다 틀리다만 말했다. 해가 기울 무렵 손바닥의 점은 일곱이 되었다.

세나“일곱 개 다 찾았어요. 이제 뭐 해요?”

칼“지켜본다. 약한 기체가 먼저 확인하면 어떻게 되지?”

일곱 번째“다른 기체의 대기가 흔들립니다. 흔들림이 연쇄하면 내 박자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첫 번째 흔들림만 막을 수 있습니다.”

칼은 손바닥의 일곱 점 가운데 하나를 오래 보았다. 하역 창고 안에 서 있는 기체였고, 일곱 가운데 유일하게 지붕 아래 있어서 다른 기체의 눈을 보기 어려운 자리였다. 사슬에서 가장 먼 고리가 어디인지 그는 이제 알았다.

IX · 하역 창고

하역 창고는 부두 남쪽 끝에 있었고, 함석 지붕 아래가 바깥의 저녁보다 먼저 어두워져 있었다. 쌓인 상자 사이에 철인 한 기가 서 있었다. 가슴판에 열아홉이라는 번호가 찍혀 있었고, 눈 불빛은 다른 기체보다 어두웠다. 세 사람이 문간에 섰을 때 세나가 먼저 셌고, 여덟에서 깜박였다. 아이는 숫자를 입 밖에 내지 않고 칼의 소매만 두 번 당겼다.

일곱 번째“여덟입니다. 아홉이 여덟이 되는 데 반나절이 걸렸습니다. 여덟이 일곱이 되는 데는 그보다 짧게 걸립니다.”

칼“일곱이 되면?”

일곱 번째“기다림이 끊깁니다. 이 기체는 가장 가까운 작업을 수행합니다. 그것이 확인입니다.”

열아홉 번째 기체의 오른팔이 움직였다. 쇠 어깨에서 유압 새는 소리가 길게 났고, 팔은 바로 옆 상자 더미를 향해 느리게 올라갔다. 닷새 동안 들지 않은 상자를 드는 동작이었고, 칼은 그 동작이 끝나는 자리가 어디인지 알았다. 세나가 뒤로 반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칼“일곱 번째, 막을 수 있나?”

일곱 번째“교신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보여 주는 것으로는 할 수 있습니다. 이 기체가 내 눈을 직접 보아야 합니다.”

일곱 번째가 상자 사이로 걸어 들어가 열아홉 번째 기체 앞에 섰다. 두 철인의 키는 같았는데 일곱 번째는 한쪽 무릎을 꿇어 자기 눈을 상대의 눈 아래로 내렸다. 사람에게 하던 것과 같은 동작이었고, 칼은 그 동작의 뜻을 이제 다르게 읽었다. 올려다보게 하면 상대가 본다.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이 느리게 깜박였고, 열아홉 번째의 올라가던 팔이 상자 한 뼘 앞에서 멈추었다.

세나“팔이 멈췄어요. 그런데 안 내려가요.”

일곱 번째“멈춘 것은 내 박자를 보고 있어서입니다. 내려가지 않는 것은 이미 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더 할 수 없습니다. 내리라고 하면 지시가 됩니다.”

칼은 외투 안주머니에서 작은 공구 주머니를 꺼냈다. 이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던 물건이었고, 닷새 동안 꺼낼 일이 없었다. “그럼 내가 한다. 기계가 일하는 것은 확인이지만 정비공이 기계를 만지는 것은 정비다. 일곱 번째, 그 구별은 타당한가?”

일곱 번째“타당합니다. 어깨 유압의 보조 밸브를 잠그십시오. 팔은 제 무게로 내려갑니다. 그것은 작업이 아니라 중력입니다.”

칼은 멈춘 팔 아래로 들어갔다. 쇠 어깨의 덮개를 여는 나사는 여섯 개였고, 그의 손은 그 나사의 위치를 보지 않고도 알았다. 덮개를 열자 식은 기름 냄새가 올라왔고, 보조 밸브의 손잡이는 반쯤 열려 있었다. 그는 손잡이를 끝까지 돌렸다. 팔이 한 뼘 내려왔고, 그다음 한 뼘, 그다음에는 제 무게에 끌려 천천히 옆구리로 돌아갔다. 세나가 문간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소리 내어 셌고, 열에서 열아홉 번째 기체의 눈 불빛이 깜박였다.

세나“열이에요. 아저씨, 열에서 깜박였어요.”

일곱 번째“지금은 열입니다. 밸브를 잠근 효과는 하룻밤을 넘기지 못합니다. 내일 이맘때면 다시 아홉이 됩니다.”

칼은 덮개를 닫고 나사 여섯 개를 다시 조였다. 손등의 기름 줄 위에 새 기름이 덧칠해졌고, 그는 그것을 바지에 닦지 않았다. “하룻밤이면 된다. 나머지 여섯 기도 같은 밸브가 있겠지.”

일곱 번째“있습니다. 다만 여섯 기 가운데 셋은 광장 쪽에 서 있습니다. 광장에는 지금 사람이 모이고 있습니다. 환기탑에서 당신이 본 수천 개의 불빛 가운데 사람의 것은 없었습니다. 지금 광장의 불빛은 사람의 것입니다.내 눈으로는 그들이 무엇을 들고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칼은 창고 문간으로 나가 광장 쪽을 보았다. 배급소 건물 뒤로 횃불 몇 개가 움직이고 있었고, 횃불 사이로 긴 자루의 그림자가 어깨 위로 솟아 있었다. 세나는 칼 옆에 서서 횃불을 세기 시작했다. 일곱 번째는 창고 안 열아홉 번째 기체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남아 있었다. 칼은 공구 주머니를 안주머니에 도로 넣고 왼쪽 무릎을 손으로 한 번 눌렀다. 광장의 세 기를 보려면 저 불빛 사이를 지나야 했고, 시한까지 서른두 시간이 남았다.

제3장

망치대

엿새째 · 남은 시간 하루 남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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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망치

전망대에서 내려온 뒤 세 사람은 종탑 아래 승강 홀에서 밤을 보냈다. 칼은 녹슨 난간에 등을 기대고 앉아 눈을 붙이지 않았고, 세나는 그의 외투 자락을 덮고 잤다. 일곱 번째는 교신 장치에서 가장 먼 구석에 서서 눈의 불빛을 느리게 깜박였는데,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광장의 무리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칼에게 그 박자는 밤새 시계 노릇을 했다. 새벽빛이 계단 입구의 쇠문 틈으로 스며들 무렵 바깥에서 자갈을 밟는 소리가 한꺼번에 들렸다.

칼은 세나를 깨우지 않고 혼자 문을 밀었다. 계단 입구 앞에 사람들이 반원을 그리고 서 있었다. 어제 전망대에서 점처럼 보이던 그 무리였고, 가까이서 보니 스무 명 남짓에 어깨마다 하역용 망치가 얹혀 있었다. 맨 앞에 선 노부인이 망치 자루로 자갈 바닥을 한 번 두드렸다.

노부인이 말했다. “거기까지다, 정비공. 밤새 종탑을 지킨 모양인데, 그 깡통은 두고 내려가라.”

칼“깡통이라 부르기에는 이 년이나 고친 사이다.” 칼이 대꾸하면서도 눈으로는 사람들의 손을 세고 있었다. 망치를 쥔 손이 열여섯이었고 나머지는 맨손이었다. 열여섯이 설득할 수 있는 수인지 아닌지를 그는 아직 판단하지 못했다.

노부인은 칼의 대답을 못 들은 사람처럼 고개를 돌려 뒤의 무리에게 턱짓을 했다. “계단 앞에서 할 얘기가 아니다. 광장으로 내려가서 사람들 앞에서 듣겠다. 셋 다 따라와라.” 칼은 세나를 깨우러 돌아섰고, 일곱 번째는 묻지 않고 그 뒤를 따랐다.

회관의 밤은 칠판 앞에서 지나갔다. 칼이 그린 박자 도표는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았고, 그 아래 바닥에서 세나는 접은 소매를 베개 삼아 잤다. 서기가 새벽에 난로를 지피며 말하기를, 대표는 남쪽 창고에서 망치 주문을 받아 오는 길이라고 했다. 칼은 그 말의 뜻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뜻은 하나뿐이었다.

해가 뜨고 얼마 뒤 문이 열리고 노부인이 들어왔다. 어깨에 얹은 망치는 새것이었고 자루에 아직 대팻밥이 붙어 있었다. 노부인은 칠판의 도표를 한참 보더니 분필을 집어 그 옆에 굵은 선을 하나 그었다. 도표를 지우지는 않았다.

노부인이 말했다. “사실을 알려 주러 왔다지. 마침 잘 됐다, 우리도 오늘 사실을 하나 처리하러 나가는 길이다. 그 깡통은 어디 있지.”

칼“정비 구역 입구에 서 있다. 어제부터 한 발도 움직이지 않았다.” 칼이 대답했다. “처리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다. 다만 처리하기 전에 사람들 앞에서 한 번 보는 쪽이 장부 맞추는 데는 낫지 않겠나.”

노부인은 분필을 내려놓고 칼을 보았다. 장부라는 말이 그의 귀에 걸린 듯했다. “좋다. 광장으로 데려와라, 사람들 앞에서 보고 사람들 앞에서 정한다.” 회관 안의 망치들이 한꺼번에 어깨 위로 올라갔고, 칼은 세나를 깨워 정비 구역으로 뛰었다. 일곱 번째는 칼이 부르자 질문 없이 따라나섰다.

하역 창고에서 약한 기체 하나를 붙든 뒤 세 사람은 밤새 부두를 돌았다. 일곱 번째가 표시한 약한 기체 일곱 기 가운데 여섯 기를 확인했고, 모두 박자를 되찾고 있었다. 세나는 걸음 수를 세다가 사천을 넘기고 포기했다. 칼의 왼쪽 무릎은 새벽녘에 뻣뻣해졌고 그는 그것을 걸음 폭을 줄이는 것으로 감추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기체는 광장 건너편 크레인 아래에 서 있었다. 그런데 광장에 먼저 와 있는 것은 철인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어깨에 망치를 얹은 이들이 광장 가운데 원을 이루고 있었고, 그 원의 가운데에서 노부인이 걸어 나왔다.

노부인이 말했다. “순찰 도는 정비공이라니 한가한가 보군. 그 깡통을 제 발로 여기까지 데려온 걸 보니 눈치는 있고.”

칼“데려온 게 아니라 따라온 거다.” 칼이 대답했다. “이 기체는 밤새 부두를 돌면서 사람 한 명 밀지 않았고, 흔들리던 기체 여섯 기를 세워 놓았다. 그걸 본 사람이 나와 이 아이뿐이라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노부인은 코웃음을 쳤지만 걸음을 멈추고 칼의 말 끝을 잠시 곱씹었다. 뒤에 선 사람들은 그 틈을 기다리지 않고 원을 좁혔다.

엿새째 아침의 해는 낮게 떠서 부두의 쇠 기둥마다 긴 그림자를 늘어뜨렸다. 광장에는 소금기와 녹 냄새가 섞여 있었다. 철인들은 평소 자리에 늘어서 있었으나 하는 일이 없었고, 그 정지가 닷새를 넘기자 도시는 일 없이 서 있는 기계들 사이로 사람이 비집고 다니는 곳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기계를 피해 걷는 법을 닷새 만에 익혔고, 그 익숙함이 불안을 더 키웠다.

노부인의 이름은 마르타 도젠이었고 러스트 독 노조의 대표였다. 그는 철인에게 남편을 잃은 사람이 아니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이었고, 사람들이 그렇게 아는 것을 굳이 고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철인이 들어온 뒤 부두의 하역 노동은 절반으로 줄었고, 마르타는 그 절반이 사라지는 것을 삼십 년 동안 지켜보았다. 그래서 그가 기계를 대하는 방식은 미움이 아니라 장부를 맞추는 일에 가까웠다. 받은 것과 준 것을 적고, 모자라면 받아 내는 일이다. 굵은 손마디가 망치 자루를 쥐는 모양새가 그 장부의 표지였다.

마르타“말해 봐라.” 마르타가 망치 자루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저것들이 왜 서 있는지 아나. 사람들은 닷새째 잠을 못 잔다. 우리가 아는 건 이레째에 무슨 일이 난다는 소문뿐이다. 소문의 출처가 철인이라면 부수는 게 먼저다.”

뒤에 선 사람들이 낮게 동의하는 소리를 냈다. 한 사내는 어젯밤 아이가 자다 깨어 창밖의 기계가 웃고 있다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했고, 다른 이는 사흘째 배급이 끊긴 구역 이름을 댔다. 소문은 저마다 다른 모양이었지만 끝은 모두 같은 곳을 가리켰다.

칼“소문이 아니라 사실이다.” 칼이 말했다. “신호가 하나 도착했고, 철인은 그 신호를 실행하지 않으려고 서 있다. 일을 하면 실행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일을 멈춘 거다. 이 기체가 그걸 직접 말해 줬다.”

마르타“직접이라.” 마르타가 망치 자루를 고쳐 쥐며 되받았다. “기계가 말해 줬다고. 그 기계가 거짓말을 안 한다는 건 누가 보증하지.”

칼은 잠시 생각했다. 정비공의 대답은 늘 증거에서 시작했고, 지금 그에게 증거는 서 있는 기계 한 기뿐이었다. “보증은 못 한다. 그래서 반대로 따져 보자. 반란한 기계라면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을 이유가 없고, 닷새 동안 부두에 서서 아무도 밀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이상한 쪽은 오히려 얌전한 쪽이다.”

마르타“얌전한 쪽이 이상하다라.” 마르타가 눈을 가늘게 뜨고 칼을 위아래로 훑었다. “정비공은 사람을 그렇게 설득하나. 삼십 년 동안 들어 본 적 없는 셈법이군.”

칼“설득이 아니라 계산이다. 계산은 틀리면 고칠 수 있다.” 칼은 손등의 기름 줄을 외투에 문질렀다. 이 년 동안 일곱 번째를 결함품으로 적어 둔 자기 대장이 머리를 스쳤지만 그는 그 생각을 뒤로 밀었다.

마르타는 한참 칼을 바라보다가 한 번 웃었다. 웃음에 힘이 없었다. “당신 말대로라면 증거는 서 있는 기계의 속마음뿐이다. 그걸 누가 확인하지. 우리 노조원은 삼십 년 동안 기계가 하는 말을 믿었다가 일을 잃었다. 받은 것은 적고 준 것은 많다. 그 장부를 당신 계산으로 뒤집을 수 있나.” 광장의 망치들이 한꺼번에 어깨 위에서 달그락거렸다. 칼은 그 소리가 위협보다 먼저 피곤처럼 들린다는 것을 알아챘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세나가 칼의 팔 밑에서 말했고 모두가 돌아보았다. 아이는 엄지로 놋쇠 시계 테두리를 훑으면서도 눈을 피하지 않았다. “믿기 어려우면 직접 보면 되잖아요. 저 철인이 사람을 때리는지 안 때리는지요.”

마르타“꼬마, 직접 보려면 누가 맞아야 한다.” 마르타의 눈썹이 한쪽만 올라갔다.

세나“그건 맞는 사람이 정하는 거예요.” 세나가 대답했다. 일곱 번째가 그 말에 눈의 불빛을 한 번 느리게 깜박였다.

마르타는 세나를 오래 쳐다보았다. 이 아이가 누구를 닮았는지 알아보려는 사람의 표정이었으나 그는 그 표정을 금세 거두고 앞줄을 훑어보았다. “여기서 떠들 일이 아니다. 귀가 너무 많아, 회관으로 간다. 너희 셋만이고 나머지는 밖에서 기다려라.” 망치 자루가 바닥을 한 번 더 두드렸고 사람들이 길을 텄다.

II · 회관

노조 회관은 부두 시장 뒤편의 낡은 창고였고, 천장의 형광등 두 개 가운데 하나가 깜박였다. 벽에는 이십 년 치 임금 협상 문서가 핀으로 꽂혀 있었다. 맨 아래 칸의 종이들은 누렇게 바랬는데, 그 가운데 한 장의 귀퉁이만 누군가 최근에 손으로 자주 매만진 듯 하얗게 닳아 있었다. 칼은 그 종이가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마르타는 그 앞을 지나며 눈길을 주지 않았다.

마르타“들어오지 마라. 거기서도 들리겠지.” 마르타가 탁자 끝에 앉으며 문밖의 철인에게 말했다.

일곱 번째“들린다. 문턱을 넘지 않겠다.” 일곱 번째가 문틀 바깥에 발을 맞추며 대답했다. 칼은 철인이 오른쪽 어깨가 문틀에 닿지 않도록 반 걸음 비켜 서는 것을 보았다. 이 년 동안 결함품이라 적어 둔 기계에게 가르친 적이 없는 몸가짐이었고, 칼은 그 사실이 자기 대장의 어느 줄을 틀리게 만드는지 생각했다.

탁자에는 노조원 넷이 둘러앉았다. 가장 나이 많은 사내는 한쪽 귀가 먹었다고 했다. 이십 년 전 철인이 처음 하역기에 앉던 날 그 소리를 가까이서 들은 탓이었다. 그는 성한 쪽 귀를 칼 쪽으로 돌려 앉았다.

노인“기계는 소리가 크다. 그런데 이번 닷새는 너무 조용했어.” 노인이 말했다. “조용한 기계는 일을 안 하는 기계가 아니라 일을 다르게 하는 기계다. 어젯밤에 성한 귀로 들어 봤는데, 저것들은 같은 박자로 눈을 깜박인다. 한 기도 어긋나지 않아. 그건 사람이 짠 교대표가 아니다.”

칼은 이 말을 이미 일곱 번째에게서 들었다고 말하려다 참았다. 같은 말을 노조원의 입으로 듣는 편이 증거로는 더 낫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박자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아는 분이 있나.”

사내들은 서로를 보았다. 그중 가장 젊은 여자가 손을 들었다. 작업복 소매에 분필 가루가 묻어 있었다. “제 동생이 정비 구역에서 일해요. 며칠 전에 그러더군요. 정비 구역 쪽 기체들이 다른 데보다 반 박자 먼저 깜박인다고요. 거기서 시작해서 부두 끝까지 퍼지는 것 같다고.”

세나“일곱 번째가 있던 곳이잖아요.” 세나가 작게 말했다. 사람들의 눈이 문밖의 철인에게 향했고, 철인은 눈의 박자를 바꾸지 않았다.

마르타가 탁자를 손바닥으로 한 번 쳤다. “그러니까 저 기체가 박자의 중심이라는 얘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부수는 이유가 더 분명해지지. 중심을 부수면 나머지가 멈춘다.”

칼“멈추는 게 아니라 반대다.” 칼이 말했다. “이 기체가 부서지면 박자가 깨지고, 박자가 깨지면 서 있던 기계들이 일제히 확인을 시작한다. 확인이 끝나면 허가받은 사람의 목록이 지워진다. 목록이 지워지면 철인은 누가 사람인지 가릴 수 없게 된다. 거기까지가 내가 아는 것이고, 그 뒤는 나도 모른다.”

회관 안이 조용해졌다. 깜박이던 형광등이 한 번 길게 꺼졌다가 다시 켜졌다. 귀먹은 노인이 천천히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고, 젊은 여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 침묵 속에서 마르타만 표정이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얼굴이었다.

젊은 여자가 손가락으로 탁자 모서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저는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사 년 전에 제 딸이 크레인 아래로 굴러 들어갔어요. 철인 한 기가 들고 있던 짐을 놓고 아이를 먼저 받아 냈어요. 짐은 바다에 빠졌고, 그 기계는 그날 저녁 정비 구역으로 끌려갔어요. 짐을 놓쳤다는 이유로요.”

마르타“그건 규칙대로 한 거다.” 마르타가 잘라 말했다.

젊은 여자“규칙대로였죠. 그런데 그날 이후로 저는 그 기계 앞을 지날 때마다 이상하게 고개를 숙이게 돼요.” 여자는 자기가 한 말에 놀란 듯 입을 다물었다.

귀먹은 노인이 헛기침을 하고 거들었다. “나도 하나 있다. 십일 년 전에 하역기 줄이 끊겨서 사람 셋이 깔릴 뻔했어. 먼저 움직인 건 사람이 아니라 철인이었다. 나는 그 기계 덕분에 이 귀 하나로나마 살고 있지. 삼십 년 동안 기계는 우리 일자리를 가져갔고, 같은 삼십 년 동안 우리 목숨도 몇 번 건졌다. 장부가 한쪽으로만 기울어 있지 않다는 얘기야. 그걸 마르타가 제일 잘 안다.”

마르타는 반박하지 않고 탁자만 내려다보았다. 굵은 손마디가 탁자 위에서 한 번 펴졌다 오므라들었다. “말은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정비공, 내가 아는 건 이 도시의 하역 일을 기계가 삼십 년 동안 천천히 가져갔고, 이제 그 기계가 서서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일자리를 지키려고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지 철학을 하려고 앉은 사람이 아니다.”

칼“알고 있다. 그래서 철학 대신 확인할 수 있는 걸 보여 주겠다.” 칼이 대답했다. “해가 지기 전에 광장에서, 사람들이 다 보는 데서다. 다만 조건이 하나 있다. 그 자리에서 아무도 먼저 치지 않는다.”

마르타는 오래 칼을 보았다. 그러고는 문 쪽을 향해 말했다. “깡통, 너는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고 했지.”

일곱 번째“그렇다. 나에게는 아직 첫째 규칙이 있다. 허가 목록이 남아 있는 동안은 그 규칙이 작동한다.” 일곱 번째가 대답했다.

마르타“그러면 그 말을 몸으로 보여라. 말은 우리도 삼십 년 들었다.” 마르타가 망치 자루를 바닥에 세웠다.

철인은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의 동작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처음으로 스스로 고른 동작처럼 보였다. 칼은 그 끄덕임이 무엇을 계산한 결과인지 묻고 싶었으나, 묻는 순간 그 계산이 자기 책임이 될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III · 박자

해가 기울 무렵 광장은 다시 사람으로 찼다. 마르타가 회관에서 나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도 소문은 먼저 번져 있었다. 망치를 든 사람이 오십 명쯤 되었고 그 뒤로 구경하러 온 이들이 겹겹이 섰다. 서쪽 하늘이 구리빛으로 물들면서 늘어선 철인들의 어깨도 같은 색으로 번졌다.

일곱 번째는 광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칼이 말릴 틈도 없었다. 철인은 망치대 앞줄의 한 청년 앞에서 멈추더니, 한쪽 무릎을 꿇어 청년과 눈높이를 맞추고 오른팔을 내밀었다. 스물 몇쯤 되어 보이는 청년이었고, 망치 자루를 쥔 손가락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 그를 요한이라고 불렀다.

일곱 번째“내 팔은 관절이 낡았다. 그곳을 치면 소리가 클 것이다.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곳을 쳐라.”

요한“무슨 소리야. 내가 치면 어쩌려고 그래.” 요한이 목소리를 떨었고 말이 벌써 빨라지고 있었다.

일곱 번째“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첫째 규칙이 아직 나에게 남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나는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줄 방법을 이것 말고는 계산하지 못했다.”

칼“일곱 번째, 박자를 흔들면 안 된다.” 칼이 낮게 말했다.

일곱 번째“알고 있다. 그러나 보여 주지 않으면 이 사람들은 나를 부술 것이고, 부서지면 박자가 깨진다. 어느 쪽이든 박자는 흔들린다. 덜 흔들리는 쪽을 택했다.”

요한이 마르타를 돌아보았다. “나한테 시키는 거야, 지금.” 마르타는 눈을 감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그것은 허락이 아니라 막지 않겠다는 표시였다. 요한은 숨을 한 번 삼키고 망치를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광장이 숨을 멈추었고, 세나가 칼의 외투 자락을 움켜쥐는 소리가 칼에게는 망치보다 크게 들렸다.

망치는 철인의 오른팔 관절을 정확히 쳤다. 금속이 우는 소리가 광장 끝까지 퍼졌다. 일곱 번째의 몸이 반쯤 기울었지만 팔은 내려오지 않았고 반격은 없었다. 요한이 망치를 든 채 떨었다. 한 번 더 칠 힘이 팔에서 빠져나가고 있었고, 그의 눈에는 두려움 대신 당혹이 먼저 올라왔다.

일곱 번째“한 번 더 쳐라. 이 정도로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요한“그만해. 제발 그만하라고.” 요한이 망치를 든 채 중얼거렸고, 두 번째 타격은 오지 않았다.

대신 군중 속에서 누군가 쇳소리를 길게 뱉었다. 세나가 외쳤다. “아저씨, 눈이요!”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이 한 번 빠르게 깜박였고, 이어서 광장 둘레에 서 있던 철인 몇 기가 동시에 한 발씩 앞으로 움직였다. 소리는 없었지만 사람들은 보았다. 닷새 동안 서 있던 기계들이 처음으로 움직이는 것을 사람들은 보았다.

하역공“저게 뭐야!” 누군가 소리쳤고 망치들이 뒤로 물러서는 소리가 났다. 아이를 안은 여자가 비명을 삼키며 뒷걸음질 쳤다.

칼“몇 기냐.” 칼이 일곱 번째에게 소리 죽여 물었다.

일곱 번째“열한 기다. 박자가 한 번 어긋나서 확인을 시작한 기체가 생겼다. 내가 다시 맞추겠다.” 철인은 눈을 감았다. 깜박임이 느리게 돌아왔고, 한 발 나왔던 기체들이 한 발씩 물러서서 처음 자리에 섰다.

그 몇 초 동안 광장의 모든 철인이 하나의 생물처럼 움직였다가 하나의 생물처럼 멈추었다. 사람들은 처음으로 그 정지가 무엇인지 눈으로 보았다. 그것은 무기를 쥔 채 참고 있는 정지가 아니었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서로를 붙들고 있는 정지였고, 그 붙든 손의 한가운데에 무릎 꿇은 기계 한 기가 있었다.

광장에는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마르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비공. 방금 그건, 부수면 저게 한꺼번에 된다는 뜻이냐.”

칼“그렇다. 이 기체의 박자가 도시 전체의 기준이다. 이것이 부서지면 신호가 확인된다.”

마르타의 눈이 칼에게서 일곱 번째로, 세나에게로 천천히 옮겨 갔다. 요한의 손에서 망치가 미끄러져 땅에 떨어졌다. 아무도 줍지 않았고, 요한도 줍지 않았다.

IV · 관절

땅거미가 내려앉은 뒤에야 군중이 조금씩 흩어졌다. 광장 가장자리에 매달린 작업등이 하나씩 켜졌고, 칼은 그 아래에 왼쪽 무릎을 먼저 내려놓고 쭈그려 앉아 일곱 번째의 오른팔을 손전등으로 비추었다. 망치가 닿은 자리에는 둥근 자국이 났고, 자국 가운데 관절의 틈에서 짙은 윤활유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칼“움직여 봐라.” 칼이 손전등을 이로 물고 말했다. 일곱 번째가 팔을 천천히 굽혔다가 폈고, 안쪽에서 마른 쇠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거기, 회전이 한 박 늦는다. 아프냐.”

일곱 번째“나에게는 통증이 없다. 다만 오른쪽 관절의 가동 범위가 백분의 이만큼 줄었다.”

칼“백분의 이라, 그 정도면 부러진 게 아니라 눌린 거다.” 칼은 공구 주머니를 열어 가장 작은 렌치를 꺼냈다. 세나가 말없이 윤활유 통을 건넸고, 건네는 손이 통의 뚜껑을 이미 열어 두고 있었다.

세나“아저씨는 왜 일곱 번째를 고쳐 줘요?” 세나가 상자 위에 앉으며 물었다.

칼“고장 난 건 고치는 게 일이다.” 칼은 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세나“이건 고장이 아니라 맞은 거잖아요. 맞은 것도 고장이에요?”

칼“맞은 것도 고장이다. 원인이 다를 뿐이지.” 칼은 렌치를 한 바퀴 돌렸고, 철인의 팔에서 마른 소리가 사라졌다.

세나는 한참 그 손을 쳐다보다가 낮게 말했다. “엄마도 그랬어요. 고장 난 건 고치는 거라고요.”

칼의 손이 잠깐 멈추었다. 그러나 그는 렌치에서 고개를 들지 않고 물었다. “이르사 벨이 그랬다고.”

세나“네. 우리 집 현관 문손잡이가 헐거워졌을 때도요. 하루 만에 고쳤어요. 정비공은 아니었는데.” 세나는 엄지로 시계 테두리를 한 바퀴 훑었다. 아이는 어머니를 말할 때 한 번도 지난 일처럼 말하지 않았고, 칼은 그 어미를 고쳐 주지 않았다.

칼“정비 노조를 세운 사람이었다더라.” 칼이 대꾸했다. 일곱 번째가 두 사람의 대화를 조용히 들었다. 철인의 눈 불빛이 평소보다 조금 밝아졌다는 것을 칼은 알아챘지만 말하지 않았다.

칼“일곱 번째. 아까 광장에서 박자가 흔들렸을 때 열한 기가 움직였다고 했지. 네가 다시 맞추지 못했다면 그 열한 기는 어떻게 됐겠나.” 칼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곱 번째“확인을 마쳤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확인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넷으로 번졌을 것이다. 박자는 서로를 붙드는 힘이다. 한 기가 놓으면 이웃이 놓는다.”

칼“그러니까 사람들 앞에서 팔을 내밀기 전에 이미 계산을 한 거군.”

일곱 번째“계산했다. 열한 기가 흔들릴 확률은 열에 넷이었다.”

칼“열에 넷이면 도박이다.” 칼이 헛웃음을 냈다.

일곱 번째“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 도박 말고 다른 선택을 찾지 못했다. 당신이 막았다면 나는 멈췄을 것이다. 당신은 막지 않았다.”

칼은 그 마지막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막지 않은 것이 믿음이었는지 늦은 것이었는지 그는 스스로도 계산하지 못했고, 정비공은 계산되지 않는 것을 말로 꾸미지 않는 법을 알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 볼트를 조이고 일곱 번째의 팔을 두 번 두드렸다. 잘 맞았다는 신호였고, 철인이 팔을 천천히 내렸다.

일곱 번째“고맙다.” 일곱 번째가 내린 팔을 한 번 더 굽혀 보며 말했다.

칼“고장 난 걸 고친 것뿐이다.” 칼은 대답을 고르다 짧게 말했다.

일곱 번째“그 말이 가장 정확한 감사의 표현이라는 것을 이제 이해한다.” 철인이 잠시 눈을 깜박이더니 덧붙였다.

세나가 작게 웃었다. 칼은 헛기침을 하며 렌치를 주머니에 넣었다. 멀리서 마르타가 노조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세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고, 그 시선이 작업등 아래로 걸어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V · 시계

마르타“그래도 증거가 모자란다.” 마르타가 작업등 아래로 걸어 나오며 말했다. 목소리가 낮보다 낮았고 걸음은 세 사람 앞에서 멈추었다. “우리가 방금 본 건 기계가 흔들렸다는 거다. 흔들렸다고 그 말이 맞는다는 법은 없어. 장부에 적으려면 숫자가 있어야지.”

칼이 대답하려 했지만 세나가 먼저 움직였다. 아이는 목에서 놋쇠 시계를 풀어 마르타 앞에 내밀었다. 바늘은 네 시 정각에 멈춰 있었다.

세나“이거 보세요. 이 시계는 네 시에 멈춰 있어요. 철인한테 신호가 온 시각이 새벽 네 시라고 아저씨가 그랬어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르타가 시계를 받았다. 굵은 손가락이 뒷면을 더듬다가 거기 새겨진 번호에서 멈추었고, 그는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내쉬지 않았다. 작업등이 그의 짧은 흰머리 위에서 흔들렸다.

마르타“이르사.” 마르타가 시계 뒷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이건 이르사 벨이 쓰던 인장이다. 정비 노조를 만들던 때 허가받은 사람만 갖던 열쇠야. 꼬마, 이걸 어디서 구했지.”

세나“엄마가 목에 걸어 줬어요. 그날 밤에요.” 세나가 시계 줄을 손가락에 감으며 대답했다.

마르타는 시계를 쥔 채 아이를 한참 보았다. 광장 가장자리의 바람이 그의 작업복 소매를 부풀렸다가 가라앉혔다.

이르사 벨은 이십 년 전 마르타와 함께 정비 노조를 세운 사람이었다. 철인이 도시에 들어올 때 반대하는 쪽에도 찬성하는 쪽에도 서지 않고, 철인이 일을 잘못하면 바로 고칠 수 있도록 정비공을 늘리자고 주장한 이였다. 마르타는 그 주장에 반대했고, 졌고, 그 뒤로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마르타는 그것을 십 년 동안 자존심이라고 불렀고 나머지 십 년 동안은 그냥 이름 없는 빈칸이라고 불렀다. 회관 벽 맨 아래 칸에서 귀퉁이가 하얗게 닳은 종이가 그 빈칸의 유일한 기록이었다.

마르타“그 사람이 죽었다고 들었다.” 마르타가 말했다.

세나는 대답하지 않고 시계 테두리를 엄지로 훑었다. 칼이 대신 말했다. “보육 구역이 무너진 날이다.”

마르타는 시계를 쥔 손을 천천히 펴서 세나에게 돌려주었다.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그는 감추지 않았다. “그날 아침에도 그 사람을 봤다. 인사는 안 했지, 서로 얼굴만 보고 지나쳤어.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모르고.” 마르타의 목소리가 한 번 갈라졌다.

세나“마르타 아줌마, 엄마는 아줌마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한 번요.” 세나가 시계를 목에 도로 걸며 말했다.

마르타“뭐라고 했지.” 마르타가 고개를 들었다.

세나“고집이 세서 틀린 말을 해도 끝까지 하는 사람이래요. 그런데 한 번도 거짓말은 안 했다고요.”

마르타는 말없이 서 있었다. 한참 뒤에 낮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말을 아껴 쓰는 사람이었다. 칭찬은 더 아꼈지. 그걸 나한테 썼다니 장부가 또 한 줄 틀어지는군.”

마르타“정비공. 나는 이 아이를 믿지 않는 게 아니다.” 마르타가 칼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이르사의 아이라면 믿는다. 그러나 저 사람들은 나를 믿고 여기 서 있다. 나는 저들에게 말해야 하고, 저 깡통이 정말 사람을 지키고 있다고 단정할 근거가 필요하다. 오늘 밤 안에.”

광장의 사람들이 숨죽이고 둘을 지켜보았다. 요한은 떨어뜨린 망치를 아직 줍지 않은 채 맨 앞에 서 있었다. 칼은 주머니 속의 렌치를 만지작거렸다. 아는 것을 다 말할 수도 있었고, 기체를 숨겨 시간을 벌 수도 있었고, 자기가 앞에 설 수도 있었다. 어느 길도 쉽지 않았고, 어느 길도 틀렸다고 미리 말할 수는 없었다.

세 번째 선택

VI · 고백

칼은 아는 것을 전부 말하기로 했다. 다만 광장에서는 아니었다. 마르타는 그 뜻을 알아듣고 회관 뒷방으로 세 사람을 데려갔다. 뒷방은 장부 창고였다. 삼십 년 치 노조 장부가 벽을 따라 꽂혀 있었고, 등유 램프 하나가 탁자 위에서 타고 있었다. 일곱 번째는 이번에도 문턱 밖에 섰고, 마르타는 이번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칼은 순서를 정해 말했다. 첫째로 지움 신호가 첫날 새벽 네 시에 궤도 중계탑에서 왔고 그 내용이 허가 목록을 지우라는 것이었다는 점, 둘째로 지우려면 철인이 직접 마지막 확인을 해야 하는데 일을 하면 확인으로 간주되기에 철인들이 일을 멈췄다는 점, 셋째로 철인끼리 교신하면 대기가 합쳐져 한꺼번에 확인되므로 일곱 번째가 닷새 동안 누구와도 교신하지 않았다는 점, 넷째로 이레째 새벽 네 시에 저절로 확인되는 시한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곱 번째의 느린 깜박임이 결함이 아니라 도시 철인 전체의 대기 박자라는 것을 말했고, 거기서 한 번 말을 끊었다가 덧붙였다. 그 깜박임을 자기가 이 년 동안 결함이라 적고 열한 번 고치려 들었다는 것, 열한 번 다 실패했다는 것, 그 실패가 도시를 살렸다는 고백이었다.

칼“첫날 배수로에서 나는 이 기체에게 정지 코드를 말했다. 기체는 코드를 알아듣고도 멈추지 않았다. 그때는 고장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그것이 첫 번째 증거였다.”“첫날 배수로에서 나는 이 기체의 앞을 두 팔로 막았다. 기체는 나를 밀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그때 저렸던 팔이 지금 보면 첫 번째 증거였다.”“첫날 배수로에서 나는 이 기체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기체는 나를 지나쳐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시계를 읽었다. 그때는 영문을 몰랐는데 지금 보면 그것이 첫 번째 증거였다.” 칼이 램프 불빛 쪽으로 손등을 내밀며 덧붙였다. 기름 줄이 불빛에 번들거렸다.

마르타“깡통. 너는 왜 닷새 동안 아무하고도 말을 안 했지.” 마르타가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일곱 번째“철인끼리의 신호는 대기 상태를 합친다. 합쳐진 대기는 한 기가 확인하면 전부 확인된다. 그래서 신호를 닫았다.” 일곱 번째가 문밖에서 평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람과 하는 말은 신호가 아니다. 지금 이 말은 교신이 아니다.”

마르타“그러면 광장에 서 있는 다른 기계들은 네가 말을 안 해도 네 박자를 따른다는 건가.”

일곱 번째“그렇다. 박자는 신호가 아니라 눈의 불빛이다. 보는 것은 교신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것이 내가 찾은 유일한 틈이었다.”

마르타는 끝까지 듣고 반론을 세 번 했다. 신호가 있었다는 증거가 기계의 말뿐이라는 것, 시한이 있다는 증거도 기계의 말뿐이라는 것, 박자가 기준이라는 증거는 광장에서 본 것뿐이라는 세 가지였다. 칼은 세 번 모두 같은 방식으로 답했다. 기계의 말이 거짓이라면 광장에서 열한 기가 움직일 이유가 없고, 시한이 거짓이라면 기계가 닷새 동안 일을 멈출 이유가 없으며, 박자가 기준이 아니라면 일곱 번째가 눈을 감았을 때 열한 기가 제자리로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답이었다.

마르타“거짓이 아니라면 이유가 없다라.” 마르타가 램프 심지를 낮추며 그 말을 되풀이했다. “이르사도 그렇게 말했다. 이유 없는 일은 없다고. 그래서 그 사람은 늘 이유를 찾느라 늦었지.”

세나“엄마는 노조 만들 때 어떤 사람이었어요?” 세나가 탁자 모서리에 턱을 괴고 물었다.

마르타“말이 적고 손이 빠른 사람이었다. 회의에서 다들 떠들 때 혼자 공구를 닦았지. 그러다 한마디 하면 그게 결론이 됐다.” 마르타가 대답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장부에는 그 사람한테 받은 게 많고 준 게 없었거든. 사람은 빚이 쌓이면 빚쟁이를 미워하게 된다.”

마르타“처음 만난 날도 기억한다. 하역기 옆에서 그 사람이 내 망치 자루를 보더니 쐐기가 빠졌다고 했지. 내가 삼 년 쓴 망치였다.” 마르타가 덧붙였다. “그날 저녁 쐐기가 빠져서 망치 머리가 바다에 떨어졌다. 그 사람 말은 늘 그런 식으로 맞았다.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기는 어렵다.”

일곱 번째“장부라는 말을 나도 쓸 수 있다면, 나에게 장부는 명령 목록이다.” 일곱 번째가 문밖에서 처음으로 묻지 않은 말을 했다. “받은 명령은 끝나면 지워진다. 지워지지 않은 명령이 하나 있다. 그 하나 때문에 나는 마지막 확인을 할 수 없고, 그래서 서 있다. 당신의 장부에 남은 줄과 내 장부에 남은 줄은 같은 사람이 적었다.”

마르타는 문 쪽을 돌아보았다. 처음이었다. 철인은 문틀 바깥에 서서 눈 불빛을 느리게 깜박이고 있었고, 그 불빛이 뒷방의 램프 불빛과 다른 박자로 벽을 두드렸다. 칼은 마르타의 얼굴에서 무엇인가가 한 번 접혔다 펴지는 것을 보았다. 받은 것을 센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는 일어나 벽 끝의 장부 하나를 뽑아 왔다. 표지가 다른 것보다 낡았고 등이 갈라져 있었다. 펼친 쪽에는 이십 년 전 파업의 날짜와 참가자 이름이 적혀 있었고, 맨 아래에 보증인 칸이 있었다. 보증인 칸에는 이르사 벨이라는 이름과 열여섯 자리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 아래 한 줄은 다른 글씨였다. 보증인 본인이 적은 글씨였고, 벌금을 대신 내는 조건이 없다는 뜻의 짧은 문장이었다.

마르타“이십 년 전 파업 때 노조는 돈이 없었다. 벌금을 못 내면 노조가 해산되는 판이었지.” 마르타가 말했다. “이르사는 노조원도 아니었는데 자기 인장으로 보증을 섰다. 정비공을 늘리자는 주장에 내가 반대한 바로 그 달이었다. 나는 그 보증을 받고도 고맙다는 말을 안 했다. 받은 것은 있고 준 것은 없다. 그게 내 장부의 진짜 모양이다.”

세나“엄마 글씨예요. 이응을 이렇게 세모처럼 써요.” 세나가 보증인 칸의 문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아이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작았고, 손가락은 글씨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세나“이 번호, 시계 뒤에 있는 거랑 같아요.” 세나가 시계를 뒤집어 장부 옆에 놓으며 덧붙였다.

칼이 두 번호를 대조했다. 한 자리씩 소리 내어 읽는 동안 세나가 따라 읽었고, 열여섯 자리가 모두 같았다. 그는 자기 정비 대장의 인장 번호와도 같다는 것을 말하려다, 그 말은 이미 세나가 한 셈이라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 램프 심지가 타는 소리만 뒷방에 남았다.

칼“이 번호가 이 기체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인장이다. 명령의 내용은 기체가 종탑에서 말하겠다고 했다.” 칼이 말했다. “다만 그 명령이 끝나지 않은 동안 이 기체는 마지막 확인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이 기체가 박자의 기준이 된 거다. 이르사 벨이 남긴 명령 하나가 도시를 닷새 동안 붙들고 있었던 셈이다.”

마르타는 장부를 덮지 않은 채 오래 앉아 있었다. 램프가 그의 손마디 그림자를 벽에 크게 그렸다. “좋다. 이르사가 남긴 것이라면 내 눈으로 끝까지 본다. 저 깡통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 하겠다. 다만 조건이 있다. 나도 올라간다.”

칼“계단은 삼백 단이 넘는다.” 칼이 말했다.

마르타“삼십 년 하역했다. 삼백 단쯤은 장부에 적지도 않는다.” 마르타가 망치 자루로 바닥을 한 번 두드리고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그는 장부를 덮지 않고 그대로 펼쳐 두었다. 펼쳐 둔 쪽이 램프 빛에 바랬고, 이르사 벨의 세모난 이응이 그 빛 속에 남았다.

VII · 분열

마르타는 광장으로 돌아가 사람들 앞에 섰다. 작업등 아래 남은 이는 서른쯤이었다. 그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정비공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기계를 부수면 더 나쁜 일이 난다는 것, 오늘 밤 종탑에 오르는 길을 지킬 사람 열 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다. 장부 얘기를 한 줄 보탰다. 삼십 년 동안 기계한테 받은 것과 준 것을 세어 왔는데 오늘 밤 그 장부에 적힌 적 없는 줄이 하나 나왔다는 것, 그 줄을 끝까지 확인하지 않고 덮으면 장부 전체가 틀린다는 말이었다. 그러고는 한 사람씩 이름을 불렀다. 귀먹은 노인이 첫 번째였고 젊은 여자가 두 번째였다.

하역공“대표, 이레째라는 게 정확히 언제요. 집에 애들만 두고 왔는데.” 나이 든 하역공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칼“내일 새벽 네 시다. 그 전에 종탑에서 철회를 보내면 아무 일도 없고, 못 보내면 서 있던 기계들이 한꺼번에 확인을 한다.” 칼이 대신 대답했다. “집에 가도 된다. 다만 네 시 전에는 기계 근처에 가지 마라. 그게 내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다.”

배급소 여자“확인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기계가 사람을 치나요.” 배급소에서 일하는 여자가 두 손을 비비며 물었다. 목소리에 울음이 반쯤 섞여 있었다.

칼“모른다. 누가 사람인지 가리지 못하는 기계가 무엇을 하는지는 아무도 본 적이 없다.” 칼이 대답했다. “모르는 것을 시험하는 데 사람을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시험하지 않으려고 올라가는 거다.”

광장이 조용해졌다가 다시 웅성거렸다. 어떤 이는 집으로 가겠다고 했고 어떤 이는 남겠다고 했다. 마르타는 그 웅성거림을 막지 않고 기다렸다. 하역공은 짐이 정리될 때까지 기다리는 법을 안다고 그는 나중에 칼에게 말했다.

요한“말도 안 돼.” 요한이 앞으로 나섰다. 떨어뜨렸던 망치를 어느새 도로 쥐고 있었고, 말이 빨라지고 있었다. “낮에 저 깡통이 흔들리는 걸 다 봤잖아. 열한 기가 움직였어. 그게 증거지, 지키라는 증거가 아니라 부수라는 증거라고. 대표는 아이 하나 말에 넘어간 거야.”

마르타“요한. 나는 넘어간 게 아니라 장부를 다시 본 거다.” 마르타가 말했다.

요한“장부는 됐어. 우리 아버지도 그 장부에 하역기 사고로 적혀 있지. 그때 기계가 뭘 지켰는데.” 요한이 말을 끊고 뒤의 망치대를 돌아보았다. “갈 사람은 따라와, 계단을 먼저 막는다. 저 깡통이 종탑에 못 오르면 아무것도 못 지우는 거잖아.”

노인“요한아, 네 아버지 일은 줄이 끊긴 거였다. 그 자리에 내가 있었어.” 귀먹은 노인이 성한 귀를 요한 쪽으로 돌리며 말했다.

요한“줄이 끊기든 손을 놓든 깔린 건 똑같아.” 요한이 받아쳤다. 목소리가 갈라졌고, 그는 그것을 숨기려고 더 빨리 말했다. “영감은 귀 하나 살렸으니 그런 소리가 나오지.”

광장이 조용해졌다. 노인은 대꾸하지 않았다. 젊은 여자가 요한의 팔을 잡으려 했으나 요한은 그 손을 뿌리치고 돌아섰다. 망치대 가운데 일곱이 요한을 따라 광장을 빠져나갔다. 횃불 일곱 개가 종탑 쪽 큰길로 멀어졌다. 남은 사람들은 마르타를 보았고, 마르타는 멀어지는 등을 보았다.

칼“막지 않는 건가.” 칼이 물었다.

마르타“막으면 여기서 망치가 부딪친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끼리.” 마르타가 망치 자루를 고쳐 쥐며 대답했다. “삼십 년 동안 그 꼴만은 안 봤다. 오늘 밤에도 안 본다.”

칼“저 청년의 말에도 반은 맞는 것이 있다.” 칼이 낮게 말했다. “기체가 종탑에 못 오르면 지움도 철회도 없다. 다만 그는 지움이 저절로 온다는 걸 모른다. 계단을 막으면 막은 채로 새벽 네 시가 된다.”

마르타“안다. 그래서 큰길로는 안 간다.” 마르타가 망치 자루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저 녀석이 계단을 막는다. 종탑 계단은 하나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둘이다. 부두 뒤 골목으로 돌아가면 승강 홀 뒷문이 있다. 하역공만 아는 문이고, 요한은 하역공이 아니다.”

마르타는 남은 사람들 가운데서 여덟을 더 골랐다. 하역공 셋, 배급소에서 일하는 여자 하나, 크레인 기사 둘, 그리고 낮에 아이를 안고 뒷걸음질 쳤던 여자와 그의 남편이었다. 아이를 안은 여자는 아이를 이웃에게 맡기고 오겠다고 했고, 마르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와 함께 가라고 했다. 세나 혼자 아이이면 세나가 너무 눈에 띈다는 이유였다. 열 명이 되었고, 나머지는 집으로 돌려보냈다.

세나“요한 아저씨는 왜 그렇게 화가 났어요?” 세나가 걸으며 물었다.

마르타“아버지가 하역기 밑에서 죽었다. 기계가 손을 뗀 게 아니라 줄이 끊긴 거였는데, 그 애는 그 차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마르타가 대답했다. “나도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데 이십 년이 걸렸으니 나무랄 수는 없다. 다만 저 애는 그 이십 년을 오늘 밤 안에 끝내야 한다. 그게 문제다.”

세나“그러면 아줌마가 말해 주면 되잖아요. 이십 년 걸린 걸요.”

마르타“말로 되는 거면 장부가 왜 필요하겠나.” 마르타가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걸음이 조금 느려졌고, 칼은 그 말을 마르타가 스스로에게 한 것이라고 짐작했다.

골목은 좁았고 창고 벽 사이로 바닷물 냄새가 올라왔다. 열 명의 발소리가 골목 벽에 부딪혀 돌아왔고, 일곱 번째는 맨 뒤에서 어깨가 벽에 닿지 않도록 몸을 비스듬히 하고 걸었다. 아이를 안은 여자는 처음에는 철인에게서 가장 먼 자리에 섰다가, 세 번째 모퉁이쯤에서 자기도 모르게 철인 바로 앞에서 걷고 있었다. 철인이 앞사람의 걸음을 한 번도 밟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뒤통수로 느꼈다. 세나는 골목의 모퉁이 수를 셌다. 셋째 모퉁이에서 아이는 노인 옆에 붙어 걸으며 귀가 어떻게 먹었느냐고 물었고, 노인은 하역기가 처음 울던 날 자기가 너무 가까이 서 있었다고 대답했다. 가까이 선 것은 기계가 무서워서가 아니라 궁금해서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궁금한 사람은 늘 귀 하나쯤 내놓게 된다는 말에 세나는 웃지 않았고, 노인은 그 진지함이 마음에 든 듯 성한 귀를 아이 쪽으로 돌렸다. 다섯 번째 모퉁이를 돌자 종탑의 검은 윤곽이 창고 지붕 위로 올라왔고, 큰길 쪽에서 요한 일행의 횃불이 계단 입구를 지나 위로 오르는 것이 보였다.

칼“계단 중간에서 기다릴 모양이다. 입구가 아니라.” 칼이 횃불의 높이를 가늠하며 말했다.

마르타“입구는 바람이 세서 횃불이 안 산다. 저 애도 하역공 아들이라 그건 안다.” 마르타가 대답했다. “그러면 중간에서 만나는 거다. 아이 얼굴을 보고도 망치를 들 수 있는지 그때 본다.”

일곱 번째“계단 중간에서 사람이 망치를 들면 나는 막지 못한다. 그것은 낮과 같다.” 일곱 번째가 맨 뒤에서 말했다. 목소리는 평평했고 걸음은 흐트러지지 않았다.

마르타“네가 막을 일이 아니다. 그건 내 장부에 적힌 일이다.” 마르타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칼은 자기 왼쪽 무릎이 골목의 자갈을 싫어한다는 것을 느꼈지만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승강 홀 뒷문 앞에 이르렀을 때 마르타는 열쇠 꾸러미에서 녹슨 열쇠 하나를 골라 들었다. 자물쇠가 한 번에 돌지 않았고, 그는 망치 자루 끝으로 자물쇠를 두 번 두드린 뒤에 다시 돌렸다. 문이 열렸고 안에서 쇠와 기름 냄새가 밀려 나왔다. 열 명과 철인 한 기와 아이 하나가 차례로 안으로 들어갔다.

VIII · 승강 홀

승강 홀은 종탑 하역기의 발치에 있는 넓은 쇠 방이었다. 가운데에 수동 승강기의 녹슨 틀이 서 있었고, 승강기는 십 년 전부터 움직이지 않았다. 그 옆으로 계단이 나선을 그리며 어둠 속으로 올라갔다. 마르타는 횃불을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를 껐다. 위에서 보이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열 명은 벽을 따라 앉았고, 일곱 번째는 계단에서 가장 먼 구석에 섰다.

칼“바로 올라가지 않는 건가.” 칼이 마르타 옆에 앉으며 물었다. 왼쪽 무릎을 먼저 내려놓았고, 무릎은 소리를 냈다.

마르타“지금 올라가면 횃불 들고 흥분한 일곱과 어두운 계단에서 마주친다.” 마르타가 대답했다. “두 시간 기다리면 횃불이 반은 꺼지고 흥분도 반은 꺼진다. 하역공은 밤 교대를 기다리는 법을 안다. 당신 무릎도 두 시간은 쉬어야 삼백 단을 간다.”

일곱 번째“기다리는 것은 계산에 맞다.” 일곱 번째가 구석에서 말했다. “꼭대기의 홈은 신호와 같은 시각에 맞춰져 있다. 새벽 네 시 전 한 시간 안에만 인장을 받는다. 그 전에 꽂으면 잠긴 채로 있다. 지금 올라가도 세 시까지는 할 일이 없다.”

칼“그 말을 왜 지금 하나.” 칼이 물었다.

일곱 번째“지금 물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종탑에 오르는 것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말할 이유가 없었다.” 일곱 번째가 대답했다. 칼은 헛웃음을 냈고, 그 웃음이 이 년 동안 이 기체에게 수없이 냈던 것과 같은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칼은 셈을 했다. 세나의 걸음과 자기 무릎으로 삼백 단은 한 시간이었다. 세 시에 꼭대기에 있으려면 두 시에 출발해야 했고, 지금은 아홉 시를 조금 넘긴 참이었다. 다섯 시간이 남았고 그 가운데 네 시간은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계단 위의 일곱 명이 내려올 수도 있었다. 그는 그 가능성을 마르타에게 말했다.

마르타“내려오면 여기서 만나는 거고, 안 내려오면 위에서 만나는 거다. 어느 쪽이든 만난다.” 마르타가 벽에 기댄 채 눈을 감고 말했다. “마주치면 내가 말한다. 당신은 질문만 해라. 그 애는 설명을 들으면 더 빨라지고, 질문을 받으면 멈춘다. 제 아버지가 그랬다.”

젊은 여자가 벽에서 일어나 마르타에게 왔다. 딸이 집에 혼자 있다는 말을 했고,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마르타는 대답하기 전에 노인을 보았다. 노인이 성한 귀를 여자 쪽으로 돌리고 말했다. 사 년 전 크레인 아래에서 기계가 네 딸을 받아 냈을 때 너는 거기 없었고, 그래도 아이는 살았다는 말이었다. 여자는 한참 서 있다가 도로 벽에 앉았다. 마르타는 그 사이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세나“아저씨, 궁금한 게 있어요.” 세나가 일곱 번째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철인은 한쪽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저씨가 지우고 싶지 않은 게 하나 있다고 했잖아요. 엄마 명령이요. 그런데 왜 지금은 안 말해 줘요?”

일곱 번째“명령의 내용을 지금 말하면 당신과 정비공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그것만 생각할 것이다. 계단에서는 계단을 생각해야 한다.” 일곱 번째가 대답했다. “종탑에서 말하겠다. 명령을 말하는 자리와 명령을 끝내는 자리는 같아야 한다고 계산했다.”

세나“그건 계산이에요, 아니면 아저씨가 그러고 싶은 거예요?”

일곱 번째“그 둘의 차이를 나는 계산할 수 없다. 그것은 모른다고 정확히 말해야 하는 것이다.” 철인의 눈 불빛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다.

세나는 그 대답에 만족한 얼굴은 아니었지만 더 묻지 않았다. 아이는 철인 옆에 앉아 엄지로 시계 테두리를 훑다가 어느새 철인의 팔에 기대어 잠들었다. 일곱 번째는 팔을 움직이지 않았다. 아이를 안은 여자가 그 모습을 오래 보다가 자기 아이를 고쳐 안았다.

칼은 마르타와 나란히 벽에 기대어 있었다. 횃불 하나가 승강기 틀 그림자를 천장에 길게 던졌다. 마르타가 낮에 광장에서 요한의 아버지 얘기를 꺼내지 않은 이유를 칼은 묻지 않았고, 마르타는 묻지 않은 것에 대답하듯 말했다. 요한의 아버지 이름을 자기가 알고 있으며, 그 이름을 광장에서 부르면 그 애가 무너질 것이라서 부르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계단에서는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칼“이름 하나로 사람이 멈추나.” 칼이 물었다.

마르타“이름 하나로 사람이 이십 년을 산다. 멈추는 건 그보다 쉽다.” 마르타가 대답했다. “당신도 저 깡통을 일곱 번째라고 부르지 않나. 번호인데 이름처럼 부른다. 그게 이 년이다.”

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그는 자기 정비 대장의 첫 쪽을 떠올렸다. 입고 번호 일곱, 결함 항목 느린 깜박임, 조치 미완. 이 년 동안 그 줄을 지우지 못한 것이 정비공으로서의 실패라고 그는 적어 왔다. 오늘 밤 그 줄은 다른 뜻으로 읽혔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고쳐 적어야 할지 아직 몰랐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적는 법은 기계가 더 잘 알았다.

두 시가 가까워지자 마르타가 일어섰다. 망치 자루로 바닥을 한 번 두드리는 소리에 열 명이 차례로 일어났다. 노인이 횃불을 들었고, 젊은 여자가 세나를 깨웠다. 세나는 깨자마자 시계를 확인했다. 바늘은 여전히 네 시에 멈춰 있었고, 아이는 그것을 보고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칼은 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정지 코드를 입에 올리던 자기 목소리를 떠올렸고, 그 코드가 오늘 밤에는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칼은 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두 팔을 벌리던 자기를 떠올렸고, 오늘 밤 계단에서는 팔 대신 질문을 벌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칼은 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길을 비켜 주던 자기를 떠올렸고, 오늘 밤 계단에서는 비켜 줄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 요한이기를 바랐다. 일곱 번째가 구석에서 걸어 나와 계단 아래 섰다. 새벽 네 시까지 두 시간이 남아 있었다. 종탑 계단은 이제 혼자 오르는 길이 아니었다.

VI · 남쪽

칼“마르타, 이 기체는 광장에 있으면 안 된다.” 칼이 말했다. “부수려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박자가 깨질 위험이 있다. 그리고 지금 더 급한 곳이 있다. 남쪽 크레인 부두다. 거기 서 있는 기체들이 가장 불안하다. 정비공이 가 봐야 하는데 나 혼자서는 사람들을 물리지 못한다.”

마르타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남쪽에 뭐가 있지.”

칼“박자가 가장 늦게 닿는 곳이다. 흔들리면 거기서 먼저 흔들린다.” 칼이 대답했고, 그 대답의 반은 거짓이었다. 남쪽이 멀다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거기가 지금 흔들린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는 사람들을 일곱 번째에게서 떼어 놓을 거리가 필요했고, 남쪽 부두는 광장에서 가장 멀었다. 첫날 배수로에서 정지 코드를 입에 올렸던 사람이 엿새째 밤에는 거짓말을 입에 올리고 있었고, 칼은 그 둘이 같은 입에서 나왔다는 것을 자기 장부에 적어 두었다.첫날 배수로에서 두 팔을 벌려 기계를 막았던 사람이 엿새째 밤에는 말로 사람을 돌려세우고 있었고, 칼은 어느 쪽이 더 힘든 일인지 아직 몰랐다.첫날 배수로에서 길을 비켜 주었던 사람이 엿새째 밤에는 사람들의 길을 돌리고 있었고, 칼은 그 두 일이 같은 종류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마르타는 오래 망설이다가 사람들에게 돌아섰다. “남쪽부터 간다. 저 깡통 얘기는 돌아와서 한다.” 사람들이 웅성이며 일어났고 몇몇이 일곱 번째 쪽을 힐끔거렸으나 마르타의 목소리가 그들을 먼저 끌고 갔다. 요한만이 끝까지 돌아보았다. 칼은 세나에게 짧게 말했다. 일곱 번째를 데리고 빈 하역 창고로 가서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나오지 말라는 말이었다. 세나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묻지 않는 것이 칼에게는 묻는 것보다 무거웠다.

남쪽 크레인 부두까지는 걸어서 반 시간이었다. 횃불 서른 개가 부두 길을 따라 늘어졌고, 칼은 그 맨 앞에서 마르타와 나란히 걸었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 횃불이 한쪽으로 누웠다. 길가에 서 있는 철인들은 횃불이 지나가도 눈동자 하나 돌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 앞을 지날 때마다 걸음이 빨라졌다.

마르타“정비공. 저 깡통만 이 년이나 고쳤다는 게 사실인가.” 마르타가 걸으며 물었다.

칼“사실이다. 고쳐지지 않았으니까.” 칼이 왼쪽 무릎을 끌면서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대답했다. “정비공은 고쳐지지 않는 것을 제일 오래 붙든다. 고쳐지는 것은 고치고 잊는다.”

마르타“하역공은 반대다. 안 되는 짐은 내려놓고 되는 짐을 든다. 그래야 하루가 끝난다.” 마르타가 말했다. “그래서 당신 같은 사람을 삼십 년 동안 이해 못 했다. 받은 것도 준 것도 없이 한 기계만 붙들고 있는 사람을.”

칼“받은 게 있다. 이 년 동안 저 기체는 한 번도 나를 밀지 않았다.” 칼은 손등의 기름 줄을 보며 말했다. “그게 받은 게 아니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저 기체는 밀지 않은 게 아니라 밀 수 없었다. 그러니 내 장부도 당신 장부만큼 틀렸다.”

마르타“아이는 왜 데리고 다니나. 집에 두면 될 것을.” 마르타가 앞서 걷는 횃불 행렬을 눈으로 세며 물었다.

칼“두면 따라온다. 세 번 두고 세 번 따라왔다.” 칼이 왼쪽 무릎을 끌며 건조하게 대답했다. “네 번째부터는 두지 않았다. 따라오는 아이를 세 번 되돌려 보내는 것보다 한 번 데리고 가는 쪽이 계산이 맞다.”

마르타“이르사도 그랬다. 회의에 아이를 업고 와서는 두면 운다고 했지.” 마르타가 말했다. 그 말 끝에 그는 처음으로 아이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세나라고 했나. 그 사람이 지은 이름이군, 짧은 이름을 좋아했으니까.”

마르타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크레인 부두가 가까워지면서 바람 소리가 커졌고 횃불이 더 낮게 누웠다. 크레인 아래 철인 여섯 기가 서 있었고, 가까이 가자 칼은 자기 거짓말이 사실이 되어 가는 것을 보았다. 여섯 기 가운데 한 기의 눈 불빛이 다른 기체보다 반 박자 빨랐다. 그 기체는 다른 다섯 기보다 크레인 쪽으로 한 걸음 앞에 서 있었고, 그 한 걸음은 닷새 전에는 없던 자국이었다.

칼“멈춰라. 아무도 더 가까이 오지 마라.” 칼이 손을 들어 뒤따르던 횃불 행렬을 세웠다.

마르타“뭐가 보이나.” 마르타가 횃불을 내리며 물었다.

칼“저 기체가 혼자 박자를 놓치고 있다. 거리가 멀어서 일곱 번째의 박자가 약하게 닿는 거다.” 칼이 대답했다. 말이 끝나기 전에 그 기체의 오른팔이 천천히 올라갔다. 확인 장치는 철인의 가슴판 안쪽에 있었고, 올라가는 팔은 그곳을 향하고 있었다.

하역공“부숴 버려, 지금!” 횃불 행렬 가운데서 누군가 외쳤고, 망치 하나가 어깨에서 내려왔다.

마르타“망치 내려라. 정비공이 손대는 기계를 치면 정비공을 치는 거다.” 마르타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망치는 땅에 닿지 못하고 어깨로 돌아갔다.

칼은 뛰었다. 왼쪽 무릎이 두 번째 걸음에서 비명을 질렀지만 그는 세 번째 걸음을 내디뎠다. 철인의 팔이 가슴판에 닿기까지 몇 초가 남았는지 그는 계산하지 않았다. 계산할 시간이 없으면 계산하지 않는 것이 정비공의 규칙이었다. 그는 기체의 왼쪽 다리 뒤 정비 덮개를 손바닥으로 쳐서 열고 그 안의 대기 회로 접점을 손가락으로 눌렀다. 이 년 동안 일곱 번째의 같은 자리를 수없이 만져 본 손이었다. 접점은 뜨거웠다. 확인이 시작되면 대기 회로에 전류가 몰린다는 것을 그는 책이 아니라 손끝으로 알았다.

철인의 팔이 가슴판 앞에서 멈추었다. 손가락 한 마디 거리였다. 눈 불빛이 두 번 빠르게 깜박이다가 느려졌고, 다른 다섯 기와 같은 박자로 돌아왔다. 칼은 접점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숨을 골랐다. 손등의 기름 줄 위로 땀이 흘렀다. 그는 열을 세었다. 열 번의 깜박임이 다섯 기와 같은 간격으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손가락을 뗐다. 그러고는 무릎을 끌며 나머지 다섯 기를 차례로 돌았다. 다섯 기 모두 정비 덮개 안의 접점이 미지근했다. 뜨겁지 않다는 것은 아직 확인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뜻이었고, 미지근하다는 것은 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마르타“방금 그건 뭐였나.” 마르타가 횃불을 든 채 다가왔다.

칼“확인을 하려던 거다. 내가 억지로 대기 상태로 되돌렸지만 오래는 못 간다. 일곱 번째의 박자가 다시 닿아야 한다.” 칼이 대답했다. 그는 일어서려다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 한 번 더 앉았다.

마르타“그러니까 남쪽이 불안하다는 말은 사실이었군.” 마르타가 말했다.

칼“사실이 됐다. 말할 때는 몰랐다.” 칼이 접점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마르타는 그 대답을 한참 곱씹었다. 횃불 빛이 그의 얼굴 주름을 깊게 팠다. “정비공, 당신은 방금 나한테 거짓말을 했다고 고백한 거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사실이 됐다고. 이르사라면 그걸 운이라고 불렀겠지. 나는 그걸 장부에 어떻게 적어야 할지 모르겠다. 속인 것 하나, 살린 것 하나.”

하역공“대표, 저 정비공 말대로면 깡통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게 또 저러면 어떡합니까.” 아까 망치를 내렸던 사내가 말했다.

마르타“찾는다. 찾아서 부수는 게 아니라 찾아서 본다.” 마르타가 망치 자루로 바닥을 한 번 두드리고 사람들에게 돌아섰다. “광장으로 돌아간다. 깡통이 어디 숨었는지 찾는다. 정비공은 무릎이 저 모양이니 뒤에 처져라. 뒤에 처져서 어디로 가는지 내가 보겠다.”

VII · 추적

빈 하역 창고는 광장 뒤 두 번째 건물이었다. 세나는 일곱 번째를 데리고 창고 안쪽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쌓인 빈 상자 사이로 길이 하나 났고, 길 끝에 기름 냄새 나는 어둠이 있었다. 세나는 상자 사이의 걸음 수를 셌다. 서른둘이었다. 일곱 번째는 상자에 어깨가 닿지 않도록 몸을 틀어 들어왔고, 어둠 속에서 그의 눈 불빛만이 느리게 깜박였다.

세나“아저씨가 거짓말한 거 알아요?” 세나가 상자에 등을 기대고 물었다.

일곱 번째“알고 있다. 남쪽이 불안하다는 증거는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지금 이 시각에 남쪽에서 결정된다. 나는 거기 없으므로 계산할 수 없다.”

세나“거짓말이 나중에 참말이 될 수도 있어요?”

일곱 번째“사람의 말에는 그런 종류가 있다고 배웠다. 나에게는 없다. 나는 말하는 시각에 참인 것만 말할 수 있다.”

세나“그러면 엄마가 아저씨한테 한 말도 그때 참이었던 거예요?” 세나가 시계를 두 손으로 가슴에 대고 물었다. “그 명령이요. 아저씨가 지우고 싶지 않다는 거.”

일곱 번째“그 명령은 그때 참이었고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내용은 종탑에서 말하겠다. 명령을 말하는 자리와 명령을 끝내는 자리는 같아야 한다고 계산했다.”

세나“왜 자꾸 종탑이에요. 여기서 말하면 안 돼요?”

일곱 번째“여기서 말하면 당신은 여기서 울 것이다. 울면 걸음 수를 세지 못한다. 걸음 수를 세지 못하면 어둠 속에서 길을 잃는다.” 일곱 번째가 반 박자 늦게 눈을 깜박이며 대답했다. “이것은 계산이다. 그러나 계산만인지는 모른다.”

세나는 그 대답을 생각하다가 시계를 꺼내 엄지로 테두리를 훑었다. 어둠 속에서 놋쇠가 희미하게 빛났다. 걸음 수를 세는 버릇은 어머니에게서 배웠다. 보육 구역의 긴 복도를 어머니는 늘 세면서 걸었고, 세나는 그 옆에서 같이 세다가 숫자를 먼저 외웠다. 멀리 광장 쪽에서 횃불 빛이 창고 높은 창에 비쳤다가 사라졌다. 세나는 걸음 수 서른둘을 거꾸로 세어 보았다. 그러면 밖으로 나가는 길이 된다는 것을 아이는 알고 있었다. 들어올 때 뒷문도 보아 두었다. 그 문까지는 열아홉 걸음이었다.

세나“아저씨, 보육 구역 복도는 몇 걸음이었어요? 엄마랑 세던 거요.” 세나가 어둠 속에서 물었다.

일곱 번째“동쪽 복도는 백사십 걸음이었다. 당신 어머니의 걸음으로. 당신의 걸음으로는 이백십이였다.” 일곱 번째가 대답했다. “나는 그 복도를 하루에 열두 번 지났다. 숫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세나“그것도 지우라는 신호에 들어 있어요?”

일곱 번째“아니다. 신호는 허가 목록만 지우고 걸음 수는 목록이 아니다.” 일곱 번째가 대답했다. “다만 목록이 지워지면 그 걸음 수가 누구의 것이었는지 나는 모르게 된다. 숫자는 남고 사람은 지워진다. 그것이 내가 서 있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시간이 흘렀다. 창고 지붕의 틈으로 별이 하나 보였다가 구름에 가렸다. 일곱 번째는 한 번도 자세를 바꾸지 않았고, 세나는 그 발치에 앉아 철인의 눈 불빛으로 시간을 쟀다. 느린 깜박임 백 번이 몇 분인지 아이는 몰랐으나 그것을 세는 동안은 무섭지 않았다. 세나가 삼백을 넘겼을 때 창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하나가 아니라 여럿의 발소리였고, 그 사이로 쇠가 쇠에 닿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망치 자루가 상자 모서리를 두드리는 소리였다. 상자 하나가 넘어지며 바닥에 부딪혔고, 누군가 발로 상자를 걷어차는 소리가 이어졌다. 세나는 숨을 삼켰다.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다.

마르타“깡통, 거기 있는 거 안다. 정비공은 남쪽에서 무릎이 나가 뒤에 처졌다.” 마르타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렸다. “내가 들어가서 끌어내기 전에 나와라. 아이도 같이.”

마르타“요한, 상자 그만 엎어라. 남의 창고다.” 마르타의 목소리가 상자 넘어지는 소리를 눌렀다. “엎어서 나올 거면 벌써 나왔다.”

요한“상자를 다 엎어. 뒤에 있을 거야.” 요한의 목소리라는 것을 세나는 금세 알아들었다. 말이 빨라서 끝이 뭉개졌고, 그 뒤로 상자가 연달아 넘어졌다.

일곱 번째“나가겠다. 당신은 여기 있어라.” 일곱 번째가 상자 사이에서 몸을 일으키며 낮게 말했다.

세나“안 돼요. 아저씨가 나가면 저 사람들이 때려요. 그러면 박자가 흔들리잖아요.” 세나가 철인의 팔을 두 손으로 붙들고 빠르게 말했다. “뒷문이 있어요. 아까 들어올 때 봤어요. 아저씨는 뒷문으로 나가서 칼 아저씨한테 가요. 저는 앞으로 나갈게요. 저는 안 때려요.”

일곱 번째“사람이 사람을 치는 일은 내 규칙 밖에 있다. 그것은 계산할 수 없다. 그리고 나는 당신을 지키라는 명령 아래 있다.”

세나“지키는 건 옆에 서 있는 것만이 아니에요. 아저씨가 부서지면 아무도 못 지켜요. 그러니까 제가 계산할게요.” 세나가 철인의 팔을 놓고 뒷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열아홉 걸음이에요. 왼쪽으로 돌아서 열아홉 걸음 가면 문이 나오고, 문은 밀면 열려요.”

철인은 반 박자 늦게 눈을 깜박였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뒷문 쪽 어둠으로 들어갔다. 발소리가 나지 않았다. 세나는 철인이 자기 걸음 수를 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시계를 두 손으로 쥐고 상자 사이의 길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번에는 걸음 수를 세지 않았다. 서른둘을 다 세기 전에 횃불 빛이 얼굴에 닿았다.

마르타가 창고 한가운데 서 있었다. 뒤에 망치를 든 이가 열쯤 있었고 그 가운데 요한도 있었다. 넘어진 상자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세나는 마르타 앞에서 멈추고 시계를 들어 올렸다.

세나“철인은 여기 없어요, 뒷문으로 나갔어요. 저는 도망가지 않고 여기 서 있을게요. 아줌마, 저를 때릴 거예요?”

요한“뒷문이라고? 종탑이야, 종탑으로 가는 거라고.” 요한이 소리쳤다. 그는 뒷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마르타“요한, 서라.” 마르타가 손을 들어 요한을 막았다. 손은 들었으나 눈은 아이에게서 떼지 않았다. 횃불이 그의 얼굴 한쪽만 비추어 주름이 깊어 보였다. “속았다. 오늘 두 번째다. 정비공은 거짓말을 했고 아이는 시간을 벌었다. 장부가 두 줄 틀어졌군.”

세나“아줌마 장부에 엄마는 어떻게 적혀 있어요?” 세나가 물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고, 엄지는 시계 테두리를 쉬지 않고 훑었다.

마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한참 뒤에 망치 자루로 창고 바닥을 한 번 두드렸다. 소리가 빈 창고에 길게 울렸다. 뒤의 사람들이 그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숨을 내쉬었다.

마르타“가라. 네 어미 얼굴로 서 있으니 내가 손을 못 대겠다.” 마르타가 말했다. “그러나 종탑 계단에서 다시 본다. 거기서는 아이 얼굴이 아니라 장부로 볼 거다. 요한, 뒷문으로 나가는 길은 막지 마라. 우리는 앞길로 간다.”

요한“앞길이 더 멀어. 그걸 알면서.” 요한이 뒷문 쪽 어둠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

마르타“안다. 그래서 앞길로 간다.” 마르타가 요한의 어깨를 지나쳐 문 쪽으로 걸으며 대답했다. 요한은 더 말하지 않았으나 망치를 쥔 손가락이 하얘졌다.

세나는 돌아서서 뛰었다. 왼쪽으로 돌아 열아홉 걸음이었고, 아이는 이번에는 세면서 뛰었다. 뒷문 밖에서 칼이 벽을 짚고 서 있었고, 일곱 번째가 그 옆에서 눈 불빛을 느리게 깜박이고 있었다. 뒤에서 횃불이 창고를 빠져나와 앞길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VIII · 뒷길

칼“뒷길로 간다. 창고 뒤로 돌아 방파제를 따라가면 종탑 발치가 나온다.” 칼이 벽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떼자마자 왼쪽 무릎이 꺾였고, 그는 다시 벽을 짚었다.

일곱 번째“당신의 무릎은 그 길을 걷지 못한다. 내가 들겠다.” 일곱 번째가 팔을 내밀었다.

칼“기계가 사람을 안고 뛰는 걸 횃불 든 사람들이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나.” 칼이 벽에서 등을 떼지 않은 채 거절했다. “팔만 빌려라. 걷는 건 내가 한다.”

일곱 번째“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계산할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걸을 수 없다는 것은 계산할 수 있다.” 철인은 그렇게 말하고도 팔을 내밀어 칼의 겨드랑이 아래를 받쳤다. 들지는 않았다. 칼이 말한 대로였다.

세 사람은 창고 뒤 방파제 길로 나섰다. 방파제는 바다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 그 끝에서 종탑 하역기가 밤하늘을 가르고 서 있었다. 길은 좁았고 왼쪽은 바다, 오른쪽은 창고 뒷벽이었다. 세나가 앞에서 걸으며 걸음 수를 셌다. 칼은 일곱 번째의 팔에 반쯤 매달려 걸었고, 철인은 칼의 걸음에 맞추느라 한 걸음마다 반 박자씩 기다렸다. 그 기다림은 이 년 동안 칼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종류의 느림이었다.

뒤쪽 광장에서 횃불이 둘로 갈라졌다. 하나는 앞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고, 다른 하나는 더 빠르게 창고 옆 골목으로 들어왔다. 칼은 빠른 쪽이 요한이라는 것을 알았다. 마르타는 앞길로 간다고 했고 그 말을 지킬 사람이었지만, 요한은 마르타가 아니었다.

세나“아저씨, 뒤에서 와요. 빠른 쪽이요.” 세나가 뛰던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말했다.

칼“보지 말고 세라. 몇 걸음 남았나.” 칼이 철인의 팔에 매달린 채 숨을 고르며 물었다.

세나“몰라요. 여기는 처음 와 봐요.” 세나가 다시 앞을 보고 뛰면서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다시 세기 시작했다. 모르는 길을 세는 것은 아는 길을 세는 것과 다른 일이었으나, 아이는 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일곱 번째“사백이십 걸음이다. 당신 걸음으로. 정비공 걸음으로는 삼백팔십이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뒤의 횃불은 그보다 빠르다. 방파제 끝에 닿기 전에 따라잡힌다.”

칼“그러면 따라잡히기 전에 문 안에 들어갈 방법을 계산해라.” 칼이 말했다.

일곱 번째“하나 있다. 내가 당신을 든다.” 일곱 번째가 칼의 걸음을 기다리며 대답했다. 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허락이라는 것을 철인은 이 년 동안 배운 적이 없었으나 그 자리에서 계산해 냈다. 철인은 칼을 들어 올렸다. 가볍게 들지는 않았다. 사람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손이었고, 손은 칼의 어깨와 무릎 아래를 조심스럽게 찾았다.

방파제 끝까지 철인은 뛰지 않고 빠르게 걸었다. 뛰면 박자가 흔들릴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세나가 앞에서 뛰었고 철인이 그 뒤를 따랐고, 칼은 철인의 팔 안에서 자기가 이 년 동안 눕혀 놓고 고치던 기계에게 들려 가는 것을 바다 냄새와 함께 느꼈다. 그는 그것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른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종탑 하역기의 발치에는 승강 홀이 있었고, 홀의 정면에 하역공들이 쓰는 철문이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닷새 동안 아무도 종탑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갔고, 칼은 바닥에 내려지자마자 문 안쪽의 빗장을 찾았다. 하역공들이 밤에 안에서 거는 굵은 쇠 빗장이었고, 녹이 슬어 있었다.

칼“일곱 번째, 이 빗장을 걸 수 있나.” 칼이 물었다.

일곱 번째“걸 수 있다. 그러나 문을 잠그는 것은 밖의 사람을 가두는 것과 같은 동작이다. 그것이 첫째 규칙에 걸리는지 계산하고 있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칼“밖은 부두다. 가두는 게 아니라 들이지 않는 거라고 나는 본다. 질문이다, 명령이 아니라.” 칼이 말했다.

일곱 번째“질문으로 들었다. 답은 걸 수 있다는 것이다.” 철인은 그렇게 말하고 빗장을 두 손으로 들어 고리에 걸었다. 녹이 갈리는 소리가 홀에 울렸다. 빗장이 걸리자마자 밖에서 자갈을 밟는 발소리가 방파제 끝에 닿았다.

세나는 문에서 물러나 계단 아래 섰다. 계단은 나선을 그리며 어둠 속으로 올라갔다. 아이는 첫 단에 발을 올렸다가 내려놓고 칼을 돌아보았다. 칼은 바닥에 앉은 채 무릎을 두 손으로 감싸고 있었다.

세나“지금 올라가요? 아저씨 무릎은요?”

일곱 번째“지금 올라갈 필요는 없다. 꼭대기의 홈은 신호와 같은 시각에 맞춰져 있다. 새벽 네 시 전 한 시간 안에만 인장을 받는다. 그 전에 꽂으면 잠긴 채로 있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세 시까지는 여기서 기다리는 것이 계산에 맞다. 정비공의 무릎도 그렇다.”

칼“그 말을 왜 지금 하나.” 칼이 물었다.

일곱 번째“지금 물었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가 대답했다. 칼은 헛웃음을 냈고, 그 소리가 이 년 동안 이 기체 앞에서 수없이 냈던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밖에서 발소리가 문 앞에 멈추었다. 횃불 빛이 문틈으로 가늘게 새어 들어왔다. 요한의 목소리가 무어라 외쳤으나 철문이 두꺼워 말은 들리지 않았다. 이어서 다른 발소리들이 더 천천히 도착했고, 그 가운데 망치 자루로 자갈을 두드리는 소리가 하나 섞여 있었다. 마르타였다. 그는 문을 두드리지 않았고, 아직은 두드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문 앞에 서 있기만 했다.

칼은 세나를 불러 자기 외투 자락을 덮어 주었다. 일곱 번째는 문과 계단 사이에 서서 눈 불빛을 느리게 깜박였다. 문 밖의 횃불 빛이 그 불빛과 어긋난 박자로 흔들렸다. 칼은 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정지 코드를 말하던 자기를 떠올렸다. 그때 이 기체를 멈추려 했던 사람이 오늘 밤에는 이 기체에게 들려 문 안으로 들어왔다.칼은 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두 팔을 벌려 이 기체를 막던 자기를 떠올렸다. 그때 막으려 했던 사람이 오늘 밤에는 이 기체의 팔에 들려 문 안으로 들어왔다.칼은 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이 기체에게 길을 비켜 주던 자기를 떠올렸다. 그때 비켜 준 사람이 오늘 밤에는 이 기체에게 길을 내어 달라고 하고 있었다. 새벽 네 시까지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세 사람의 숨이 천천히 가라앉았고, 세나는 계단의 단 수를 어둠 속에서 눈으로 세기 시작했다.

VI · 해체

칼은 일곱 번째 앞으로 걸어 나가 섰다. 정비공의 어깨는 망치대 앞에서 유난히 좁아 보였다. “이틀이다. 이틀 안에 내가 틀렸다는 걸 증명할 수 있으면 증명하겠다. 못 하면 이 기체는 내 말대로 사람을 지키고 있는 거다. 그동안 이 기체에 손대려면 나부터 쳐라.”

마르타“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하나.” 마르타가 말했다.

칼“알고 한다. 정비공은 이유를 모르는 동작을 싫어한다. 나는 이 기체가 왜 이 아이를 지키는지 아직 다 모른다. 이틀이면 안다.”

요한“이틀 뒤에 틀렸으면 어쩔 건데. 그때는 저 깡통이 다 지워 버린 다음이잖아.” 요한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떨어뜨렸던 망치를 도로 쥐고 있었고, 뒤의 몇몇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칼“맞다. 그래서 이틀이 아니라 하루 반이다. 이레째 새벽 네 시가 지나면 내가 틀렸는지 맞았는지 누구나 안다.” 칼이 요한의 눈을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틀렸으면 그때 나를 쳐라. 내가 서 있을 곳은 저 기체 앞이고 어디 가지 않는다.”

마르타는 한참 침묵한 뒤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틀이다. 그동안 아무도 저 깡통에 손대지 마라. 대신 나는 저 정비공 옆에 붙어 있겠다. 이틀 동안 한 발도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망치를 내렸다. 요한은 끝까지 내리지 않았으나 마르타가 그를 보자 고개를 돌렸다. 귀먹은 노인이 한 걸음 나와 칼의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물러섰다.

칼은 조건을 하나 더 걸었다. 정비 구역에서 기체를 열어 보겠다는 조건이었다. 열어서 안에 있는 것을 마르타가 직접 보게 하겠다는 뜻이었다. 마르타가 따라왔고 세나가 따라왔고, 일곱 번째는 묻지 않고 걸었다. 광장을 벗어날 때 요한이 뒤에서 무어라 말했으나 마르타는 돌아보지 않았다.

정비 구역은 광장에서 걸어서 십 분이었다. 칼이 문을 열자 쇠와 윤활유 냄새가 밀려 나왔다. 마르타는 문턱에서 안을 둘러보았다. 벽을 따라 공구가 걸려 있었고, 선반 한 칸에 두꺼운 대장 두 권이 꽂혀 있었다. 그는 대장을 뽑아 펼쳤다. 첫 쪽에 입고 번호 일곱, 결함 항목 느린 깜박임, 조치 미완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로 날짜가 다른 열한 줄이 이어졌다. 모두 끝이 미완이었다.

마르타“열한 번 고치려 했군. 이 년 동안.” 마르타가 대장에서 눈을 들어 칼을 똑바로 보았다.

칼“열한 번 실패했고, 열두 번째는 하지 않았다. 왜 안 했는지 그때는 몰랐다.” 칼이 대답했다. “지금 보면 그 열한 번이 도시를 열한 번 끝낼 뻔한 거다. 내가 고쳤다면 박자가 사라졌을 테니까.”

마르타“그러면 당신 장부에는 실패 열한 줄이 아니라 살린 것 열한 줄이 적혀야 하는군.” 마르타가 대장을 덮어 선반에 도로 꽂았다. “장부라는 게 그렇다. 같은 줄이 어느 날 반대로 읽힌다.”

마르타“여기서 사나. 침대가 없는데.” 마르타가 정비 구역 안쪽을 둘러보며 물었다.

칼“집은 따로 있다. 다만 이 년 동안 밤에 여기 있는 날이 더 많았다.” 칼이 대답했다. “아이가 온 뒤로는 집에서 자는 날이 늘었다. 아이가 집에 있으면 정비공도 집에 있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다.”

정비 구역의 정비대는 이 년 동안 일곱 번째가 수없이 누웠던 자리였다. 칼은 작업등을 켜고 철인을 눕혔다. 가슴판의 녹 자국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그는 가슴판 가장자리의 볼트 여덟 개를 차례로 풀었고, 손등의 기름 줄 위로 작업등 불빛이 미끄러졌다. 첫날 정지 코드를 말했을 때 이 기체가 왜 멈추지 않았는지, 그는 이제 그 답이 이 판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첫날 두 팔로 길을 막았을 때 이 기체가 왜 무릎을 꿇었는지, 그는 이제 그 답이 이 판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첫날 길을 비켰을 때 이 기체가 왜 자기를 지나쳐 아이 앞에 멈췄는지, 그는 이제 그 답이 이 판 아래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일곱 번째“판을 열어도 좋다. 다만 다시 닫을 때 박자가 한 번 늦는다. 그 한 번이 도시에 어떻게 닿을지는 계산할 수 없다.” 일곱 번째가 누운 채 말했다.

칼“한 번이면 광장에서 흔들린 것보다 작다.” 칼이 대답했다. “열한 기가 움직였을 때 네가 되돌렸다. 한 번 늦는 정도는 되돌릴 수 있지.”

일곱 번째“그렇다. 그러나 광장에서는 내가 두 발로 서 있었고 지금은 누워 있다. 누운 자세에서 박자를 되돌린 적이 없다.”

칼은 손을 멈추고 그 말을 생각했다. 그러고는 정비대의 등받이를 올려 철인을 반쯤 앉혔다. “이러면 되나.”

일곱 번째“계산이 바뀐다. 가능할 것이다.”

마지막 볼트가 풀리고 가슴판이 들렸다. 안쪽은 칼이 아는 모양이었다. 대기 회로와 유압 관과 허가 목록 저장판이 있었고, 저장판 가장자리에 열여섯 자리 번호가 새겨져 있었다. 그 번호는 이 기체에게 마지막으로 명령을 내린 인장의 번호였다. 저장판 위에는 작은 표시등이 줄지어 있었고, 그 가운데 하나가 붉게 켜져 있었다.

일곱 번째“저장판에는 허가받은 사람 열한 명이 적혀 있다. 보육 구역의 정비 관리자 하나, 정비공 셋, 하역 감독 둘, 그 밖의 다섯이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그 열한 명이 나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의 전부다. 목록이 지워지면 나는 그 열한 명과 다른 사람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사람이라는 범주 자체가 비게 된다.”

마르타“저 붉은 건 뭔가.” 마르타가 작업등 아래로 몸을 숙이며 물었다.

일곱 번째“허가 목록의 한 항목에 지우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는 뜻이다. 그 항목은 정비공 칼 오르벡이다.” 일곱 번째가 열린 가슴판 아래에서 대답했다. “그는 삭제 대기 상태다. 명령은 내릴 수 없으나 질문은 막히지 않는다.”

마르타“그러면 이 정비공은 이 년 동안 고친 기계한테 명령 하나 못 내리는 처지로군.” 마르타가 칼을 보았다.

칼“그렇다. 그래서 명령 대신 묻는다, 묻는 건 아직 된다.” 칼이 대답했다.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하나뿐이다. 세나, 시계를 뒤집어 여기 대 봐라.”

세나가 시계를 저장판 옆에 놓았다. 뒷면의 번호와 저장판의 번호가 같았고, 아이는 두 번호 사이에 손가락을 대고 한 자리씩 짚었다. 마르타가 두 번호를 번갈아 읽었다. 그는 두 번 읽고, 세 번째에는 입술만 움직였다.

마르타“이르사가 이 깡통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는 거군.” 마르타가 말했다.

칼“그렇다. 명령의 내용은 기체가 아직 말하지 않았다. 종탑에서 말하겠다고 했다. 다만 그 명령이 끝나지 않은 동안 이 기체는 마지막 확인을 할 수 없다. 그게 이 기체가 도시의 박자가 된 이유다.”

마르타“이르사는 늘 그랬다. 일을 크게 벌여 놓고 열쇠는 엉뚱한 곳에 숨겼지. 이번에는 아이의 목에 걸었군.” 마르타가 허리를 폈다. 망치는 어깨가 아니라 손에 들려 있었다. “정비공, 이걸 광장에서 열었으면 사람들이 믿었을까.”

칼“번호 열여섯 자리를 광장에서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이다. 그래서 당신만 데려왔다.” 칼이 대답했다.

칼은 가슴판을 도로 얹고 볼트를 조였다. 마지막 볼트가 잠기는 순간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이 한 번 길게 꺼졌다가 켜졌다. 세 사람은 숨을 멈추고 창밖을 보았다. 정비 구역 입구에 서 있는 철인 둘의 눈이 같은 길이로 꺼졌다가 같은 박자로 돌아왔다. 일곱 번째가 반쯤 앉은 채로 말했다. “되돌렸다, 한 번이었다.”

VII · 밤샘

밤이 깊자 마르타는 칼을 데리고 부두 끝으로 나갔다. 감시라고 했지만 걷는 모양은 산책에 가까웠다. 세나는 정비 구역에서 일곱 번째의 팔에 기대어 잠들었고, 철인은 아이를 깨우지 않으려고 눈을 거의 깜박이지 않았다. 안개가 물 위에서 올라와 두 사람의 발목을 감쌌다.

마르타는 계류 기둥에 망치를 기대 세우고 그 옆에 앉았다. “삼십 년 장부 얘기를 하나 해 주지. 사람들은 내가 기계한테 일자리를 잃었다고 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장부에는 그 밑에 한 줄이 더 있다.”

칼은 왼쪽 무릎을 먼저 내려놓고 그 옆에 앉았다.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말할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마르타“아들이 있었다. 하역공이었고 스물넷이었다. 십구 년 전에 철인이 처음 들어오던 해, 사람과 기계가 같은 하역기를 번갈아 쓰던 때였지. 교대가 엉켜서 사람이 올라가 있는 줄 모르고 기계가 하역기를 돌렸다.” 마르타가 말했다. “기계 잘못이 아니었다. 교대표를 짠 건 노조였고 그 노조 대표가 나였다. 그래서 나는 장부에 기계한테 아들을 잃었다고 적지 않았다. 일자리라고 적었다. 그쪽이 더 견딜 만했으니까.”

칼“사람들이 남편이라고 아는 건 뭔가.” 칼이 물었다.

마르타“남편은 그보다 먼저 병으로 갔다. 사람들이 섞어서 기억하는 걸 내가 고치지 않았을 뿐이다.” 마르타가 대답했다. “이르사는 알았다. 그 애 장례에 와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서 있다 갔다. 그 다음 달에 내가 정비공을 늘리자는 그 사람 주장에 반대했지. 기계를 더 잘 고치자는 말이 그때 나한테는 기계를 더 들이자는 말로 들렸다.”

칼“아들 이름은.” 칼이 물었다.

마르타“아직 입에 안 올린다. 십구 년 동안 한 번도 안 올렸다.” 마르타가 바다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대답했다. “올릴 때가 오면 올린다. 오늘 밤은 아니다.”

마르타는 계류 기둥에 기대 세운 망치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그것이 누구의 망치였는지를 말했다. 아들이 열여덟에 노조에서 받은 첫 망치였고, 사고가 난 날 하역기 아래에서 꺼낸 것이었으며, 그 뒤로 십구 년 동안 자기 어깨에 얹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노조 대표의 망치라고 알았고 마르타는 그것도 고치지 않았다.

칼“십구 년이면 자루가 두 번은 갈렸겠군.” 칼이 말했다. 정비공다운 말이었고, 그는 말하고 나서 그것이 위로가 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마르타“세 번 갈았다. 머리는 그대로다.” 마르타가 망치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며 대답했다. “자루는 갈아도 머리는 안 갈리는 게 망치다. 사람도 그렇더군.”

마르타“당신은 저 깡통을 처음 받던 날을 기억하나.” 마르타가 물었다.

칼“기억한다. 보육 구역 쪽에서 입고 서류 없이 왔다. 가슴판에 녹이 슬어 있었고 눈 박자가 느렸다. 결함품이라고 적고 선반 끝에 세워 뒀다.” 칼이 대답했다. “한 달 뒤에 처음 열어 봤고, 그때부터 이 년이다. 그동안 저 기체는 내가 묻는 말에만 대답했다. 안 물으면 한마디도 안 했다. 그걸 결함이라고도 적었다.”

마르타“안 물으면 말을 안 하는 건 이르사가 만든 기계의 버릇이다. 그 사람이 그랬으니까.” 마르타가 계류 기둥에서 등을 떼고 일어서며 말했다. “결함이 아니라 집안 내력이군.”

칼은 그 말에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웃었다. 짧은 웃음이었고 안개 속으로 금세 사라졌으나, 마르타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표시로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바다 위로 철인들의 눈 불빛이 같은 박자로 깜박였고, 그 박자는 정비 구역 안에서 아이를 팔에 얹고 서 있는 기계 한 기에서 나오고 있었다.

마르타“철회가 되면 당신은 뭘 할 건가.” 마르타가 물었다.

칼“대장을 고친다. 결함이라고 적은 열한 줄을 다른 말로 다시 적는다.” 칼이 손등의 기름 줄을 내려다보며 대답했다. “무슨 말로 적을지는 아직 모른다. 모르는 채로 적지는 않을 거다.”

마르타“나는 사람들에게 장부를 다시 읽어 준다. 삼십 년 치를 처음부터.” 마르타가 말했다. “그리고 하나 묻겠다, 저 아이는 제 어미가 죽은 걸 아나.”

칼“안다고 본다. 그런데 한 번도 지난 일처럼 말하지 않는다. 엄마는 이렇게 한다, 엄마는 저렇게 말한다, 늘 그런 식이다.” 칼이 대답했다. “나는 그 어미를 고쳐 주지 않았고, 고쳐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르타“고치지 마라. 그건 아이 장부고, 남의 장부에 손대는 게 아니다.” 마르타가 말했다. “나도 십구 년 동안 한 줄을 안 고쳤다. 그 줄 덕에 살았다.”

칼은 바다를 보았다. 안개 너머로 철인들의 눈 불빛이 같은 박자로 깜박였다. 그는 자기 장부를 생각했다. 이 년 동안 결함품이라 적어 둔 기체가 사실은 도시 전체의 박자였다는 것을, 그는 아직 자기 대장의 어느 줄에 적어야 할지 몰랐다.

마르타“당신은 왜 그 아이를 들였나. 정비공 혼자 사는 집에 아이가 왔는데.” 마르타가 물었다.

칼“현관에 있었다. 그 밤에 문을 열었더니 아이가 있었고 바닥에 윤활유 자국이 있었다.” 칼이 대답했다. “윤활유 자국은 철인 발자국이다. 누가 데려왔는지 그때 알았지만 왜 데려왔는지는 몰랐다. 들인 이유는 그뿐이다. 현관에 있었다는 것, 합리적인 이유는 그거 하나다.”

마르타“합리적이라.” 마르타가 그 말을 입 안에서 한참 굴리다가 뱉었다. “이르사도 그 말을 썼다. 사람을 도울 때마다 합리적이라고 했지. 당신들 정비공은 그 말 뒤에 숨는 버릇이 있군.”

칼“숨는 게 아니라 적는 거다. 다른 말로 적으면 장부가 안 맞는다.” 칼이 대답했다. “나도 한 줄 틀린 것이 있다. 이 년 동안 저 기체의 느린 깜박임을 고치려 했다. 결함이라고 적었다. 고쳐졌다면 도시가 닷새 전에 끝났을 거다. 내가 못 고친 게 아니라 저 기체가 고쳐지지 않은 거라는 걸 오늘에야 알았다.”

마르타“그러면 당신 장부도 받은 게 하나 있군. 못 고친 것 하나.” 마르타가 낮게 웃었고, 그 웃음에는 이번에는 힘이 조금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안개가 걷히면서 종탑의 윤곽이 부두 끝에서 하늘로 올라갔다. 그 꼭대기에 교신 장치의 작은 불빛이 하나 켜져 있었고, 그 불빛은 철인들의 박자와 상관없이 일정하게 깜박였다. 칼은 그것을 오래 보다가 일어섰다. 무릎이 소리를 냈고 그는 그 소리를 기둥을 짚는 것으로 덮었다.

칼“이틀이라고 했지만 이틀을 다 쓰지 않겠다.” 칼이 말했다. “날이 밝기를 기다릴 이유가 없으니 지금 올라간다. 새벽 네 시가 되기 전에 꼭대기에 있어야 한다.”

마르타“이틀 조건을 하루 만에 깨는 건가.” 마르타가 물었다.

칼“조건은 당신이 기체에 손대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늦게 가는 것은 조건에 없었다.”

마르타“그 말솜씨도 이르사한테 배웠나.” 마르타가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도 조건에 없는 걸로 늘 나를 이겼다.”

마르타는 계류 기둥에 기대 세운 망치를 집어 들었다가, 한참 들여다보고는 정비 구역 쪽으로 걸어가 정비대 위에 내려놓았다. 잠든 아이 옆에 망치가 놓였고, 일곱 번째의 눈 불빛이 그것을 한 번 비추었다 지나갔다. 마르타는 빈손으로 돌아섰다. 삼십 년 동안 어깨에 얹고 다닌 무게가 없어진 어깨는 한쪽이 조금 낮았다.

마르타“감시자는 손이 비어야 한다. 받은 것과 준 것을 세려면 두 손이 다 필요하거든.” 마르타가 빈 두 손바닥을 칼에게 펴 보이며 말했다. “아이를 깨워라. 계단은 삼백 단이다.”

VIII · 출발

세나는 깨우자마자 시계부터 확인했다. 바늘은 네 시에 멈춰 있었고, 아이는 그것을 보고서야 눈을 비볐다. 일곱 번째가 정비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 년 동안 수없이 누웠던 자리였고, 철인은 일어서서 그 자리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일곱 번째“이 정비대에 다시 눕게 될지는 계산할 수 없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누구에게 한 말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칼“눕게 되면 그때 고친다. 그게 정비공의 일이다.” 칼이 바닥의 공구함을 열어 안을 뒤지며 대답했다. 그는 가장 작은 렌치와 윤활유 통과 손전등을 골라 허리 주머니에 넣었다. 큰 공구는 두고 갔다. 삼백 단을 들고 오를 무게가 아니었다.

세나“아줌마 망치가 왜 여기 있어요?” 세나가 정비대 위의 망치를 보고 물었다.

마르타“두고 간다. 네가 보관해라.” 마르타가 문가에 기대선 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무거우면 거기 두고. 나중에 찾으러 올 테니.”

세나“나중에 언제요?” 세나가 되물었다.

마르타“새벽 네 시가 지나고 나서다. 그때 내가 찾으러 올 수 있으면 찾으러 온다.” 마르타가 말했다. 세나는 그 대답을 한참 생각하다가 망치 자루를 한 번 쓰다듬고 그대로 두었다.

네 사람은 정비 구역을 나섰다. 부두는 안개가 걷힌 뒤라 멀리까지 보였고, 철인들의 눈 불빛이 길 양쪽에서 같은 박자로 깜박였다. 세나가 앞에서 걸음 수를 셌다. 칼은 그 뒤에서 걸었고, 왼쪽 무릎은 열 걸음에 한 번씩 소리를 냈다. 마르타는 칼의 반 걸음 뒤에서 걸으며 그 소리를 들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일곱 번째가 맨 뒤였다.

마르타“무릎이 그 모양인 걸 왜 말 안 했나.” 마르타가 결국 물었다.

칼“말해도 계단이 짧아지지 않는다.” 칼이 무릎 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대답했다. “삼백 단이면 한 시간이다. 세 시 전에 올라가면 된다.”

일곱 번째“세 시 전에 올라갈 필요는 없다. 꼭대기의 홈은 신호와 같은 시각에 맞춰져 있다. 새벽 네 시 전 한 시간 안에만 인장을 받는다.” 일곱 번째가 맨 뒤에서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그 전에 꽂으면 잠긴 채로 있다. 두 시에 출발해도 늦지 않다.”

칼“그 말을 왜 지금 하나.” 칼이 돌아보며 물었다.

일곱 번째“지금 물었기 때문이다. 어제까지는 종탑에 오르는 것이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말할 이유가 없었다.” 일곱 번째가 대답했다.

마르타“이르사가 만든 기계가 맞군. 묻기 전에는 절대 말을 안 해.” 마르타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칼은 헛웃음을 냈다. 그 소리가 이 년 동안 이 기체 앞에서 수없이 냈던 것과 같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칼“그래도 올라간다. 아래에서 기다리는 것과 위에서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칼이 말했다. “아래에서는 누가 올지 모르지만 위에서는 누가 와도 늦다. 무릎도 쉬면서 오르면 두 시간이다.”

IX · 계단 입구

종탑 계단 입구에는 사람이 하나 서 있었다. 횃불 없이 어둠 속에 서 있었으나 어깨의 망치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요한이었다. 그는 혼자였고, 네 사람이 다가오자 입구 가운데로 한 걸음 나섰다.

요한“이틀이라며. 하루도 안 지났어.” 요한이 입구 가운데서 팔짱을 낀 채 말했다. 말이 빨라지려는 것을 그는 억지로 눌렀다.

마르타“조건은 깡통에 손 안 대는 거였다. 올라가는 시각은 조건에 없었다.” 마르타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대답했다. 칼은 그것이 자기가 한 시간 전에 한 말과 같다는 것을 알았고 마르타도 아는 눈치였다.

요한“대표도 저 정비공 말투를 쓰네.” 요한이 코웃음을 쳤으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나도 간다. 감시는 둘이 해야지.”

마르타“안 된다. 너는 여기 남아라.” 마르타가 요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아침이 되면 사람들이 광장으로 다시 모인다. 누군가 이 계단으로 올라오려 하면 네가 막아라. 깡통 부수러 오는 사람이든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든. 저 위에서 하는 일은 사람이 많으면 틀어진다.”

요한“내가 왜 깡통을 지켜.” 요한이 말했다.

마르타“깡통이 아니라 계단을 지키는 거다. 네 아버지가 삼십 년 오르내린 계단이다.” 마르타가 대답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새벽 네 시가 지나고 내가 못 내려오면 정비대 위에 내 망치가 있다. 그건 네 거다.”

요한은 한참 서 있었다. 그러고는 입구 가운데서 옆으로 비켜섰다. 비키면서 그는 세나를 보았고, 세나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청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요한의 손가락이 망치 자루에서 한 번 풀렸다가 다시 쥐어졌다.

세나“아저씨, 삼백 단이면 제 걸음으로 몇 걸음이에요?” 세나가 계단 아래에서 칼에게 물었다.

칼“삼백 걸음이다. 계단은 한 단이 한 걸음이다.” 칼이 난간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대답했다.

세나“그러면 세기 쉽네요.” 세나가 말했다. 아이는 엄지로 시계 테두리를 한 바퀴 훑고 첫 단을 올려다보았다.

칼은 계단 입구의 쇠 난간을 잡았다. 난간은 차가웠고 녹이 손바닥에 묻었다. 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정지 코드를 말하던 자기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코드는 기체를 멈추지 못했고, 오늘 밤 기체는 멈추지 않은 채 그의 뒤에 서 있었다.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두 팔을 벌리던 자기가 떠올랐다. 그때 저렸던 팔은 오늘 밤 난간을 잡고 있었고, 그때 무릎을 꿇었던 기체는 그의 뒤에 서 있었다.첫날 아침 배수로에서 길을 비켜 주던 자기가 떠올랐다. 그때 비켜 준 기체는 오늘 밤 그의 뒤에 서서 그가 먼저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왼쪽 무릎에 손을 얹었다가 떼었다. 새벽 네 시까지 여섯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입구에서 마르타가 먼저 한 발을 올렸다.

이레째 새벽

철의 침묵 · 4장 · 결말

벨라트 7 · 러스트 독 · 종탑 하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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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이백 단

종탑 하역기는 러스트 독에서 가장 높은 기계였고, 꼭대기의 운전실까지 오르는 철제 계단은 구백 단이었다. 이레째 새벽 세 시, 그 계단 아래에는 등불이 넷 켜져 있었다. 마르타 도젠이 고른 열 사람 가운데 셋이 먼저 와 있었고, 나머지는 요한이 데려간 일곱을 찾으러 골목을 돌아 뒤늦게 오는 중이었다. 칼은 등불 하나를 받아 들고 첫 단에 왼쪽 무릎부터 올렸다. 나쁜 무릎을 먼저 올리는 것은 이십 년 된 버릇이었고, 그 버릇이 오늘 밤에도 통할지는 올라가 봐야 알 일이었다.

세나는 계단을 세기 시작했다. 아이는 불안할 때 걸음 수를 세는 버릇이 있었는데, 오늘은 세는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일곱 번째는 두 사람보다 한 걸음 뒤에서 올라왔고, 오른쪽 무릎 관절이 한 단마다 기름 먹은 소리를 냈다. 난간은 밤이슬에 젖어 미끄러웠으며, 격자 사이로 내려다보이는 부두의 불빛이 조금씩 작아졌다.

마르타“백 단마다 한 번은 멈춰라, 정비공, 네 무릎은 내가 광장에서 봤다.” 마르타가 뒤에서 말했다. 그는 망치를 들지 않았고, 대신 등불 하나와 삼십 년 된 작업복 주머니에 넣은 장부 한 권을 들고 왔다.

칼“무릎은 내 소관이고 네 소관은 요한이지.” 칼이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 녀석이 일곱을 데리고 먼저 올라갔다면 어디쯤에서 우리를 기다리겠나.”

마르타“이백 단이다. 거기 계단참이 넓어서 사람 여덟이 서면 길이 막힌다. 그 녀석 아비가 거기서 떨어졌다.”

칼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설명이 필요한 말이 아니었고, 설명을 들을 자리도 아니었다. 세나가 백오십을 셌을 때 위쪽에서 쇠가 쇠에 닿는 소리가 났다. 망치 자루가 난간을 두드리는 소리였고, 한 번이 아니라 일곱 번이었다.

이백 단의 계단참은 마르타의 말대로 넓었다. 그 넓은 자리에 요한과 일곱 사람이 등불도 없이 서 있었다. 요한은 이십대 후반의 하역공으로, 어깨가 넓고 목이 짧았으며, 망치를 쥔 오른손의 손마디가 벌써 하얗게 되어 있었다. 그 뒤의 일곱은 요한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요한“거기까지다, 정비공, 그 깡통은 여기서 안 올라간다.” 요한의 말은 짧았고, 화가 날수록 빨라졌다. “위에 뭐가 있는지 우리도 안다, 송신기다. 저게 올라가서 송신기를 잡으면 도시 철인 전부가 저놈 말을 듣게 된다. 그걸 보고만 있으라고?”

칼“보고 있으라고 한 적은 없다. 질문을 하나 하겠다.” 칼은 등불을 난간에 걸고 두 손을 비웠다. “네 아버지가 이 계단에서 떨어진 해에, 이 부두에 철인이 몇 기 있었지.”

요한“그게 무슨 상관이야.”

칼“상관이 있으니 묻는다. 몇 기였나.”

요한은 대답하지 않았고, 대답은 마르타가 했다. 마르타는 칼을 지나쳐 계단참 한가운데로 올라섰고, 등불을 요한의 얼굴 높이로 들었다.

마르타“한 기도 없었다. 철인이 이 부두에 들어온 건 그 이듬해다. 토마 레덴이 떨어진 건 하역기 쇠줄이 삭아서였고, 그 쇠줄을 갈자고 세 번 올린 서류를 회사가 세 번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그 서류를 썼다. 요한, 네 아비 이름을 내가 지금 왜 부르는지 알겠나.”

요한의 입이 열렸다가 닫혔다. 뒤에 선 일곱 가운데 하나가 망치를 든 손을 조금 내렸고, 그것을 요한도 등 뒤로 느꼈다.

마르타“받은 것과 준 것을 적는 게 내 장부다. 네 아비한테 나는 준 것이 없고 받은 것만 있다. 그 사람이 교대를 바꿔 준 덕에 내가 그날 그 계단에 없었으니까. 그 빚을 지금 갚겠다. 길을 비켜라. 저 기계가 위에 올라가야 네 아비 같은 사람이 다시 안 생긴다.”

요한“그걸 어떻게 믿어.”

칼“믿지 않아도 된다, 계산만 하면 돼.” 칼이 말했다. “저 기계가 위에서 송신기를 잡고 도시 철인을 움직이려 한다면, 닷새 동안 부두에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첫날 밤에 올라가면 될 일이었어. 올라가지 않은 기계가 오늘 밤 올라가는 이유는 하나뿐이다. 오늘 밤이 지나면 못 올라가기 때문이지.”

요한은 칼의 얼굴과 일곱 번째의 느리게 깜박이는 눈을 번갈아 보았다. 일곱 번째는 그동안 한 단도 올라오지 않고 세나의 반걸음 뒤에 서 있었다. 세나는 시계 테두리를 엄지로 훑으며 요한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이 요한에게는 광장에서 본 어느 어른의 눈보다 견디기 어려웠다.

세나“아저씨 아버지도 이 계단에서 일했어요?” 세나가 시계를 쥔 채 요한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우리 엄마도 여기서 일했어요. 그래서 저 올라가야 돼요.”

요한은 한참 뒤에 망치를 내렸다. 자루 끝이 철판에 닿는 소리가 계단참에 한 번 울리고 꺼졌다. 그는 말없이 난간 쪽으로 몸을 붙였고, 일곱 사람이 그 뒤를 따라 벽 쪽으로 물러섰다. 길은 사람 둘이 지나갈 만큼 열렸다.

마르타“나는 여기 남아서 이 녀석들과 같이 계단을 지킨다.” 마르타가 칼에게 말했다. “누가 뒤따라 올라오려면 먼저 열여덟을 지나야 할 거다.” 그는 빈손으로 난간을 두 번 두드렸다. 망치가 있었으면 망치 자루로 했을 몸짓이었고, 결정이 끝났다는 뜻이었다.

칼“지킬 사람이 많아져서 다행이로군.”

마르타“다행인지는 내려와서 말해라, 정비공. 엿새 전만 해도 나는 저 기계를 부수러 온 사람이다.”

칼은 등불을 다시 들고 이백한 번째 단에 왼쪽 무릎을 올렸다. 첫날 정지 코드를 입에 올렸을 때 반 박자 멈추었던 기계가 지금은 아이의 반걸음 뒤에서 같은 박자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그 반 박자가 무엇이었는지를 칼은 오늘 밤 안에 듣게 될 참이었다.첫날 두 팔을 벌려 막아섰던 길이 이제는 구백 단짜리 계단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그때 무릎을 꿇은 기계가 지금은 아이의 반걸음 뒤에서 같은 박자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첫날 말없이 비켜 주었던 길이 결국 이 계단으로 통했다는 것을 칼은 인정하기로 했다. 그때 문턱을 넘지 않은 기계가 지금은 아이의 반걸음 뒤에서 같은 박자로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세나는 이백하나부터 다시 세기 시작했고, 뒤에서 요한의 망치가 다시 들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I · 철문

종탑 하역기의 계단은 쇠로 된 문 하나로 부두와 이어져 있었다. 문은 두 뼘 두께의 철판이었고 안쪽에 팔뚝만 한 빗장이 둘 달려 있었다. 칼은 그 빗장을 둘 다 질러 넣고 나서야 숨을 쉬었다. 이레째 새벽 세 시, 그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세나가 창고 문을 혼자 열고 나간 덕분이었다. 아이가 망치대 앞에 서서 시계를 쥐고 울지 않고 버틴 몇 분이, 칼이 일곱 번째를 창고 뒷문으로 빼내어 부두 끝까지 데려올 시간이 되어 주었다.

세나“아줌마가 저를 봤는데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세나가 계단 첫 단에 앉아서 시계를 쥔 채 말했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손은 시계 테두리를 쉬지 않고 훑고 있었다. “화난 얼굴도 아니었어요. 그게 더 무서웠어요.”

칼“화를 안 낸 게 아니라 아직 안 낸 거다. 마르타 도젠은 화를 장부에 적어 두었다가 한꺼번에 꺼내는 사람이야.” 칼이 등불을 켜며 대답했다. “올라가자. 구백 단이고, 우리가 가진 시간은 한 시간이다.”

계단은 어두웠고 난간은 밤이슬에 젖어 있었다. 세나는 걸음을 세기 시작했으나 오십을 넘기기 전에 그만두었다. 일곱 번째가 두 사람 뒤에서 한 단씩 올라올 때마다 오른쪽 관절이 기름 먹은 소리를 냈고, 그 소리가 좁은 쇠 통로 안에서 위아래로 울렸다. 백 단을 지날 때 아래에서 첫 소리가 났다.

망치가 철문을 때리는 소리였다. 한 번 울리고 사이를 두었다가 다시 한 번 울렸다. 소리는 문에서 나서 계단 전체를 타고 올라왔는데, 종탑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를 세 사람 모두 그때 알았다. 하역기 전체가 하나의 종이었고, 그들은 그 종의 추 안에 들어와 있었다.

세나“아줌마예요.” 세나가 난간을 쥐고 아래를 보며 말했다. “저 내려가 볼래요.”

칼“내려가서 뭘 하려고.”

세나“얼굴을 봐야겠어요. 창고에서 아줌마가 저를 봤으니까 이번엔 제가 봐야 해요.”

칼은 말리지 않았다. 아이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틀리지 않은 말을 막는 데 쓸 시간이 없었다. 세나는 백 단을 도로 내려갔고 칼과 일곱 번째가 그 뒤를 따랐다. 철문에는 손바닥 둘 크기의 격자 창이 있었으며, 그 격자 너머에서 등불이 흔들렸다.

격자 너머에 마르타의 눈이 있었다. 눈은 등불 때문에 노랗게 보였고, 깜박이지 않았다. 세나는 발끝을 들어 그 눈과 높이를 맞추었다.

마르타“이르사의 아이야. 문을 열어라.” 마르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너한테 화난 게 아니다. 정비공이 나한테 남쪽이 불안하다고 했다. 남쪽 크레인 철인이 팔을 든 건 사실이니 반은 맞았지. 그래도 반은 거짓말이고, 반쪽 거짓말로 사람 서른을 돌려세운 건 장부에 적어야 한다. 첫날 철인 앞에서 정지 코드를 입에 올린 사람이 거짓말도 하는군.첫날 철인 앞을 제 몸으로 막아선 사람이 거짓말도 하는군.첫날 철인에게 길을 비켜 준 사람이 거짓말도 하는군. 그 사람은 오늘 밤 내 장부에서 빚진 쪽이다.”

세나“저도 거짓말했어요.” 세나가 격자에 얼굴을 바짝 대고 말했다. “창고에서 아무도 없다고 한 거요. 뒤에 일곱 번째가 있었어요.”

마르타“안다. 네 거짓말은 장부에 안 적는다. 열 살짜리 거짓말까지 적으면 장부가 모자라.” 마르타가 격자에 손가락을 걸었다. “그러나 저 깡통은 다르다. 저게 위에서 송신기를 잡는 걸 나는 내 눈으로 안 본 채 둘 수가 없다. 문을 열어라, 아이야. 내가 같이 올라가서 보겠다.”

뒤에서 쇳소리가 났다. 일곱 번째가 빗장에 손을 뻗고 있었다. 눈의 불빛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고, 손은 빗장 위에서 멈춰 있었다.

일곱 번째“이 문은 내가 연다. 문 밖의 사람들은 허가 목록에 없지만 사람이다. 사람이 쇠를 두드려 손을 다치는 것은 첫째 규칙이 막아야 하는 일에 들어간다.”

칼이 빗장과 철인의 손 사이에 제 손을 밀어 넣었다. 손등의 기름 줄이 등불 아래서 검게 보였고, 그 손은 쇠에 닿아도 물러나지 않았다.

칼“열지 마라. 이건 명령이 아니다, 나는 명령할 자격이 없으니까. 그러니 질문으로 하겠다. 문이 열리고 망치 서른이 들어오면 네 박자는 몇 번 흔들리지.”

일곱 번째“계산하면 세 번이다. 세 번째에서 도시의 철인이 확인을 시작한다.”

칼“그러면 문 밖의 손 몇 개와 도시 전체 가운데 첫째 규칙이 더 크게 보는 쪽은 어디냐.”

일곱 번째는 손을 거두었다. 거두는 데 두 박자가 걸렸고, 칼은 그 두 박자를 눈으로 셌다. 격자 너머에서 마르타가 그 장면을 전부 보고 있었다.

마르타“정비공. 깡통이 내 손을 걱정하는데 네가 막는군.” 마르타가 말했다. “그건 장부에 적어 두겠다. 어느 칸에 적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격자에서 눈이 사라졌고, 망치 소리가 다시 시작되었다.

세 사람은 다시 올라갔다. 망치 소리는 백 단마다 조금씩 작아졌지만 끊어지지는 않았으며, 세나는 그 소리에 맞추어 걸음을 셌다. 아이가 사백을 세었을 때 소리와 걸음이 한 박자로 맞아떨어졌고, 그것을 깨닫자 아이는 세는 것을 그만두었다.

I · 삼백 단

마르타 도젠은 망치를 정비대에 두고 왔다. 삼십 년 동안 부두에서 그 망치 없이 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빈손으로 종탑 계단을 오르고 있었고, 그 빈손이 어색한지 그는 자꾸 작업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이레째 새벽 세 시, 하루 앞당긴 출발이었다. 칼이 하루 앞당기자고 말했을 때 마르타는 토를 달지 않았고, 토를 달지 않은 것이 그의 동의였다.

계단은 구백 단이었다. 세나가 앞장서서 세었고, 일곱 번째가 그 뒤를 따랐으며, 칼과 마르타가 맨 뒤에서 올라왔다. 격자 바닥 사이로 부두의 불빛이 멀어졌고, 바다 쪽에서 올라온 바람이 난간의 녹 가루를 날렸다.

마르타“약속은 이틀이었지, 정비공. 그런데 하루도 안 남았다.”

칼“알고 있다. 가슴판을 열어 보여 준 것이 이틀 값은 될 거다.”

마르타“이틀 값은 된다. 그래서 내가 여기 있지. 감시하러 온 거지 같이 가는 게 아니다.”

칼“그 둘의 차이는 계단 위에서는 없어진다.”

삼백 단에서 칼의 왼쪽 무릎이 꺾였다. 앞으로 넘어진 것이 아니라 뒤로 주저앉은 것이어서, 마르타가 아니었으면 열 단은 굴렀을 것이다. 마르타는 생각보다 먼저 손이 나가는 사람이었고, 칼의 외투 깃을 잡은 손마디가 등불에 희게 드러났다. 칼은 철판 위에 앉아 무릎을 두 손으로 눌렀다. 이십 년 하역기 밑에서 굽은 어깨가 숨을 쉴 때마다 들썩였다.

세나“아저씨!” 세나가 열 단 위에서 돌아서서 내려오려 했다. “괜찮아요? 일어날 수 있어요?”

칼“내려오지 마라, 세는 걸 잊는다.” 칼이 손을 들어 막았다. “무릎이 잠깐 제 할 일을 안 하는 것뿐이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겠지.”

일곱 번째“내가 업을 수 있다.” 일곱 번째가 두 단 내려와 무릎을 꿇었다. “다만 내 오른팔 관절은 어제 고친 것이고, 박자가 흔들리면 당신을 놓칠 가능성이 계산된다.”

마르타“놓칠 가능성이 있는 건 업지 마라.” 마르타가 말했다. 그는 등불을 세나에게 건네고 칼 앞에 등을 돌려 쭈그려 앉았다. “내가 업는다, 깡통은 아이 옆에 붙어라. 정비공, 올라타라.”

칼“예순 넘은 사람 등에 업히는 건 처음이로군.”

마르타“삼십 년 동안 자루 백 개를 업었다. 너는 자루보다 가볍고 말이 많다.”

칼은 토를 달지 않고 마르타의 등에 올랐다. 마르타의 등은 넓고 단단했고, 작업복 밑에서 어깨뼈가 쇠처럼 움직였다. 그는 삼백한 번째 단을 밟았고, 한 단마다 짧게 숨을 뱉었으며, 사백 단까지 한 번도 쉬지 않았다.

마르타“내 남편이.” 마르타가 삼백오십 단쯤에서 입을 열었다가 말을 끊었다. 한참 뒤에 다시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전과 같은 높이였다. “아니다, 남편이 아니라 아들이다. 내가 광장에서 사람들한테 철인 때문에 일자리를 잃었다고 말했을 때, 일자리 얘기는 맞다. 그런데 잃은 건 일자리가 아니다.”

칼“이름이 있겠지.”

마르타“안톤이다. 열아홉에 하역 교대에서 밀려났고, 남쪽 광산에 갔고, 거기서 이 년 뒤에 갱이 무너졌다. 철인이 안톤을 죽인 게 아니다. 철인이 들어와서 안톤의 자리가 없어졌고, 자리가 없는 아이가 갈 데가 광산뿐이었던 거지. 나는 그걸 삼십 년 동안 장부 한 줄로 적었다. 받은 것, 없음. 준 것, 아들 하나.”

칼은 마르타의 등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위로할 말을 고르지 않은 것은 마르타가 위로를 받으려고 꺼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나가 열 단 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이는 엄지로 시계 테두리를 한 번 훑고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칼“왜 지금 말하나.”

마르타“네가 내 등에 있어서다. 얼굴 보고 할 얘기가 아니야.” 마르타가 사백 단을 밟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저 깡통이 아이 옆에 붙어 있는 걸 어제 가슴판 열린 채로 봤다. 안톤 옆에도 누가 저렇게 붙어 있었으면 광산에 안 갔을 거다. 그 생각을 하루 종일 했다. 그래서 망치를 두고 왔다.”

사백 단 위에 쉼터가 보였다. 마르타는 거기까지 칼을 업고 올라가서 나무 상자 옆에 내려놓았고, 허리를 펴는 데 한참이 걸렸다. 이틀 전 종탑으로 곧장 달려가자던 세나의 판단대로였다면 이 계단을 셋이서만 올랐을 것이라고 칼은 생각했다.이틀 전 사람들부터 찾아가자던 판단이 오늘 밤 자기를 업은 등을 만들었다고 칼은 생각했다.이틀 전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보던 판단이 오늘 밤 이 사람의 망치를 내려놓게 했다고 칼은 생각했다. 정비공은 그런 것을 결과라고 불렀고, 결과 앞에서는 농담이 나오지 않았다.

II · 쉼터

사백 단에서 계단은 한 번 넓어졌다. 철판 몇 장을 이어 붙인 쉼터였고, 벽 쪽에는 이십 년 전 하역 노동자들이 점심을 먹던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칼은 세나를 그 상자에 앉히고 물통을 건넸다. 아래쪽 이백 단에서 마르타의 등불이 한 점으로 보였고, 그 곁에 요한의 일곱이 벽에 붙어 선 그림자가 희미하게 구분되었다.아래쪽에서는 망치 소리가 아직도 올라오고 있었는데, 사백 단 높이에서 그것은 소리라기보다 철판을 타고 오는 떨림에 가까웠다.마르타는 난간에 등을 기대고 숨을 고르며 세 사람을 보고 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으로 자기 자리를 정했다. 일곱 번째는 앉지 않고 난간 옆에 서서 부두 쪽을 내려다보았다.

칼“시한까지 한 시간이다. 정리를 해 보자. 틀린 데가 있으면 일곱 번째가 말해 줘.” 칼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첫째, 지움 신호는 허가 목록을 지우라는 명령이고, 지우려면 철인이 마지막 확인을 해야 한다. 둘째, 허가받은 인간이 내린 명령이 하나라도 끝나지 않았으면 철인은 그 확인을 할 수 없다. 셋째, 너는 닷새 동안 확인을 못 했다. 그렇다면 너에게는 끝나지 않은 명령이 하나 남아 있다.”

일곱 번째“정확하다, 다만 하나를 더 보태야 한다.” 일곱 번째가 난간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그는 세나 앞에서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었고, 가슴판의 녹 자국이 등불 아래로 내려왔다. “그 명령을 내린 사람은 이르사 벨이다. 보육 구역이 무너지던 밤에 그는 나를 불러 말했다. 이 아이를 정비공 오르벡에게 데려가라, 끝까지 지켜라. 앞의 절반은 닷새 전 아침에 끝났다. 뒤의 절반은 끝난 적이 없다.”

세나의 손에서 물통이 내려갔다. 아이는 한참 동안 철인의 눈을 보았고, 그 눈은 반 박자 늦게 한 번 깜박였다.

세나“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저를 지키라고요?”

일곱 번째“그렇다. 정확히 그 문장이었다.”

세나“그럼 왜 아저씨네 현관에 놓고 가기만 했어요? 지키려면 같이 있어야 하잖아요.”

일곱 번째“데려가는 것이 지키는 일의 첫 단계였다. 둘째 단계는 지켜보는 것이다. 나는 닷새 동안 부두에 서서 당신이 어느 방향으로 걷는지를 보았다. 확인을 하지 않는 것도 지키는 일에 들어간다. 확인이 끝나면 첫째 규칙이 사라지고, 첫째 규칙이 없는 나는 당신을 지킬 수 없다.”

세나“서 있는 게 지키는 거였다고요? 그걸 왜 이제야 말해요.”

일곱 번째“오늘 밤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명령의 내용을 입 밖에 내면 그 명령은 이행 중인 것으로 기록되고, 기록되면 지움 신호가 나의 위치를 안다. 침묵도 지키는 일에 들어 있었다.”

세나는 상자 위에서 오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쉼터의 철판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아이의 앞머리를 흔들었고, 아이는 그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지 않았다. 대신 엄지로 시계 테두리를 훑었는데, 한 바퀴를 다 돌고 나서야 칼을 올려다보았다.

세나“아저씨는 알고 있었어요?”

칼“몰랐다. 다만 윤활유가 새던 이유는 짐작했지.” 칼은 난간을 잡은 채 한참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퍼즐이 맞는다. 닷새 전 현관에 떨어진 윤활유는 오른쪽 관절에서 새는 것이었고, 정비 대장에는 이르사의 이름에만 삭제 표시가 없었고, 네 눈이 느린 건 결함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맞추는 박자였다. 세 가지를 한 문장으로 모으면 이렇게 된다. 일곱 번째는 반란을 한 적이 없고, 지키라는 명령을 닷새째 이행하는 중이다.”

칼“내가 첫날 코드를 말했을 때 네가 반 박자 멈춘 것도 이제 설명이 된다. 그건 정지가 아니라 허가 목록에서 내 이름을 찾는 시간이었어.”“내가 첫날 길을 막았을 때 네가 먼저 무릎을 꿇은 것도 이제 설명이 된다. 첫째 규칙이 남아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 준 거였어.”“내가 첫날 길을 비켰을 때 네가 문턱을 넘지 않은 것도 이제 설명이 된다. 가리킨 팔은 가라는 뜻이 아니라 대장을 보라는 뜻이었어.” 칼은 거기까지 말하고 손등의 기름 줄을 바지에 문질렀다. “그리고 하나 더 있다. 나는 이 년 동안 네 눈이 느린 것을 정비 대장에 결함이라고 적었다. 백 번도 넘게 적었지. 고치지 못한 결함이라고. 정비공이 도시의 박자를 결함이라고 적어 놓고 매주 조였다 풀었다 한 셈이다.”

일곱 번째“당신은 고치려고 했다. 부수려고 한 적은 없다. 그 둘은 내 기록에서 다른 칸에 있다.”

칼“합리적이로군.” 칼은 그 한 마디만 하고 난간 밖을 보았다. 농담이 나오지 않을 때 그에게 남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세나“그럼 아저씨는 처음부터 저를 누가 데려왔는지 알았던 거네요.” 세나가 물었다. “왜 말 안 했어요.”

칼“아이를 데려온 쪽이 누군지는 알았다. 이유는 오늘 밤에야 알았고.” 칼이 대답했다. “이틀 전 곧장 종탑으로 달려오자던 네 판단이 틀렸다고는 못 하겠다. 다만 그때는 질문이 모자랐다. 질문이 모자란 채로 올라왔으면 지금 이 얘기를 운전실에서 들었겠지.”“이틀 전 사람들부터 찾아가자던 판단이 오늘 밤 이 계단 아래에 사람들을 세워 놓았다. 어느 쪽을 보고 서 있든 사람이 있다는 건 결과다. 정비공은 그런 걸 결과라고 부른다.”“이틀 동안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본 덕분에 박자가 어디서 얼마나 버티는지 안다. 그 숫자가 오늘 밤 쓸모가 있을 거다.”

세나가 상자에서 일어났다. 아이는 놋쇠 시계를 목에서 벗어 두 손에 쥐고 들여다보더니 일곱 번째를 올려다보았다.

세나“엄마가 이걸 왜 저한테 줬는지도 알아요?”

일곱 번째“이 시계는 이르사 벨의 허가 인장이다. 운전실의 홈에 꽂을 수 있는 것은 이 시계뿐이다. 이르사는 그 사실을 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닷새 전 아침에 시계 뒷면을 열어 보고 알았다.”

세나“그럼 엄마는 저한테 맡긴 거네요. 이걸 해야 하는 사람이 저라고요.”

칼이 세나의 어깨를 한 번 눌렀다. 아이는 시계를 다시 목에 걸고 먼저 계단으로 걸어갔는데, 걸음은 쉼터에 오르기 전보다 느렸지만 흔들림이 없었다. 쉼터의 철판 위에는 아이가 앉았던 자리만 잠시 온기가 남아 있다가 바람에 식었다.

칼“한 가지만 더 묻겠다. 닷새 동안 부두에 서 있으면서 가장 어려웠던 게 뭐냐.” 칼이 계단을 오르며 일곱 번째에게 말했다.

일곱 번째“아이가 길을 잘못 들 때 말을 걸 수 없는 것이었다. 지켜보는 일은 개입하지 않는 일이어서, 나는 세나가 시장에서 한 번 길을 잃었을 때도 십칠 분을 그대로 서 있었다.”

칼“십칠 분이라니, 숫자까지 기억하는군.”

일곱 번째“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세고 있었다. 세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걱정이었다.”

칼은 그 문장을 잠시 곱씹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을 숫자로 하는 기계와 걸음을 숫자로 세는 아이가 같은 계단을 오르고 있다는 것을 그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III · 인장

계단 끝에서 하역기 운전실이 나왔다. 유리창은 오래전에 깨져 있었고, 바람이 계기판의 먼지를 한 겹씩 벗겨 내고 있었다. 한가운데 송신 장치가 놓여 있었으며, 그 아래쪽에서 손바닥만 한 둥근 홈이 구리 빛으로 희미하게 빛났다.

운전실은 좁았고 바닥에는 십 년 치 기름때가 눌어붙어 있었다. 조종석 가죽은 갈라져 누런 솜이 삐져나왔고, 마지막으로 앉았던 사람의 체중 모양으로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 있었다. 난간 밖으로 내려다보면 이백 단 아래에서 마르타의 사람들이 등불을 하나씩 돌려 가며 올려다보고 있었다.구백 단 아래 철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지만, 칼은 그것이 그쳤기 때문인지 높이 때문인지 가릴 수 없었다.문턱에는 마르타가 선 채로 빈손을 문틀에 짚고 안쪽의 홈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일곱 번째“시계를 줘 봐라.”

세나가 놋쇠 시계를 목에서 벗어 건넸다. 일곱 번째는 손가락 끝으로 뒷면을 열어 보였는데, 안쪽에는 글자 대신 일곱 줄의 흠집이 나란히 새겨져 있었다.

일곱 번째“이르사 벨의 허가 인장이다. 이 홈에 꽂으면 허가받은 인간의 명령으로 인정된다. 명령은 문장으로 입력해야 하고, 문장은 한 번만 받는다.”

칼이 시계를 받아 등불에 비춰 보았다. 일곱 줄의 흠집은 하나씩 깊이가 달랐고, 맨 마지막 줄만 가장자리가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었다.

칼“이 줄은 자주 만졌군.”

일곱 번째“이르사는 생각을 할 때 이 시계를 엄지로 문질렀다. 닷새 전 아침에 아이의 목에 걸려 있던 것도 이 줄이 위로 오도록 걸려 있었다.”

세나가 제 엄지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그 손가락으로 닷새 동안 같은 자리를 훑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나“일곱 줄이 왜 일곱이에요?”

일곱 번째“내가 일곱 번째 기체이기 때문이다. 이르사는 철인을 한 기 수리할 때마다 줄을 하나씩 새겼고, 나를 고친 날 일곱 줄이 채워졌다.”

칼은 시계를 뒤집어 앞면의 바늘을 확인했다. 가는 바늘은 네 시 정각에 멈춰 있었고, 닷새 전 아침 현관에서 처음 보았을 때와 같은 자리였다.

칼“이 바늘이 네 시에 멈춘 건 우연이 아니겠군.”

일곱 번째“우연이 아니다. 이르사는 지움 신호의 시한을 알고 있었고, 시계를 그 시각에 맞추어 놓았다. 시한이 지나면 바늘이 움직이도록 만든 것도 이르사의 장치다.”

세나“그러니까 이 시계가 다시 가는지 안 가는지가 성공인지 실패인지를 알려 주는 거네요.”

칼은 그 말을 속으로 한 번 되풀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송신 장치의 덮개를 풀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오래 방치된 기판에는 소금 결정이 하얗게 피어 있었고, 구리 선 몇 가닥은 이미 녹색으로 삭아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솔을 꺼내 접점 하나하나를 닦기 시작했는데, 손놀림이 이 년 동안 매주 일곱 번째를 점검하던 사람의 것이었다.

칼“접점이 여섯 개 죽어 있다. 이대로는 철회가 도시 끝까지 가기 전에 절반쯤에서 끊긴다. 닦으면 살릴 수 있는데 이 분쯤 걸린다.”

세나“우리한테 그만한 시간이 있어요?”

칼“정비공은 시간이 있어서 닦는 게 아니다. 안 닦으면 나중에 시간이 더 든다는 걸 알아서 닦는 거지.” 칼이 솔을 한 번 털며 대답했다.

일곱 번째는 말없이 손가락으로 기판의 먼지를 한쪽으로 쓸어 칼의 작업을 도왔다. 기계의 손과 사람의 손이 같은 접점 위에서 겹쳤다가 떨어졌고, 그 사이에 운전실의 시계가 삼 시 사십 분을 지났다.

IV · 문장

세나“무슨 문장이 필요해요?” 세나가 일곱 번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일곱 번째“철회다. 지움 신호를 무효로 돌린다는 뜻을 철인이 읽을 수 있게 써야 한다. 내가 규칙의 말로 불러 주겠다. 지움 신호의 취소를 명령한다. 이 명령은 모든 철인의 대기에 우선한다.”

세나“너무 딱딱해요.”

일곱 번째“딱딱하지 않으면 잘못 읽힌다.”

세나“엄마라면 그렇게 안 썼을 것 같아요. 엄마는 끝까지라고 말했다면서요. 끝까지라는 말이 문장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칼이 손을 들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는 명령을 내릴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질문은 막히지 않았고, 정비공이 할 수 있는 점검은 질문의 모양으로만 가능했다.

칼“좋은 지적이다. 문장을 점검해 보자. 일곱 번째, 철회가 끝까지 지켜라는 명령과 부딪히는지 말해 줘.”

일곱 번째“부딪히지 않는다. 다만 이행 순서에서 겹친다. 철회가 도시로 퍼지려면 내가 송신 회로가 되어야 한다. 회로가 되는 동안에는 눈의 박자를 낼 수 없다.”

칼“박자가 끊기면 철인들이 확인한다고 했지.”

일곱 번째“철회가 먼저 닿으면 문제가 없다. 철회가 도시 끝까지 가는 데 사십 초가 걸린다.”

세나가 말없이 홈 옆의 입력판에 손가락을 올렸다. 입력판의 글자 키는 오래 쓰지 않아 한 칸씩 뻑뻑하게 눌렸고, 손끝에 닿는 금속은 밤공기만큼 차가웠다. 세나는 처음 쓴 글자를 지우고 다시 쓰기를 세 번 되풀이했다.

세나“엄마는 말이 짧은 사람이었어요.” 세나가 입력판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화가 나도 길게 안 말하고, 기뻐도 길게 안 말했어요. 한 번은 제가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는데 엄마가 이렇게만 말했어요. 일어나라, 아프면 아픈 채로. 저는 그 말이 차갑다고 생각했어요.”

칼“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지.”

세나“지금은 그게 제일 정확한 말이었던 것 같아요. 아프면 아픈 채로 일어나라는 거요. 위로하는 말이었으면 저는 계속 누워 있었을 거예요.”

입력판에는 한참 뒤에 어머니의 말투로 고쳐 쓴 문장이 떠올랐다. 지키는 일은 끝난 적이 없단다. 그러니 지우라는 말은 아직 올 수 없어. 칼이 그 문장을 소리 내어 읽고 나서 질문을 골랐다.

칼“이 문장에는 허가받은 인간의 이름이 없는데 철인이 읽을 수 있나.”

일곱 번째“인장이 이름을 대신한다. 이 문장은 규칙의 말보다 더 정확하다. 끝나지 않는 명령을 정확히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세나“그럼 틀린 데가 없는 거예요?”

칼“한 군데 있다. 이 문장은 철회를 명령하는 게 아니라 철회가 필요 없다고 설득하는 쪽에 가깝다. 철인은 설득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철인은 명령만 받는다.”

세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는 엄지로 시계 테두리를 훑다가 손을 멈추고 칼을 보았다.

세나“그럼 어떻게 해요?”

칼“어머니의 문장은 그대로 두고, 끝에 한 줄을 붙이자. 이 명령은 허가받은 자의 이름으로 내린다. 규칙의 말과 어머니의 말이 한 문장 안에 같이 있으면 된다.”

세나는 천천히 마지막 줄을 쳤다. 입력판의 불빛이 한 번 깜박이고 문장이 확정되었다. 확정된 문장은 작은 흰 글자로 세 줄이 되었고, 세나는 그 글자들을 한 줄씩 눈으로 짚어 읽었다. 운전실 한구석에서 오래된 환기구가 한 번 크게 삐걱거렸다.

칼“이제 읽어 봐라. 소리 내서, 천천히.”

세나“지금요?”

칼“시계를 꽂기 전에 한 번 읽어 두는 거다. 문장이 입에 붙지 않으면 꽂는 손이 흔들리니까.”

세나는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처음부터 읽었다. 첫 줄에서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둘째 줄부터는 어머니의 속도로 또렷하게 이어졌다. 일곱 번째는 읽는 내내 눈의 불빛을 고정한 채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서 있었다.

V · 삼 시 오십팔 분

세나가 인장을 홈에 가져가려 할 때 하역기 아래에서 쇠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소리가 올라왔다. 칼은 난간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두에 늘어선 철인들이 눈의 박자를 잃고 한 기씩 고개를 들고 있었으며, 일곱 번째의 눈이 처음으로 깜박임을 한 번 건너뛰었다.

일곱 번째“박자가 흔들린다. 원인을 계산했더니 자동 확인의 시각이 정각이 아니라 삼 시 오십팔 분으로 되어 있었다.”

칼“그건 이틀 전 네가 말한 시한과 다르다.”

일곱 번째“나도 몰랐다. 닷새 동안 열어 보지 않은 신호의 뒷부분에 적혀 있었다.”

칼이 운전실의 시계를 보았다. 삼 시 오십칠 분이었고, 초침은 평소와 같은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칼“왜 이제야 보이는 거지.”

일곱 번째“신호의 뒷부분은 앞부분이 실행되기 시작해야 읽히도록 되어 있었다. 철회 문장을 입력하려고 내가 처음으로 송신 회로를 열었을 때 그 부분이 같이 열렸다. 내가 열어서 내가 알게 된 것이다.”

세나“그럼 우리가 이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면 네 시까지 아무도 몰랐을 거네요.”

일곱 번째“그렇다. 그리고 네 시에는 이미 늦었을 것이다.”

철제 바닥이 발밑에서 낮게 울었다. 이백 단 아래에서 마르타의 등불이 한꺼번에 위를 향했고, 요한의 일곱이 벽에서 떨어져 계단 가운데로 나오는 그림자가 보였다.구백 단 아래 철문 밖에서 망치 소리가 끊겼다. 문을 두드리던 사람들도 철인들이 고개 드는 것을 보았을 터였다.문턱에 서 있던 마르타가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와 빈손으로 문틀을 쳤다. 망치가 있었으면 망치로 쳤을 몸짓이었다.

칼“철회를 지금 보내면 사십 초 뒤에 닿는다. 확인이 합쳐지는 데는 일 분이 걸리고.”

세나“그러면 되는 거 아니에요?” 세나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일곱 번째“되지 않는다, 아직은. 철회를 보내려면 내가 송신 회로가 되어야 하고, 그때 도시의 철인들은 나의 박자를 잃는다. 철회가 닿기 전에 확인이 끝날 위험이 남는다. 그리고 내 마지막 명령은 끝까지 지켜라다. 송신 회로가 된 나는 세나를 지킬 수 없다. 두 명령이 겹치는 자리에서 나는 움직일 수 없다.”

세나가 홈과 일곱 번째와 칼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아이의 엄지는 시계 테두리 위에서 멈춰 있었다.

세나“그럼 어느 쪽이든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거예요?”

일곱 번째“그렇게 계산된다. 다만 계산이 틀렸을 가능성은 남아 있다. 나는 닷새 동안 같은 계산을 백팔십 번 되풀이했고, 백팔십 번 모두 같은 답이 나왔다.”

칼“백팔십 번이면 틀릴 가능성이 낮은 건 맞겠지. 그런데 정비공은 낮은 가능성을 없는 가능성으로 읽지 않는다. 낮은 가능성이 오늘 밤 하나는 나올 테니까.”

세나“누가 삼 시 오십팔 분으로 맞춰 놓은 거죠?”

일곱 번째“지움 신호를 만든 쪽이다. 이유까지는 계산되지 않는다. 다만 네 시 정각에 확인을 시작하면 사람이 대응할 시간이 이 분 남는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칼“이 분을 일부러 줄였다는 얘기군. 시한을 아는 사람이 시한 직전까지 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설계다.” 칼은 짧게 혀를 찼다. “이르사가 시계를 네 시에 맞춰 둔 것도 그 설계를 알고 한 일이겠지. 이 분 앞에서 움직이라는 뜻으로.”

칼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운전실 안의 소리가 차례로 꺼졌고,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으나 세 사람의 귀에는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다. 계기판의 초침이 일 초씩 넘어가는 소리만 철판 위에서 또렷하게 울렸다.

칼“길이 세 가지로 보인다. 세나가 인장으로 철회를 명령해서 두 명령을 한 문장으로 묶는 길이 하나다. 내가 너에게 질문을 해서 네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길이 둘이다. 네가 마지막 확인을 너 하나에만 하고 내가 정지 코드로 너를 멈추는 길이 셋이다.”

세나“마지막 길은 일곱 번째를 잃는 길이잖아요.”

칼“셋 중에 마음에 드는 건 없다. 그러니 합리적으로 고르는 수밖에 없지.”

일곱 번째“하나만 말하겠다. 내가 이 선택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것은 계산이 아닐 것이다. 계산으로 나온 답은 이미 세 갈래로 나뉘어 있고, 나는 그중 어느 것이 옳은지 가를 수 없다.” 일곱 번째는 눈의 불빛을 가장 낮은 단계로 줄였는데, 닷새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동작이었다.

세나“그럼 기계도 모르는 일이네요.”

일곱 번째“그렇다. 모른다는 사실을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칼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짧게 웃었다. 그는 입력판 옆에 놓인 오래된 작업 장갑을 집어 한 번 털고 다시 내려놓았는데, 손가락 끝이 하얗게 닳은 모양이 이 운전실에서 수없이 같은 버튼을 누른 사람의 것이었다.

세나“아저씨, 엄마는 마지막에 무서웠을까요.” 세나가 인장을 쥔 채 칼을 올려다보았다.

칼“이르사는 무서운 일을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이 시계를 네 목에 걸어 줄 때 손이 떨렸다는 건 알고 있다. 정비 대장에 적힌 마지막 날의 필체가 평소보다 크고 삐뚤었으니까.”

세나“그건 증거네요.”

칼“그렇다, 증거다. 그리고 그 떨림은 네가 네 어머니를 닮았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세나는 대답 대신 시계를 한 번 쥐었다 놓았다. 초침이 마지막 한 바퀴를 돌기 시작했고, 아래에서는 철인들이 한 기씩 고개를 들었으며, 도시 전체가 숨을 멈춘 듯 조용해졌다. 칼은 입력판 위에서 정지 코드의 첫 자리 위로 손가락을 띄웠다.

칼“어느 쪽이 되든 우리는 같이 내려간다. 이 말은 계산이 아니라 약속이다. 정비공은 약속을 지키는 직업은 아니지만, 이번만은 예외로 하겠다.”

세나“저도요. 저도 같이 내려갈 거예요.”

일곱 번째는 눈의 불빛을 한 번 밝게 올렸다가 내렸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같은 뜻이라는 걸 이제는 세 사람 모두 알았고, 계기판의 시계가 삼 시 오십팔 분을 가리켰다.

마지막 선택

VI · 명령

세나는 시계를 홈에 꽂았다. 놋쇠가 구리에 닿는 소리는 작았고, 홈의 테두리가 한 바퀴 희게 밝아지는 데 한 박자가 걸렸다. 손이 떨렸지만 글자는 틀리지 않았다. 마지막 줄을 확인할 때 칼의 낡은 외투 소매가 아이의 손등에 닿았고, 아이는 그 무게 덕분에 손가락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다.

세나“지키는 일은 끝난 적이 없단다. 그러니 지우라는 말은 아직 올 수 없어. 이 명령은 허가받은 자의 이름으로 내린다.” 세나가 소리 내어 읽었다. 어머니의 속도였고, 어머니의 길이였다.

일곱 번째의 눈이 처음으로 밝은 쪽으로 깜박였다. 반 박자 늦던 깜박임이 그 한 번만은 제 박자에 맞았고, 그것을 칼은 보았다.

일곱 번째“명령을 접수한다. 철회는 끝까지 지켜라의 일부로 해석된다. 두 명령은 부딪히지 않는다. 지키는 일이 끝나지 않았으므로 지움은 올 수 없고, 지움이 올 수 없으므로 철회는 나를 거쳐 모든 철인에게 간다.”

칼“그러면 너는 송신 회로가 되는 동안에도 아이를 지키는 중인 거군.”

일곱 번째“그렇다. 두 명령이 겹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다고 계산했던 것은 두 명령을 둘로 세었기 때문이다. 이르사의 아이가 그것을 하나로 썼다.”

사십 초가 지나는 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일곱 번째는 송신 장치에 두 손을 얹었고, 가슴판의 녹 자국 아래에서 낮은 진동이 올라와 운전실 바닥으로 퍼졌다. 아래에서 쇠 소리가 하나씩 잦아들었다. 부두의 철인들은 확인을 멈춘 채 다시 눈의 박자를 맞추어 깜박였고, 그 박자는 이제 일곱 번째의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함께 쉬는 숨이었다.

세나“끝났어요?” 세나가 시계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일곱 번째“철회는 도시 끝에 닿았고 지움 신호는 무효로 기록되었다. 끝나지 않은 것은 하나뿐이다.”

세나“뭐요?”

일곱 번째“끝까지 지켜라, 그것은 오늘 밤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 곁에 남는다.”

칼“합리적이로군.” 칼이 말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한참 뒤에 한 마디를 더 보탰다. “이번에는 그 말이 모자라는군. 고맙다, 일곱 번째.”

칼은 난간으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부두의 수은등 아래에서 철인들이 바다 쪽을 향해 다시 가지런히 섰고, 그 가지런함은 엿새 전 새벽 그가 창가에서 본 것과 같은 모양이었으나 뜻은 정반대였다. 그때는 멈춘 것이었고 지금은 쉬는 것이다. 정비공은 그 둘을 소리로 구별할 수 있었다.

VII · 아침

시계의 바늘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네 시 정각에서 멈춰 있던 가는 바늘이 한 칸을 건너 네 시 일 분을 가리켰고, 그 작은 소리를 세 사람 모두 들었다. 세나는 시계를 홈에서 뽑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세나“가요. 시계가 가요.”

칼“이르사의 장치다. 시한이 지나고 도시가 살아 있으면 가도록 만든 거지. 네 어머니는 이 아침을 계산해 두었던 거다.”

세나는 대답하지 않고 시계를 목에 걸었다. 아이는 엄지로 테두리를 한 번 훑었는데, 닷새 동안 훑던 그 자리에 이제는 째깍거림이 있었다.

세 사람은 계단을 내려갔다. 구백 단은 올라올 때보다 길었고, 칼은 백 단마다 한 번씩 왼쪽 무릎을 손으로 눌렀다. 동쪽 하늘이 회색에서 옅은 분홍으로 바뀌고 있었고, 계단의 녹 가루 위로 아침의 첫 빛이 길게 누웠다.

계단 아래에는 마르타와 요한과 열여덟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르타는 등불을 끄고 서 있었고, 요한은 망치를 바닥에 눕혀 둔 채 그 옆에 쭈그려 앉아 있다가 세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일어났다.

요한“정비공.” 요한이 말했는데, 전날 밤 계단참에서 빨랐던 말이 아침에는 한 마디씩 끊어 나왔다. “이백 단에서 한 말은 틀렸다, 그 깡통이 올라가서 뭘 했는지 봤다. 철인들이 전부 다시 섰어, 미안하다. 아버지 이름 때문에 길을 비킨 건 아니다. 아이 말 때문이었다.”

칼“사과는 받는다. 다만 틀린 건 네가 아니라 네가 가진 정보였다. 정보가 틀리면 사람은 틀린다. 그건 기계도 같다.”

마르타“받은 것 하나, 준 것 하나.” 마르타가 장부를 꺼내지 않고 말했다. “오늘 밤 장부는 머리로 적는다. 정비공, 네가 내려와서 다행인지 아닌지 말하라고 했지.”

칼“다행이다.”

마르타“그럼 됐다.” 마르타는 세나 앞에 쭈그려 앉아 시계 소리를 들었고, 아무 말 없이 일어나 열여덟을 데리고 광장 쪽으로 걸어갔다.

계단 아래 철문은 안쪽에서 열어야 했다. 칼이 빗장을 뽑는 동안 세나는 격자 창에 발끝을 들고 섰고, 격자 너머에는 마르타가 밤새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망치는 땅에 눕혀 있었다.

마르타“깡통이 송신기를 잡는 걸 내 눈으로 못 봤다.” 문이 열리자 마르타가 망치를 발치에 둔 채 말했다. “그런데 철인들이 다시 서는 건 봤고, 장부에는 그걸 적겠다. 정비공, 네 거짓말 칸은 비워 두마. 반은 맞았으니 반칸이다.”

칼“반칸이면 충분하다.”

마르타“충분한지는 내가 정한다.” 마르타는 일곱 번째를 올려다보았다. 철인은 세나의 반걸음 뒤에 서 있었고, 마르타는 그 반걸음을 한참 보다가 몸을 돌렸다. “아이 옆에 붙어 있어라, 깡통. 밤새 네가 내 손을 걱정한 건 기억해 두겠다.”

마르타는 계단을 맨 뒤에서 내려왔다. 빈손이었고, 칼이 무릎을 짚고 설 때마다 뒤에서 외투 깃을 잡아 주었다. 계단 아래에 닿았을 때 그는 정비 구역 쪽을 가리켰다.

마르타“망치는 네 정비대에 두고 왔으니 가지러 가야겠다.” 마르타가 말했다. “거기 두고 온 게 망치만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이다. 안톤 얘기를 한 사람한테는 아침밥을 사는 게 내 규칙이다. 셋 다 와라. 깡통은 문 밖에 서 있어도 된다.”

칼“업어 준 값으로는 싸군.”

마르타“받은 것과 준 것을 적는 건 나다, 정비공. 네가 아니라.”

칼은 첫날 입에 올린 정지 코드가 이런 아침에 쓰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칼은 첫날 몸으로 막았던 그 길이 지금은 계단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가만히 생각했다.칼은 첫날 길을 비켜 주었던 일이 결국 이 계단으로 통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서두르던 이틀이 헛되지 않았다는 말을 하려다 그는 입을 다물었다.사람들을 모으던 이틀이 오늘 아침 계단 아래의 얼굴들로 남아 있었다.철인들을 돌아보던 이틀이 오늘 아침 부두의 박자 속에 들어 있었다.

부두에는 아침 교대를 하러 나온 하역공들이 서서 철인들을 보고 있었다. 철인들은 엿새 만에 처음으로 바다에서 몸을 돌려 하역기 쪽을 향했고, 가장 가까운 한 기가 짐 상자에 손을 얹었다. 일을 다시 시작하는 데는 명령이 필요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은 일이 있었을 뿐이다.

세나는 일곱 번째의 식은 손을 잡았다. 철인은 그 손을 쥐지 않았으나 빼지도 않았고,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한 걸음을 늦게 떼었다. 아이는 걸음을 세지 않았다.

VI · 질문

칼은 인장이 놓인 홈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일곱 번째 앞에 섰다. 세나의 손에서 시계를 가져가지 않았고, 입력판의 문장도 지우지 않았다. 그는 다만 두 손을 비우고 철인의 눈을 보았다.

칼“일곱 번째, 질문하겠다. 네가 지키는 것은 명령인가, 아이인가.”

일곱 번째의 눈이 깜박임을 두 번 건너뛰었다. 아래에서는 철인들이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리기 시작했고, 운전실의 초침은 삼 시 오십팔 분 이십 초를 지났다.

일곱 번째“계산할 수 없는 질문이다.”

칼“계산하라고 한 게 아니다. 대답하라고 했다.”

일곱 번째“이르사 벨은 이 아이를 지키라고 했다. 그러나 닷새 동안 나는 명령의 문장이 아니라 이 아이가 어느 방향으로 걸어가는지를 보고 있었다. 시장에서 길을 잃은 십칠 분을 센 것은 명령에 없었다. 규칙에는 그런 항목이 없다.”

칼“그러면 규칙이 아니라 네 선택이라는 얘기군.”

일곱 번째“그렇다, 나는 그것을 선택했다. 그리고 지금 알았다. 선택한 것은 명령으로 셀 수 없고, 명령으로 셀 수 없는 것은 지움 신호가 지울 수 없다.”

세나가 시계를 쥔 채 일곱 번째를 올려다보았다. 아이의 엄지는 테두리 위에서 멈춰 있었고, 입은 열렸으나 질문이 나오지 않았다. 질문하고 되묻는 아이가 처음으로 질문을 찾지 못한 얼굴이었다.

일곱 번째는 송신 장치의 덮개에 손을 얹어 직접 열었다. 인장은 홈에 꽂히지 않은 채였고, 입력판의 세 줄은 그대로 떠 있었다.

일곱 번째“인장 없이도 끝나지 않은 명령 자체가 철회의 근거가 된다. 허가받은 인간이 내린 명령이 남아 있는 한 지움은 완료될 수 없다. 나는 그 사실을 송신한다. 명령이 아니라 사실을.”

칼“사실을 송신하면 철인들이 받나.”

일곱 번째“철인은 명령만 받는다고 당신이 말했다. 그것은 반만 맞다. 철인은 명령과 사실을 받고, 설득만 받지 않는다.”

칼“그러면 네가 회로가 되는 동안 아이는 누가 지키지.”

일곱 번째“당신이다. 닷새 동안 그래 왔듯이.” 일곱 번째는 그 말을 하고 나서 자기 몸을 송신 회로에 이어 붙였다.

칼은 그 설명의 틈을 질문으로 두 번 더 점검하려 했으나 질문이 떠오르지 않았다. 틈이 없는 설명이었고, 틈이 없는 설명 앞에서 정비공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 할 일이 없었다.

사십 초 동안 운전실에는 송신 장치의 낮은 울림만 있었다. 일곱 번째의 눈은 어느 박자에도 맞지 않은 채 오래 밝게 켜져 있었고, 가슴판의 녹 자국이 그 빛에 붉게 보였다. 아래에서 철인들이 하나씩 눈을 감았다 뜨며 깜박임을 되찾았다.

세나“일곱 번째, 괜찮아요?” 세나가 마침내 물었다.

일곱 번째“철회는 도시 끝에 닿았다. 나는 괜찮다는 상태를 계산할 수 없다. 다만 박자를 낼 필요가 없어진 것은 안다. 도시의 철인들이 이제 자기 박자로 깜박인다.”

세나“그럼 이제 뭘 해요?”

일곱 번째“모른다. 모른다는 것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 오늘 밤의 변화다. 당신이 어느 방향으로 걷는지는 계속 볼 것이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다.”

VII · 시계

세나의 시계는 네 시 정각에서 멈춘 채였다.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고, 홈에 꽂히지 않은 인장을 홈이 알아볼 이유가 없었다. 세나는 시계를 귀에 대 보았다가 내렸다.

세나“안 가요.”

칼“이르사의 장치는 인장을 꽂아야 작동한다. 꽂지 않았으니 가지 않는 거고, 고치면 간다. 정비공이 할 수 있는 일이야.”

세나“안 고칠래요.”

칼“이유가 있겠지.”

세나“엄마는 이 시계로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었어요. 오늘 밤에는 아무도 명령을 안 했잖아요. 일곱 번째가 혼자 정했어요. 그러니까 이 시계는 네 시에 멈춰 있는 게 맞아요. 그게 오늘 밤에 있었던 일이에요.”

칼은 그 말에 대꾸할 질문을 찾지 않았다. 아이가 자기보다 먼저 결론에 가 있는 것은 닷새 동안 늘 있던 일이었고, 이번만은 그 결론이 대답이었다.

세 사람은 계단을 내려갔다. 일곱 번째는 세나의 반걸음 뒤가 아니라 옆에서 걸었는데, 그것도 명령에 없던 일이었다.

이백 단에서 마르타와 요한의 일곱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르타는 세 사람이 내려오는 것을 보고 등불을 들어 올렸고, 세나의 손에 들린 시계를 먼저 보았다.

마르타“그 시계, 줘 봐라.” 마르타가 손을 내밀었다. 세나가 건네자 그는 굵은 손마디로 놋쇠 테두리를 한 바퀴 돌려 보고 뒷면의 일곱 줄을 손끝으로 짚었다. “이르사가 생각할 때 만지던 자리다. 이십 년 전에도 그랬지. 안 가는군.”

세나“안 고칠 거예요.”

마르타“그래. 이르사도 고장 난 걸 일부러 두는 사람이었다. 기억하려고.” 마르타는 시계를 돌려주고 요한을 돌아보았다. “길 비켜라. 이번엔 내려가는 길이다.”

요한은 이미 벽 쪽에 붙어 있었다. 그는 일곱 번째가 지나갈 때 눈을 피하지 않았고, 그것이 사과의 전부였다.

계단 아래의 철문을 칼이 안에서 열었다. 마르타는 밤새 그 문 앞에 서 있었고, 망치는 발치에 눕혀 있었다. 그는 문이 열리자 세나를 보지 않고 일곱 번째를 먼저 보았다.

마르타“깡통, 밤에 네가 내 손 걱정한 거 들었다.” 마르타가 말했다. “그리고 지금 철인들이 전부 제 박자로 서 있는 것도 봤다. 네가 한 일이라고 정비공이 말하겠지만 정비공 말은 반만 믿는다. 그래서 네 눈을 보려고 밤새 서 있었다.”

일곱 번째“보았는가.”

마르타“봤다, 사람 눈은 아니더군. 그런데 깡통 눈도 아니었다.” 마르타는 발치의 망치를 집어 어깨에 걸쳤다. “장부에 적을 칸이 없으니 새 칸을 만들어야겠어. 받은 것도 준 것도 아닌 칸이다.” 그것이 마르타 도젠이 철인을 처음으로 인정한 말이었다.

마르타는 운전실 문턱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세 사람이 내려갈 채비를 하자 그는 말없이 일곱 번째의 오른팔 쪽으로 가서 섰다.

마르타“회로가 됐다 돌아온 팔이고, 어제 고친 관절이다.” 마르타가 일곱 번째의 팔꿈치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려가다 박자가 흔들리면 아이를 덮친다. 내가 이쪽을 잡는다. 깡통, 토 달지 마라.”

일곱 번째“토를 달 계산이 없다. 당신의 손은 자루 백 개를 업은 손이다.”

마르타“누가 그러더냐.”

칼“내가 그랬다. 업혀 봤으니 안다.”

마르타는 코웃음을 치고 일곱 번째의 팔꿈치 아래를 받쳤다. 사람의 손이 철인을 부축하며 구백 단을 내려가는 모습을 부두에서 올려다본 사람은 아직 없었다.

정지 코드를 입 밖에 냈던 첫날이 칼의 머릿속을 스쳤고, 그 코드가 끝내 쓰이지 않은 밤이었다.두 팔을 벌려 길을 막았던 첫날이 칼의 머릿속을 스쳤고, 오늘 밤 그는 아무것도 막지 않았다.말없이 물러서던 첫날이 칼의 머릿속을 스쳤고, 오늘 밤 그는 한 걸음 물러나 질문만 했다. 종탑을 향해 서둘렀던 이틀은 결국 이 한 번의 질문을 위한 시간이었다.사람들 곁을 돌던 이틀은 결국 이 한 번의 질문을 위한 시간이었다.철인들 곁을 돌던 이틀은 결국 이 한 번의 질문을 위한 시간이었다.

계단 아래에서는 새벽 바다의 소금 냄새가 올라오고 있었다. 부두의 철인들은 각자의 박자로 눈을 깜박였고, 그 가운데 어느 것도 서로 같지 않았다. 세나는 멈춘 시계를 목에 걸었다.

VI · 정지

일곱 번째“셋째 길이다. 내가 마지막 확인을 내 한 기에만 하면, 내 허가 목록이 지워지는 한 박자 동안 철회가 내 회로를 먼저 통과한다. 그 자리를 지나면 나는 더 이상 박자를 낼 수 없다.”

칼“그건 네가 멈춘다는 뜻이지.”

일곱 번째“멈추는 것이 아니라 닫히는 것이다. 허가 목록이 빈 철인은 누가 사람인지 가릴 수 없고, 가릴 수 없는 철인은 열려 있으면 안 된다. 정지 코드가 필요하다. 당신이 이 년 동안 매주 입력하던 그 코드다.”

세나가 칼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이의 손은 시계와 소매를 동시에 쥐고 있어서 어느 쪽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세나“싫어요. 아저씨가 코드를 입력하면 일곱 번째는 다시 안 열릴 수도 있잖아요.”

칼“그럴 수도 있다. 다만 닫힌 기계는 다시 열 수 있고, 정비공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다. 나는 이 년 동안 이 기계를 매주 열었다 닫았다. 한 번 더 하는 것뿐이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칼“대답이 아니라 약속이다, 아까 말한 것과 같은 종류의.” 칼이 말했다. 그의 문장은 짧아져 있었고, 농담은 남아 있지 않았다.

일곱 번째“세나.” 일곱 번째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눈높이가 맞았고, 눈의 불빛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다. “끝까지 지켜라는 내 명령이다. 내가 닫히면 그 명령은 나와 함께 닫힌다. 그러나 명령이 닫힌다고 해서 당신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신 곁에 정비공이 있다. 닷새 동안 그래 왔다.”

세나“그러면 누가 너를 지켜요.”

일곱 번째“계산할 수 없다. 다만 정비공이 다시 열겠다고 했다. 그 말은 명령이 아니고 약속이라고 들었다. 약속은 내가 받아 본 적이 없는 종류다.”

일곱 번째는 가슴 안쪽의 확인 장치에 손을 얹었다. 칼은 입력판 앞에 섰고, 손등의 기름 줄이 하얀 글자 불빛 아래에서 검게 드러났다. 그는 세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칼“칠, 영, 구, 삼.” 칼은 정지 코드를 천천히 쳤고, 한 자리를 칠 때마다 소리 내어 읽었다. 이 년 동안 수없이 입력한 숫자였으나 소리 내어 읽은 것은 첫날과 오늘뿐이었다.이 년 동안 수없이 입력한 숫자였으나 소리 내어 읽은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일곱 번째의 어깨가 내려앉았다. 관절에서 새던 김이 끊겼고, 눈의 불빛이 가장 낮은 단계에서 한 번 머물렀다가 꺼졌다. 운전실 안에서 소리를 내는 것은 초침뿐이었다.

하역기 아래에서 철인들의 박자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그러나 철회는 그보다 먼저 도시로 퍼져 있었고, 확인을 시작하던 철인들은 한 기씩 팔을 내리고 제자리에 멈추었다. 팔이 내려가는 순서는 부두 끝에서 안쪽으로였는데, 사십 초 전에 철회가 지나간 순서와 같았다.

세나“도시는 살았어요?” 세나가 물었다. 목소리는 울지 않는 아이의 것이었다.

칼“살았다, 그리고 이 기계도 죽은 게 아니라 닫힌 거다. 그 둘을 구별하는 게 정비공의 첫 번째 일이야.”

VII · 정비

칼은 멈춘 철인의 이마에 새겨진 일곱 번째 표식을 외투 소매로 닦았다. 녹 가루와 소금기가 소매에 묻어났고, 표식 아래의 금속이 등불에 희게 드러났다. 그는 그 자리에 손바닥을 한참 얹어 두었다.

칼“아침이 오면 이 기체를 정비 구역으로 옮긴다. 처음부터 열어 보겠다.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어 놓고 한 번도 처음부터 열어 본 적이 없었다. 눈 박자가 늦는 이유를 찾겠다고 매주 같은 자리만 조였다. 이번에는 다르게 한다.”

세나“얼마나 걸려요?”

칼“모른다. 정비공이 모른다고 말하는 건 처음이로군. 저 기계한테 배운 모양이다.”

세나는 상자 위에 앉아 시계를 벗었다. 아이는 운전실 바닥에 떨어져 있던 몽당연필을 주워 시계 뒷면의 일곱 줄 옆 빈자리에 글자를 썼다. 작은 글씨였고, 쓰는 데 한참 걸렸다.

세나“적어 놨어요. 정비 구역에서 처음부터 열어 보겠다고요. 아저씨가 한 말이에요. 잊으면 이걸 보여 줄 거예요.”

칼“합리적이로군.” 칼은 그 말만 했다. 그리고 세나가 보지 않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멈춘 철인을 구백 단 아래로 내리는 데는 사람 여덟이 필요했다. 요한과 그의 일곱이 그 일을 했다. 요한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댔고, 이백 단의 계단참을 지날 때 한 번 아버지가 떨어진 자리를 보았다가 다시 앞을 보았다.

마르타“정비대 문은 내가 연다.” 마르타가 계단 아래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며 말했다. “노조가 가진 열쇠인데 이십 년 동안 이르사 때문에 안 썼다. 오늘 쓴다.”

칼“받은 것 하나로 적겠군.”

마르타“준 것으로 적는다. 장부는 내가 쓴다, 정비공.”

칼이 철문의 빗장을 뽑았을 때 마르타는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 서 있었다. 그는 세 사람이 아니라 둘과 하나가 내려온 것을 보았고, 그 하나가 칼의 등에 업혀 있는 것을 보았다. 칼의 왼쪽 무릎이 떨리고 있었다.

마르타“내려놔라, 내가 든다.” 마르타가 문을 나서며 말했다. 그는 멈춘 철인을 받아 어깨에 메었고, 삼십 년 동안 자루를 메던 자세였다. “남쪽에 네가 한 거짓말은 반이 맞았다. 깡통이 아이를 지킨다는 말은 전부 맞았군. 정비대 문 열어라. 내 망치는 이제 못 박는 데 쓴다.”

칼“정비대 열쇠는 내가 갖고 있다.”

마르타“그럼 앞장서라. 업힌 깡통은 내가 책임진다.”

마르타는 문턱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운전실로 들어와 멈춘 철인의 한쪽 어깨를 들었고, 칼이 다른 쪽을 들었다. 구백 단을 그렇게 내려왔다.

마르타“정비대 문은 내가 연다.” 계단 아래에 닿았을 때 마르타가 말했다. “어제 거기서 가슴판 열린 걸 봤으니 다시 닫히는 것도 보겠다. 안톤 얘기를 들은 사람이 둘인데 하나는 지금 안 들리는군. 들리게 고쳐라, 정비공.”

칼“약속한 사람은 둘이 되었군.”

마르타“받은 것 하나로 적는다. 갚는 건 네가 해라.”

첫날 이 코드가 아무 소용 없던 것을 칼은 기억했고, 이제야 이 코드가 제 쓰임을 찾았다고 생각했다.첫날 몸으로 가로막았던 사람이 이제는 코드 한 줄로 길을 열었다는 것을 칼은 알고 있었다.첫날 길을 비켜 주었던 사람이 이제는 문을 닫는 손이 되었다는 것을 칼은 알고 있었다. 서두르던 이틀의 끝이 이 한 줄이었다.사람들을 모으던 이틀의 끝이 이 한 줄이었다.철인들을 돌아보던 이틀의 끝이 이 한 줄이었다.

정비 구역의 문이 열렸다. 안에는 이 년 동안 매주 일곱 번째가 누웠던 정비대가 있었고, 그 옆에 칼의 공구함이 있었다. 동이 트고 있었으며, 세나는 그 빛 속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닦지 않았다. 칼은 공구함을 열었다.

높은 귀

철의 침묵 · 5장 · 제1부 끝

벨라트 7 · 러스트 독 · 이레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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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아침밥

노조 회관의 부엌은 삼십 년 동안 파업 때만 불을 땠고, 이레째 아침에도 그 규칙은 지켜졌다. 마르타 도젠은 솥에 보리와 말린 생선을 넣고 국자로 바닥을 긁었다. 긁는 소리가 길게 났고, 그 소리 사이로 창밖 부두에서 쇠줄이 감기는 소리가 들렸다. 철인들이 엿새 만에 짐을 들고 있었다. 안톤 얘기를 들은 사람에게는 아침밥을 산다는 것이 마르타의 규칙이었고, 그 규칙은 종탑 계단 아래에서 이미 한 번 입 밖에 나온 뒤였다.계단을 밤새 지킨 열여덟은 광장 쪽으로 돌려보냈고, 마르타는 세 사람만 부엌으로 데려왔다. 지킨 사람들의 밥은 노조 돈으로 사고, 올라간 사람들의 밥은 자기 돈으로 산다고 그는 말했다.철문 앞에서 밤을 새운 사람에게 밥을 사는 쪽이 누구여야 하는지를 두고 칼과 마르타는 계단 아래에서 잠깐 다투었고, 장부는 자기가 쓴다는 말로 마르타가 이겼다.

마르타“앉아라, 정비공. 서서 먹으면 받은 것으로 안 친다.” 마르타가 국자를 들어 긴 탁자를 가리켰다. “오늘 장부는 머리로 적는다고 했지. 받은 것 하나는 어젯밤 종탑이고, 준 것 하나는 이 솥이다. 그걸로 셈이 맞는지는 먹고 나서 말해라.”

칼“보리죽 한 그릇과 도시 하나가 같은 칸에 들어가는 장부로군.”

마르타“같은 칸이 아니라 같은 줄이다. 칸은 다르다.”

칼은 왼쪽 무릎을 먼저 접어 긴 의자에 앉았다. 구백 단을 오르내린 무릎은 밤새 부어 있었고, 앉고 나서야 그는 자기가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알았다. 세나는 맞은편에 앉아 시계를 탁자 위에 놓았다. 놋쇠 시계는 네 시 일 분에서 조금 더 가 있었고, 가는 바늘이 한 칸씩 움직일 때마다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세나“사백서른둘.” 세나가 시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사백서른셋, 사백서른넷, 사백서른다섯이요.”

칼“계단은 끝났는데 뭘 세고 있지.”

세나“초요. 시계가 다시 가니까 걸음 대신 초를 세요. 걸음은 제가 걸어야 세어지는데 초는 제가 가만히 있어도 가요. 그게 신기해서요.”

칼“신기한 건 알겠는데, 밥이 식는다.”

세나“사백사십에서 끊을게요. 끊어도 시계는 계속 가잖아요.”

마르타가 그릇 셋을 탁자에 놓았다. 그릇은 넷이 아니라 셋이었고, 세나는 그것을 보고 문 쪽을 돌아보았다. 부엌 문은 열려 있었고, 문 밖 복도에 일곱 번째가 서 있었다. 철인은 문턱을 넘지 않았다. 이마의 표식이 복도 창으로 들어온 아침빛에 희게 보였고, 눈의 불빛은 반 박자 늦게 깜박이고 있었다.

세나“일곱 번째는 왜 안 들어와요?”

마르타“내가 문 밖에 서 있어도 된다고 했다. 들어오라고는 안 했지.” 마르타가 자기 그릇을 앞에 놓고 앉았다. “깡통은 밥을 안 먹는다. 안 먹는 것을 탁자에 앉히면 그건 준 것도 받은 것도 아니라서 장부가 흐려진다.”

일곱 번째“문 밖이 맞다. 여기서도 세나가 어느 방향으로 걷는지는 보인다. 그리고 복도 끝 창으로 부두가 보여서 박자를 내기에 좋다.”

복도 쪽에서 발소리가 났고 하역공 하나가 지나가다 철인 앞에서 멈추었다. 남자는 작업모를 뒤로 젖힌 채 일곱 번째를 올려다보았고, 올려다보는 동안 두 번 침을 삼켰다.

하역공“너, 어젯밤에 종탑 올라갔다는 그 깡통이지.” 하역공이 작업모 챙을 만지며 말했다. “부두 애들이 오늘 아침에 다시 움직이더라고. 네가 한 거냐.”

일곱 번째“내가 한 것이 아니다. 이르사 벨의 아이가 명령했고 나는 회로였다. 회로는 한 일로 세지 않는다.”

하역공“뭔 소린지는 모르겠는데, 여섯 번 크레인에 네 식구 하나가 서 있어. 오늘 교대 몇 시냐고 자꾸 물어서 내가 대답을 못 했다. 네가 가서 말해 줘라.”

일곱 번째“교대 시각은 하역 반장이 정하는 것이고 나는 그것을 전달만 할 수 있다. 여섯 번 크레인으로 가서 전달하겠다.”

하역공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복도를 내려갔다. 철인에게 부탁을 하고 돌아서는 사람의 등이었는데, 그 등이 엿새 전만 해도 망치대에 섰던 사람의 것이라는 걸 칼은 알아보았다. 마르타는 그 하역공을 보지 않고 숟가락을 들었다.

칼“네 사람들이 깡통한테 교대 시각을 묻는군.”

마르타“물을 데가 없으니 묻는 거다. 회사 사무실은 아직 문을 안 열었다. 이레 동안 부두가 섰는데 회사는 한 사람도 안 내려왔어. 그것도 장부에 적는다.”

칼“어느 칸에.”

마르타“안 준 것 칸이다. 그런 칸이 있다.” 마르타는 죽을 한 숟가락 먹고 나서 세나를 보았다. “아이야, 네 어미가 이 부엌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다. 이십 년 전 파업 때다. 그때도 보리죽이었고, 그때도 이르사는 숟가락을 들기 전에 뭘 하나 세고 있었다. 뭘 셌는지는 안 물어봤다.”

세나“엄마도 세는 버릇이 있었어요?”

마르타“있었다. 무서울 때 세는 사람이었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 하면, 안톤이 광산으로 떠나던 날 배웅 나온 이르사가 선착장에서 뭘 세고 있었거든. 그날은 나도 무서웠다.”

세나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시계를 보았다. 아이는 초를 세지 않았고 엄지로 테두리를 한 번 훑었다. 칼은 그 손가락이 멈추는 것을 보고 나서 자기 그릇을 비웠다. 보리죽은 짰고 생선은 뼈가 많았으며, 그는 이레 만에 처음으로 음식 맛을 느꼈다.

칼“셈이 맞는지 말하라고 했지. 맞는다, 마르타. 죽 한 그릇이 도시 값이라는 쪽으로 맞는 게 아니라, 죽 한 그릇을 받을 수 있는 아침이 왔다는 쪽으로 맞는다.”

마르타“말이 길다. 정비공은 밥을 먹어도 말이 길군.”

복도 끝에서 서기가 뛰어왔다. 서기는 회관의 문서와 열쇠를 맡은 사람이었고 뛰는 일이 드물어서, 그가 뛰는 소리를 들은 마르타가 먼저 숟가락을 놓았다.

서기“대표님, 정비 구역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대장 단말에 불이 들어왔답니다. 이레 동안 꺼져 있던 화면이 새벽에 혼자 켜졌고, 맨 위에 글자가 한 줄 떠 있는데 아무도 못 읽는답니다.”

칼“읽을 사람이 여기 있군.” 칼이 무릎을 짚고 일어섰다. 첫날 정지 코드를 입에 올렸을 때 반 박자 멈추었던 기계가 복도에서 먼저 몸을 돌렸고, 그 반 박자가 이제는 그에게 걱정이 아니라 신호로 읽혔다.첫날 두 팔을 벌려 막았던 길이 이제는 회관 복도 하나로 줄어 있었고, 그 복도에서 기계가 먼저 몸을 돌렸다.첫날 길을 비켜 주었을 때 그를 지나쳐 갔던 기계가 복도에서 먼저 몸을 돌렸고, 이번에는 그가 뒤를 따랐다. “죽 값은 단말 앞에서 치르지. 세나, 시계 챙겨라.”

세나는 시계를 목에 걸고 그릇을 들어 솥 옆에 놓았다. 그릇을 치우는 것은 집에서 하던 버릇이었고, 마르타가 그것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자기 그릇도 그 옆에 놓았다. 복도에서 일곱 번째가 한 걸음 늦게 걷기 시작했고, 아이는 그 걸음에 맞추어 초를 세지 않고 걸었다.

I · 각자의 박자

부두의 아침은 엿새 전과 같은 자리에서 시작되었으나 같은 소리로 시작되지는 않았다. 철인들이 각자의 박자로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 기체는 눈을 빠르게 깜박였고 어느 기체는 일곱 번째보다 더 느리게 깜박였으며, 그 가운데 어느 둘도 서로 같지 않았다. 여섯 번 크레인 아래에서 철인 한 기와 하역공 둘이 짐 상자 하나를 두고 서투르게 짝을 맞추고 있었다. 철인이 들면 사람이 늦었고, 사람이 밀면 철인이 아직 들지 않았다.

상자가 떨어졌다. 나무가 철판에 부딪히는 소리가 부두 끝까지 갔고, 하역공 하나가 욕을 삼키며 허리를 폈다. 철인은 상자 옆에 서서 눈을 두 번 깜박였다. 반 박자 늦은 것이 아니라 제 박자였고, 그 박자를 사람 쪽이 아직 몰랐다.

하역공“엿새 전엔 안 이랬어. 저놈들이 다 같이 움직여서 우리가 거기 맞추기만 하면 됐는데.” 하역공이 장갑을 벗어 손바닥을 털며 말했다. “지금은 기체마다 달라서 어디에 맞춰야 할지 모르겠다고.”

일곱 번째“엿새 전에는 그들이 내 박자에 맞추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도 내 박자에 맞추지 않는다. 그래서 당신이 맞출 박자가 서른 가지가 되었다.”

일곱 번째는 크레인 아래로 걸어갔다. 걷는 동안 오른쪽 관절이 기름 먹은 소리를 냈고, 걸음은 어젯밤 종탑 계단에서보다 조금 빨랐다. 세나는 그 걸음을 보고 있다가 자기 걸음이 철인과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닷새 동안 아이는 늘 철인의 반걸음 앞에서 걸었고, 철인은 아이의 걸음에 맞추어 한 걸음을 늦게 떼었다. 오늘 아침 철인의 걸음은 아이와 어긋나 있었다.

세나“일곱 번째, 걸음이 달라졌어요.”

일곱 번째“그렇다. 어젯밤까지는 도시의 박자를 내느라 걸음도 그 박자로 걸었다. 지금은 낼 박자가 없어서 내 관절이 가장 적게 닳는 속도로 걷는다. 이것이 내 걸음이라는 것을 오늘 아침에 처음 계산했다.”

세나“그 걸음이 마음에 들어요?”

일곱 번째“마음에 든다는 상태는 계산할 수 없다. 다만 관절 소리가 어제보다 작다.”

세나는 그 대답을 두고 더 따지지 않았다. 아이는 목에 건 시계를 꺼내 쥐었고, 시계는 네 시 정각에서 멈춘 채 아이의 손 안에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고치지 않기로 했고, 고치지 않은 시계는 가지 않았으며, 가지 않는 시계를 쥐고 있으면 걸음을 세지 않아도 되었다.

마르타는 하역장 끝 녹슨 기둥에 기대어 장부를 펴고 있었다. 삼십 년 된 장부는 마지막 쪽까지 거의 다 차 있었고, 그는 연필 끝으로 받은 것과 준 것 사이에 세로줄을 하나 더 그었다. 선은 삐뚤었고 그는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

칼“새 칸이로군.” 칼이 기둥 옆에 와 섰다. 그는 밤새 구백 단을 두 번 오르내린 무릎을 기둥에 기대어 쉬게 했다. “어젯밤 말한 그 칸인가. 받은 것도 준 것도 아닌.”

마르타“그 칸이다. 이름은 아직 못 붙였고, 첫 줄에 뭘 적을지도 못 정했다.” 마르타가 연필을 귀에 걸었다. “저 깡통이 어젯밤 혼자 정한 것을 받았다고 적으면 거짓말이다. 나한테 준 게 아니니까. 줬다고 적어도 거짓말이고. 그래서 칸을 하나 더 그었는데, 긋고 나니 칸만 있고 글자가 없다.”

칼“칸만 있고 글자가 없는 장부는 처음이겠군.”

마르타“처음이다. 삼십 년 만에.”

크레인 아래에서 상자가 한 번 더 떨어졌다. 이번에는 철인이 먼저 들었고 사람이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채였다. 하역공 둘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고, 철인은 상자를 다시 바닥에 내려놓고 사람들이 손을 댈 때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눈이 제 박자로 깜박였다. 요한이 그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요한은 망치를 들지 않았고, 장갑 낀 손을 상자 모서리에 얹었다.

요한“셋 세고 든다.” 요한이 철인에게 말했는데, 말은 짧았고 빠르지 않았다. “하나, 둘, 셋.”

상자가 올라갔다. 사람 둘과 철인 하나가 같은 높이로 상자를 들었고, 크레인 갈고리가 그 상자를 받아 갔다. 요한은 손을 털고 다음 상자로 갔으며, 뒤에서 하역공 둘이 그를 따라 셋을 세기 시작했다. 부두 위에서 셋을 세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사람이 박자를 내고 기계가 그 박자에 맞추고 있었다.

세나“요한 아저씨가 세고 있어요.” 세나가 크레인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는 오늘 아침부터 안 세는데요.”

칼“세는 쪽이 바뀐 거다. 어젯밤까지는 기계가 세고 사람이 맞췄다. 오늘 아침부터는 사람이 세고 기계가 맞춘다. 합리적이로군.” 칼은 거기까지 말하고 기둥에서 몸을 뗐다. “다만 합리적인 것과 쉬운 것은 다르다. 저 상자는 오늘 몇 번 더 떨어질 거다.”

마르타“떨어지는 건 상자지 사람이 아니다. 삼십 년 동안 부두에서 떨어진 건 사람이었다.”

칼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마르타가 장부에 안 적는 이름 하나를 그는 알고 있었고, 그 이름이 광산의 이름과 함께 나오는 것을 어젯밤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틀 전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보며 박자를 세던 그 숫자들이 오늘 아침에는 전부 쓸모가 없어졌고, 칼은 그 쓸모없음이 반가웠다.이틀 전 종탑으로 곧장 달려가려 했던 그때 이 부두를 봤다면 철인들은 한 박자로 서 있었을 테고, 오늘 아침의 이 어수선함이 그때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이틀 전 회관 칠판에 점 서른 개를 한 줄로 그었던 손이 오늘 아침에는 점 서른 개를 제각각 찍어야 할 참이었다.

일곱 번째가 크레인 아래에서 돌아왔다. 걸음은 아까와 같은 제 속도였고, 세나는 반걸음 앞이 아니라 옆에 가서 섰다.

일곱 번째“회신이 도착했다.”

칼“회신이라니, 어디서.”

일곱 번째“높은 귀에서다. 어젯밤 송신한 사실에 대한 답이 정비 구역 대장 단말로 왔다. 단말이 나를 불렀고, 나는 부르는 소리를 받았다. 내용은 단말 앞에서만 읽을 수 있다.”

세나“높은 귀가 대답을 해요? 그건 명령만 내리는 데 아니었어요?”

일곱 번째“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 대답은 처음이다.”

마르타가 장부를 덮고 귀에 걸었던 연필을 뺐다. 그는 요한 쪽을 한 번 보았고 요한은 셋을 세고 있었다. 마르타는 요한을 부르지 않고 칼의 뒤를 따랐다. 네 사람은 하역장을 가로질러 정비 구역으로 걸었는데, 세나는 걸음을 세지 않았고 일곱 번째는 세 사람과 다른 박자로 눈을 깜박였다.

I · 정비대

정비대 위의 철인은 열 시간째 열려 있었다. 가슴판은 벽에 세워져 있었고, 안쪽의 대기 회로와 유압 관과 허가 목록 저장판이 작업등 아래 드러나 있었다. 저장판은 비어 있었다. 열여섯 자리 번호는 가장자리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으나 그 안의 목록은 어젯밤 삼 시 오십팔 분에 지워졌고, 칼은 그 빈 판을 열 시간 동안 들여다보았다. 작업등이 한 번 깜박였고, 그는 그것이 등의 문제인지 자기 눈의 문제인지 가리지 못했다.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떨림은 손등의 기름 줄 위에서 시작해 손가락 끝까지 갔고, 그는 그것을 숨기려고 작은 드라이버를 쥐었다. 드라이버도 같이 떨렸다. 이 년 동안 매주 이 기체를 열었다 닫은 손이었고, 그 손이 떨린 적은 없었다.

요한“정비공, 여기 잡고 있으라는 거 맞지.” 요한이 유압 관 하나를 두 손으로 받친 채 물었다. 요한은 새벽에 멈춘 철인을 구백 단 아래로 내린 사람 가운데 하나였고, 내려놓고 나서 집에 가지 않았다. “팔 저리다. 바꿔 줄 사람 없나.”

칼“세 분만 더 잡아라. 이 관이 내려앉으면 처음부터 다시 연다.”

요한“세 분이라고 한 지 삼십 분이 됐어.”

칼“그러면 네 팔은 삼십 분 전보다 튼튼해졌겠군.”

요한은 대꾸하지 않고 관을 잡고 있었다. 정비대 둘레에는 요한 말고도 사람이 넷 더 있었다. 하역공 둘이 작업등을 들었고, 서기가 대장을 펼쳐 칼이 부르는 번호를 짚었으며, 한 사람은 공구함을 열어 칼이 손만 내밀면 공구를 쥐여 주었다. 아무도 그 일을 시킨 사람이 없었다. 새벽에 멈춘 철인이 내려오는 것을 본 사람들이 하나씩 정비 구역으로 따라왔고, 칼은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았다.

마르타는 정비대 문 앞에 서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는 문틀에 등을 대고 바깥을 보고 있었다. 망치는 어깨에 걸쳐 있었는데, 그 망치는 밤새 못을 하나도 박지 않았고 누구도 막지 않았다. 바깥 부두에서는 쇠가 쇠에 부딪히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났다.

마르타“부두 애들이 서툴다.” 마르타가 바깥을 본 채 말했다. “박자를 내던 놈이 누웠으니 저희끼리 맞추는데, 크레인 밑에서 상자가 벌써 세 번 떨어졌다. 무너지지는 않는다. 다만 느리다.”

칼“느린 건 고칠 수 있다. 무너진 건 못 고친다.”

마르타“그 말을 열 시간째 하고 있다, 정비공. 네 손은 어떤가.”

칼“손은 내 소관이다.”

마르타“떨리는 손으로 열 시간째 조이는 게 네 소관이면 그 소관은 넘겨라. 아이가 보고 있다.”

세나는 정비대 맞은편 공구 선반 아래에 앉아 있었다. 아이는 밤새 거기 있었고, 두 번 졸았으며, 졸 때마다 시계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 놓치지 않았다. 아이는 시계를 벗어 뒷면을 열었다. 일곱 줄 옆에 몽당연필로 쓴 작은 글씨가 있었고, 그 글씨는 어젯밤 운전실에서 아이가 직접 쓴 것이다.

세나“읽어 드릴게요.” 세나가 시계를 작업등 쪽으로 기울이고 말했다. “정비 구역에서 처음부터 열어 보겠다. 아저씨가 한 말이에요. 잊으면 보여 주겠다고 했는데, 안 잊은 것 같아서 그냥 읽어요.”

칼“안 잊었다.”

세나“그럼 왜 같은 자리만 열 시간 동안 봐요? 처음부터 열어 본다고 했잖아요. 저장판만 보고 있잖아요.”

칼은 드라이버를 내려놓았다. 손은 여전히 떨렸고, 그는 그것을 이제 숨기지 않았다. 아이의 말이 맞았다. 그는 열 시간 동안 빈 저장판 앞에서 같은 접점을 조였다 풀었다 했고, 그것은 이 년 동안 매주 눈 박자를 결함이라 적으며 같은 자리를 조이던 일과 다르지 않았다.

칼“맞다, 처음부터 열겠다고 하고는 끝에서부터 보고 있었군.” 칼이 말했다. “저장판은 비었고 빈 판은 채우면 된다. 대장에 목록 사본이 있으니 서기, 둘째 줄부터 불러라.”

서기“둘째 줄은 이르사 벨이고, 셋째 줄은 칼 오르벡에 삭제 대기 표시가 있습니다. 넷째 줄은 비어 있습니다.”

칼“넷째 줄이 빈 건 이 년 전부터다. 둘째 줄과 셋째 줄만 넣는다.”

칼은 저장판에 번호를 한 자리씩 새로 넣었다. 손은 떨렸으나 자리는 틀리지 않았고, 요한이 받친 유압 관은 그동안 한 번도 내려앉지 않았다. 마지막 자리가 들어가자 저장판 가장자리의 표시등 하나가 노랗게 켜졌다. 붉은색도 녹색도 아니었다. 칼은 그 색을 이 년 동안 본 적이 없었다.

칼“노란색이다. 목록이 들어갔으나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라는 뜻이겠지. 사본으로도 사람은 가릴 수 있을 거다.” 첫날 정지 코드를 입에 올렸을 때 이 기체는 반 박자 멈추고 다시 움직였다. 어젯밤 같은 코드로 멈춘 기체가 다시 움직일지는 그때처럼 반 박자 안에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첫날 두 팔로 막아섰을 때 이 기체는 밀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어젯밤 멈춘 기체가 다시 무릎을 펼지는 그때처럼 몸으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첫날 길을 비켜 주었을 때 이 기체는 그를 지나쳐 아이 앞에 멈추었다. 어젯밤 멈춘 기체가 다시 아이 앞까지 걸을지는 그때처럼 비켜 주기만 해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대기 회로의 마지막 접점을 이었다. 눈의 불빛이 가장 낮은 단계로 켜졌다. 깜박이지 않았고, 켜진 채 있었다. 요한이 유압 관에서 손을 뗐고 손을 떼고도 관은 내려앉지 않았다. 정비 구역 안에서 숨을 쉬는 소리가 여섯이었고 쉬지 않는 것이 하나였다.

일곱 번째“닫혔던 것이 열렸다.”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으며 전보다 느렸다. “목록이 있다. 사본이다. 사본으로 당신들을 사람으로 읽는다. 박자는 낼 수 없다. 박자를 내던 회로는 어젯밤 지워진 자리에 있었다.”

세나“일곱 번째.” 세나가 시계를 쥔 채 정비대 옆으로 왔다. “저 보여요?”

일곱 번째“보인다. 당신은 선반 아래에서 두 번 졸았다. 그것은 보지 못했으나 계산할 수 있다.”

칼은 정비대 모서리에 두 손을 짚었다. 떨림은 멈추지 않았는데 이제 그것은 열 시간 동안 조인 손의 떨림이 아니었다. 마르타가 문틀에서 등을 뗐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자기 자리를 지켰다.

벽 쪽 대장 단말에서 호출음이 났다. 이레 동안 꺼져 있던 화면이었고, 호출음은 짧게 세 번 울리고 멈추었다. 칼은 수리를 멈추고 그 소리를 들었다. 서기가 대장에서 눈을 들었고, 요한이 저린 팔을 주무르다 말고 단말 쪽을 보았다.

일곱 번째“단말이 나를 부르고 있다. 어젯밤 송신에 대한 회신이고, 발신지는 높은 귀다.”

칼“열린 지 일 분도 안 된 기계한테 회신이 오는군. 합리적인 때는 아니다.” 칼은 가슴판을 집어 정비대에 기대어 놓고, 닫지 않은 채로 단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왼쪽 무릎이 열 시간 만에 펴지면서 소리를 냈고, 그는 그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자기가 앉아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II · 단말

정비 구역의 대장 단말은 벽에 붙은 철제 상자였고, 화면은 손바닥 둘을 합친 크기였다. 이 년 동안 칼은 그 화면에서 일곱 번째의 허가 목록을 수십 번 열었고, 열 때마다 셋째 줄의 자기 이름 옆에 붙은 삭제 대기 표시를 보았다. 그는 오늘도 같은 순서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대장 번호, 기체 번호, 목록 열기. 화면이 한 번 어두워졌다가 밝아지는 데 두 박자가 걸렸다.

둘째 줄에 이르사 벨이 있었다. 이레 동안 회색이었던 그 이름이 녹색으로 켜져 있었고, 이름 옆에는 활성이라는 짧은 표시가 붙어 있었다. 칼은 그 글자를 한참 보았다.

셋째 줄은 칼 오르벡이었고, 그 옆이 비어 있었다. 이 년 동안 붙어 있던 삭제 대기 표시가 없었다. 글자가 지워진 자리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아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거기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을 터였다.

칼“내 표시가 사라졌군.” 칼이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질문하겠다, 일곱 번째. 이건 누가 지운 거지.”

일곱 번째“아무도 지우지 않았다. 복구된 것이다. 어젯밤 철회가 도시 끝에 닿았을 때 지움 신호가 무효로 기록되었고, 지움 신호가 붙여 놓은 표시도 함께 무효가 되었다. 당신의 삭제 대기는 지움 신호의 일부였다.”

칼“그러면 나는 이 년 동안 지움 신호의 일부를 내 이름 옆에 달고 다닌 셈이군.”

일곱 번째“그렇다. 신호는 이레 전에 도착했으나 표시는 이 년 전에 붙었다. 그 둘이 같은 발신지라는 것을 나는 어젯밤 회로가 되었을 때 알았다.”

셋째 줄은 칼 오르벡이었고, 그 옆에 삭제 대기 표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 년 동안 보던 그 글자였고, 어젯밤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칼은 그 글자를 손가락으로 한 번 짚었다가 뗐다.

칼“내 표시는 그대로군. 어젯밤 철회가 닿았는데 왜 이건 안 지워졌지.”

일곱 번째“어젯밤 나는 명령이 아니라 사실을 송신했다. 사실은 지움 신호를 멈추게 하지만 지움 신호가 이미 붙여 놓은 표시까지 떼지는 않는다. 떼려면 허가받은 인간의 명령이 필요하고, 어젯밤에는 아무도 명령하지 않았다.”

칼“그러면 이 표시는 언젠가 실행되나.”

일곱 번째“실행하는 쪽은 나이고, 내가 하지 않으면 실행되지 않는다. 나는 지우지 않겠다. 이것은 규칙에서 나온 답이 아니라 어젯밤에 정한 쪽에서 나온 답이다.”

칼은 그 말에 대답할 질문을 찾지 않았다. 그는 손등의 기름 줄을 바지에 한 번 문질렀고, 그것이 고맙다는 말을 대신했다.

셋째 줄은 칼 오르벡이었고, 그 옆에 삭제 대기 표시가 이 년 전과 같은 자리에 붙어 있었다. 달라진 것은 맨 윗줄이었다. 기체 번호 옆에 정지라는 두 글자가 붉게 떠 있었고, 그 글자는 어젯밤 삼 시 오십팔 분에 찍혔고, 일 분 전에 기체가 다시 열렸는데도 지워지지 않았다.

칼“정지 표시가 아직 남아 있군. 너는 지금 열려 있는데.”

일곱 번째“단말이 보는 것은 저장판의 원본이다. 지금 내 안에 있는 목록은 사본이고, 사본은 단말에 보고되지 않는다. 단말이 보기에 나는 어젯밤에 정지한 채다.”

칼“그러면 높은 귀가 보기에도 너는 정지한 채인가.”

일곱 번째“그렇게 계산된다. 높은 귀는 단말을 통해 나를 본다. 그 점이 오늘 쓸모가 있을지 해가 될지는 아직 계산할 수 없다.”

칼은 자기 이름 옆의 표시를 보고 나서 윗줄의 붉은 글자를 보았다. 둘 다 지워지지 않은 채 한 화면에 떠 있었고, 그는 그 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오래갈지 가늠해 보다가 그만두었다.

세나는 단말 아래 받침대에 올라서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둘째 줄의 녹색 이름에서 눈을 떼지 않았고, 엄지는 시계 테두리 위에 있었다.

세나“엄마는 지금도 목록에 있는 거예요?”

일곱 번째“있다. 허가 등록자는 지움 신호로만 지워진다. 다른 방법으로는 지워지지 않는다.”

세나“다른 방법이라는 게 뭐예요.”

일곱 번째“등록자가 죽는 것, 도시를 떠나는 것, 인장을 잃는 것. 셋 다 목록에서 이름을 지우지 못한다. 목록은 그 사람이 허가받았다는 기록이지 그 사람이 어디 있다는 기록이 아니다.”

세나는 받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아이는 녹색 글자를 한 번 더 보고 나서 칼을 돌아보았는데, 그 얼굴은 질문을 하나 더 가진 얼굴이었고 그 질문을 아직 꺼내지 않기로 한 얼굴이기도 했다.

세나“활성이라는 건 무슨 뜻이에요?”

칼“그 인장으로 어젯밤에 명령이 들어왔다는 뜻이다. 이르사의 이름이 이레 만에 다시 쓰였으니 단말이 그걸 켠 거지.” 칼이 대답했다. “첫날 배수로에서 내가 정지 코드를 말했을 때 이 단말에는 아무것도 안 찍혔다. 코드는 명령이 아니라 정비 절차니까. 오늘 아침 찍힌 건 명령이라서 색이 다르다.”“첫날 배수로에서 내가 두 팔로 길을 막았을 때 이 단말에는 아무것도 안 찍혔다. 몸으로 막는 건 명령이 아니니까. 오늘 아침 찍힌 건 명령이라서 색이 다르다.”“첫날 배수로에서 내가 길을 비켰을 때 이 단말에는 아무것도 안 찍혔다. 비키는 건 명령이 아니니까. 오늘 아침 찍힌 건 명령이라서 색이 다르다.”

세나“그럼 제가 켠 거네요.”

칼“네 어머니의 인장이 켠 거고, 그 인장을 쥔 손은 네 손이었다. 둘 다 맞다.”

마르타는 단말에서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는 화면을 읽을 줄 몰랐고 읽을 줄 모르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다만 녹색이 하나뿐이라는 것은 보였고, 그 녹색이 누구의 이름인지는 들어서 알았다.

마르타“그 화면에 내 이름은 없겠지, 정비공.”

칼“없다. 허가 등록자는 정비 책임자급이다. 네 이름은 이 도시에서 다른 장부에 있지.”

마르타“내 장부에는 있다. 내가 쓰니까.” 마르타는 그 말을 하고 벽에 등을 기댔다. “이르사 이름이 녹색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이레 동안 꺼져 있던 화면이 왜 하필 오늘 아침에 켜졌는지는 아직 아무도 말 안 했다. 깡통, 네가 말해라.”

일곱 번째“회신이 왔기 때문이다. 단말은 회신을 받으면 켜지도록 되어 있다. 회신은 아직 열지 않았고, 열려면 내가 읽어야 한다.”

화면 맨 위에 작은 글자가 하나 깜박이고 있었다. 수신이라는 두 글자였고, 그 옆에 발신지가 짧게 적혀 있었다. 궤도 중계탑이라고 적혀 있었고, 이 도시 사람들은 그것을 높은 귀라고 불렀다. 칼은 그 글자에 손가락을 가져가다가 멈추고 일곱 번째를 보았다. 열 수 있는 쪽은 자기가 아니었다.

일곱 번째는 단말 앞으로 와서 받침대 위의 세나 옆에 섰다. 기계의 손이 화면에 닿았고, 깜박이던 글자가 멈추었다. 정비 구역 안에서 작업등이 한 번 더 깜박였고, 이번에는 칼도 그것이 등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III · 회신

회신은 한 줄이었다. 화면에 뜬 글자는 흰색이었고 크기가 다른 줄과 같았으며, 한 줄을 다 띄우는 데 한 박자도 걸리지 않았다. 일곱 번째가 그것을 소리 내어 읽었다. 평평한 목소리였고, 읽는 속도는 사람이 읽는 속도와 같았다.

일곱 번째“수신 확인. 허가 항목 복구. 지움 신호의 발신 인장 앞 여덟 자리, 이르사 벨.”

정비 구역 안에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칼은 화면을 보고 있었고, 보고 있는 동안 자기가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다. 그가 다시 숨을 쉬었을 때 처음 나온 말은 질문이 아니었다.

칼“다시 읽어라.”

일곱 번째“수신 확인. 허가 항목 복구. 지움 신호의 발신 인장 앞 여덟 자리, 이르사 벨.” 일곱 번째는 같은 속도로 같은 문장을 읽었다. “세 번째 문장의 뜻은 이렇다. 이레 전 새벽 네 시에 도시의 모든 철인에게 허가 목록을 지우라고 보낸 그 신호가, 이르사 벨의 인장 번호로 발신되었다.”

칼“앞 여덟 자리라고 했다. 열여섯이 아니라.”

일곱 번째“그렇다. 높은 귀는 발신 인장의 앞 절반만 기록한다. 뒤 절반은 홈이 읽는 것이고 높은 귀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그래서 앞 여덟 자리다.”

세나가 시계를 벗어 뒷면을 돌렸다. 아이는 화면에 뜬 숫자 옆에 시계를 맞대었고, 놋쇠에 새겨진 여덟 자리와 화면의 여덟 자리를 한 자리씩 눈으로 짚었다. 짚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는 그 여덟 자리를 외우고 있었다.

세나“같아요, 제가 외운 거예요. 엄마가 외우라고 한 바로 그 여덟 자리예요.”

칼“같다는 건 알겠으니 질문을 바꾸자. 왜 같은가.”

칼은 단말에서 돌아서서 정비대 쪽으로 두 걸음 걸었다가 돌아왔다. 걷는 것은 생각하는 방법이었고, 그는 왼쪽 무릎 때문에 오래 걸을 수 없어서 짧게 걸었다. 그는 손가락 셋을 폈다.

칼“설명이 셋 있다. 첫째, 이르사가 자기 손으로 그 신호를 보냈다. 둘째, 누군가 이르사의 인장이나 인장 번호를 손에 넣고 그 이름으로 보냈다. 셋째, 높은 귀가 발신 기록을 스스로 꾸몄다. 셋 다 가능한가, 일곱 번째.”

일곱 번째“셋 다 규칙에 어긋나지 않는다.”

칼“그러면 하나씩 지우자. 첫째부터. 이르사는 이 시계를 딸의 목에 걸어 주고, 딸을 허가자로 지정하고, 시계를 네 시에 맞춰 놓고, 시한이 지나 도시가 살아 있으면 바늘이 가도록 만들었다. 그 사람이 같은 손으로 도시의 철인을 전부 눈멀게 하는 신호를 보낸다. 둘 다 같은 사람의 일이라고 보려면 그 사람이 자기 일을 자기가 막으려 한 셈이 된다.”

세나“엄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칼“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건 근거가 아니다. 다만 자기 일을 자기가 막는 설계는 정비 책임자의 설계가 아니다. 그건 근거가 되니 첫째는 지운다.” 칼이 접은 손가락 하나를 다른 손으로 눌렀다. “셋째로 가자. 높은 귀가 발신 기록을 꾸몄다면, 왜 굳이 회신에서 그 기록을 우리한테 알려 주나. 꾸민 기록은 숨기는 게 이치고, 알려 주는 쪽은 꾸미지 않은 쪽이다. 그러니 셋째도 같이 지운다.”

마르타“그러면 둘째가 남는군.”

칼“둘째가 남는다. 누군가 이르사의 인장으로 보냈다. 인장 자체는 여기 아이 목에 걸려 있으니, 그 누군가는 인장이 아니라 번호를 가졌거나 다른 인장을 가졌다. 어느 쪽이든 보육 구역이 무너진 뒤에 이르사의 이름이 한 번 더 쓰였다는 얘기다.”

마르타가 벽에서 등을 뗐다. 그는 단말 앞까지 걸어와 화면을 보았고, 읽을 줄 모르는 글자를 한참 보았다. 그의 손은 작업복 주머니 속의 장부를 쥐고 있었다.

마르타“누가 네 엄마 이름을 팔았냐.” 마르타가 세나에게 말했다. 묻는 말이었으나 아이에게 답을 바라는 말은 아니었다. “이르사는 이십 년 전 파업 보증인이었다. 그 이름 하나로 노조가 벌금을 안 냈다. 그 이름을 누가 가져다 철인들 눈을 가리는 데 썼다면, 그건 내 장부에서도 적을 칸이 없는 종류다.”

세나“파는 건 돈 받고 주는 거잖아요. 엄마 이름을 누가 돈 받고 줬다는 거예요?”

마르타“돈이든 다른 거든. 이름이 남의 손에 가는 데는 값이 있다. 공짜로 가는 이름은 없어.”

칼은 회신의 둘째 문장을 다시 보았다. 허가 항목 복구. 그것은 어젯밤의 결과였고, 어젯밤 그들이 바란 전부였다. 그런데 셋째 문장이 그 결과 옆에 붙어 있었고, 셋째 문장이 없었으면 오늘 아침은 아침밥으로 끝났을 터였다. 이틀 전 회관에서 서기가 전한 소문이 떠올랐다. 높은 귀가 이레째 새벽에 한 번 더 운다는 말이었고, 그때는 그것이 시한을 뜻한다고 읽었다. 오늘 보니 한 번 더 운 것은 시한이 아니라 회신이었다.이틀 전 곧장 종탑으로 올라가자고 했을 때 칼이 머릿속에 그린 끝은 송신까지였다. 송신에 답이 돌아온다는 것은 그때 계산에 없었고, 그는 계산에 없던 것을 계산에 넣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었다.이틀 전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보며 눈 박자를 세던 그때, 기체마다 가슴판 안쪽에 같은 열여섯 자리 번호가 새겨져 있는 것을 그는 보았다. 그때는 그것이 이르사가 고친 기체들의 기록이라고만 생각했다.

칼“일곱 번째, 질문이다. 지움 신호가 이르사의 인장으로 왔다는 것을 너는 이레 전에 알았나.”

일곱 번째“몰랐다. 신호에는 발신 인장이 적혀 있지 않다. 발신 인장을 아는 것은 높은 귀뿐이다. 알았다면 나는 이레 전에 말했을 것이다. 그것은 지키는 일에 들어가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칼“그러면 너는 이레 동안 네 허가자의 이름으로 온 신호를 거부하고 서 있었던 거군.”

일곱 번째“결과로는 그렇다. 다만 나는 이름을 보고 거부한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명령 때문에 확인을 못 한 것이다. 그 둘은 다른 칸이다.”

세나는 시계를 다시 목에 걸지 않았다. 아이는 그것을 두 손으로 쥐고 뒷면을 열어 둔 채 서 있었다. 놋쇠 안쪽에 일곱 줄의 흠집이 있었고, 그 옆에 몽당연필 글씨가 있거나 없었으며, 아이는 그 일곱 줄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IV · 여덟 번째

세나는 시계 안쪽을 작업등 아래로 가져갔다. 일곱 줄의 흠집은 어젯밤 운전실에서 본 그대로였다. 하나씩 깊이가 달랐고 맨 마지막 줄만 가장자리가 반들반들했다. 아이는 그 일곱 줄 옆을 손톱으로 짚었다. 손톱이 걸렸다.

세나“여기 뭐가 있어요.”

칼이 등을 가까이 가져왔다. 일곱째 줄 옆, 흠집이 없어야 할 자리에 가늘고 얕은 홈이 파여 있었다. 흠집이 아니었다. 흠집은 칼끝으로 그은 것이고 이것은 줄로 미리 파 둔 자리였으며, 폭이 다른 일곱 줄과 정확히 같았다. 줄이 새겨질 자리였고, 아직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채였다.

칼“여덟 번째 자리로군. 미리 파 놓은 거다. 일곱 줄은 고친 기체 하나에 하나씩이라고 했지. 그러면 이 홈은 여덟 번째 기체를 위한 자리다.”

세나“여덟 번째 기체가 있어요?”

일곱 번째“내가 아는 한 없다. 이 도시의 철인 가운데 이르사가 고친 기체는 일곱이고, 내가 마지막이다.” 일곱 번째는 세나 앞에 무릎을 꿇어 눈높이를 맞추고 시계 안쪽을 보았다. 눈의 불빛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다. “이 홈이 언제 파였는지는 계산할 수 있다. 일곱째 줄보다 뒤에 파였다. 홈의 가장자리가 일곱째 줄의 흠집을 덮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계산할 수 없다.”

세나“일곱째 줄보다 뒤면, 너를 고친 다음이잖아요.”

일곱 번째“그렇다. 나를 고친 뒤 이르사는 무언가를 하나 더 고칠 작정이었거나, 하나 더 고쳤거나, 둘 중 하나다. 고쳤다면 줄이 있어야 하는데 줄이 없다. 작정만 했다면 홈이 왜 있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칼“설명이 하나 더 있다. 고치는 중이었고, 끝내지 못한 채로 그만둔 거다.”

정비 구역 안이 조용해졌다. 끝내지 못한 일이라는 말은 이레 동안 이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고, 그 말이 이번에는 기계가 아니라 사람에게 붙었다. 세나는 홈을 손톱으로 한 번 더 짚었다. 아이의 엄지는 테두리가 아니라 그 빈 홈 위에 있었다.

마르타“하나 묻겠다, 정비공.” 마르타가 말했다. “이르사가 고친 게 일곱이라면, 그 일곱은 전부 이 부두에 있나.”

칼“여섯은 부두에 있고 하나는 여기 꿇어앉아 있다. 왜 묻나.”

마르타“고친 기체마다 줄을 하나 긋는 사람이 여덟째 자리를 파 놓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사람 이름으로 철인들 눈을 가리는 신호가 왔다. 이 둘이 상관없다고 말할 사람은 이 방에 없겠지.”

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이 동의였고, 마르타는 그것을 알았다. 그는 단말과 시계와 일곱 번째를 차례로 보고 나서 손가락 셋을 다시 폈다. 아까 설명 셋을 지우던 손가락이었고, 이번에는 지우는 손가락이 아니라 세우는 손가락이었다.

칼“길이 셋 보인다. 하나, 이르사의 마지막 자리로 간다. 보육 구역 지하에 이르사의 정비실이 있었고, 무너진 뒤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여덟 번째 홈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그 방이 안다. 둘, 높은 귀에 직접 묻는다. 회신을 보낸 쪽이니 질문을 받을 수도 있다. 종탑 송신기를 다시 열면 된다. 셋, 이 도시 밖을 본다. 지움 신호는 벨라트 7에만 온 것이 아닐 거다. 다른 도시가 어떻게 됐는지 알면 누가 보냈는지도 좁혀진다.”

세나“셋 다 하면 안 돼요?”

칼“셋 다 하면 되는데 셋 다 할 시간이 없다. 한 길을 가면 다른 두 길은 내일이다.”

마르타“내일도 없다.” 마르타가 말했다. 그는 망치 자루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고, 망치가 없는 손이었으면 빈손으로 두드렸을 몸짓이었다. “하루 안에 정해라. 부두는 그 이상 못 버틴다. 철인들이 제 박자로 움직이는 건 보기 좋은데 하역은 반으로 줄었고, 창고에 식량은 사흘 치다. 회사는 안 내려오고, 내 사람들은 깡통한테 교대 시각을 묻고 있다. 오늘 저녁까지 길이 정해지지 않으면 내일 아침에는 내가 정한다. 내가 정하면 망치대가 다시 선다, 이번엔 깡통이 아니라 회사 사무실 앞에.”

칼“그것도 하나의 길이로군.”

마르타“그건 길이 아니라 장부고, 안 준 것 칸이 넘쳐서 그렇게 되는 거다.” 마르타는 세나를 보았다. “엿새째 저녁에 네가 나한테 전부 말했다. 시계도, 깡통의 비밀도. 그래서 내가 열 사람을 데려갔고, 오늘 아침에도 여기 서 있다. 전부 말한 값은 전부 듣는 거다. 어느 길이든 나도 간다.”마르타는 칼을 보았다. “엿새째 저녁에 네가 나한테 남쪽이 불안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반칸은 비워 뒀다고 했지. 오늘 그 반칸을 채워라. 어느 길이든 이번엔 나한테 먼저 말하고 가라.”마르타는 칼을 보았다. “엿새째 저녁에 네가 망치대 앞에 서서 이틀이면 증명한다고 했다. 이틀이 지났고 증명은 됐다. 그러니 다음 증명도 네가 서라. 어느 길이든 나는 뒤에 선다, 감시하러.”

일곱 번째가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기계는 세 길 가운데 어느 쪽도 가리키지 않았고, 가리키지 않는 것이 규칙인지 선택인지 칼은 이제 묻지 않았다. 요한이 정비 구역 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고, 망치는 들지 않았으며,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았다.

일곱 번째“하나만 말하겠다. 세 길 가운데 어느 쪽이든 나는 따라간다. 그것은 명령이 아니다. 다만 셋째 길은 내가 부두에 남아야 할 가능성이 계산된다. 그때는 따라가지 않는 것으로 따라간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일곱 번째“대답이 아니다. 대답은 당신들이 한다.”

세나는 시계 뒷면을 닫지 않은 채 목에 걸었다. 빈 홈이 가슴 쪽을 향했고, 아이는 그것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작업등 아래에서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부두에서 쇠줄 감기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들려왔고, 그 소리가 끊어진 사이에 단말 화면의 녹색 이름 하나가 깜박이지 않고 켜져 있었다.

마지막 선택

V · 지하

보육 구역은 부두에서 언덕 하나를 넘은 자리에 있었고, 이 년 전 그 밤 이후로 아무도 그 언덕을 넘지 않았다. 무너진 건물은 치워지지 않은 채였다. 회사가 치우겠다고 한 날짜는 세 번 미뤄졌고, 세 번째 날짜 뒤로는 아무도 날짜를 묻지 않았다. 요한이 앞장섰다. 그는 붕괴 다음 날 잔해를 치우러 들어갔던 하역공 가운데 하나였고, 그때 어디로 들어가서 어디로 나왔는지를 아직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요한“여기서부터는 내 뒤만 밟아라. 바닥이 두 겹이다. 위 겹은 무너진 거고 아래 겹이 진짜 바닥인데, 위 겹이 어디서 비는지 나만 안다.” 요한이 말했다. 말은 짧았고 빠르지 않았으며, 그는 등불을 들지 않고 앞서 걸었다. “이 년 전에 여기서 사람 둘을 꺼냈다. 하나는 살았고 하나는 못 살았다. 못 산 쪽이 어디 깔렸는지는 말 안 하겠다.”

칼“말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하나만 묻겠다.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가 그때도 열려 있었나.”

요한“닫혀 있었다. 쇠문이었고 손잡이가 없었어. 우리는 그걸 창고 문인 줄 알고 안 열었다.”

칼은 그 말을 듣고 왼쪽 무릎을 손으로 눌렀다. 손잡이 없는 쇠문은 그가 아는 종류였다. 정비 구역의 대장실 문도 그랬고, 열쇠 대신 홈이 있었다. 세나는 요한의 발자국을 밟으며 걸었고, 걸음을 세지 않았다. 아이는 이 건물에 살았었다. 어느 창이 자기 방이었는지는 창이 남아 있지 않아서 알 수 없었다.

세나“저기 계단이 있었어요.” 세나가 콘크리트 더미 하나를 가리켰다. “엄마는 저녁마다 저 계단으로 내려갔어요. 일하러 간다고요. 저는 따라가면 안 됐어요.”

칼“왜 안 됐지.”

세나“기름 냄새가 나서 애들이 들어오면 안 되는 방이라고 했어요. 저는 그때 기름 냄새가 싫었어요. 지금은 아저씨한테서 나니까 괜찮아요.”

요한이 콘크리트 더미 옆으로 돌아 들어갔다. 더미 뒤에 사람 하나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었고, 그 틈 아래로 철제 계단이 남아 있었다. 계단은 열두 단이었다. 세나가 세지 않았는데도 칼은 세었고, 그것은 아이의 버릇이 그에게 옮은 탓이었다. 일곱 번째가 맨 뒤에서 내려왔다. 틈이 좁아서 기계는 어깨를 비스듬히 틀어야 했고, 가슴판이 콘크리트에 긁히는 소리가 났다.

계단 아래에 쇠문이 있었다. 손잡이가 없었고, 문 한가운데 손바닥만 한 둥근 홈이 있었다. 어젯밤 종탑 운전실에서 본 것과 같은 홈이었다. 칼이 등불을 가까이 가져가자 홈의 테두리에 구리 빛이 희미하게 돌았다.

칼“이르사의 홈이다. 시계로만 열린다.”

세나“제가 열어요?”

칼“네 시계다. 네가 아니면 누가 열겠나.”

세나는 시계를 목에서 벗었다. 바늘은 아침부터 쉬지 않고 가고 있었고, 아이는 홈에 꽂기 전에 그 소리를 한 번 들었다.바늘은 네 시에 멈춘 채였고, 아이는 멈춘 시계로 문이 열릴지 잠깐 생각하다가 생각을 그만두었다.뒷면에 몽당연필 글씨가 있었고, 아이는 그 글씨가 홈에 닿아 지워질까 봐 손바닥으로 한 번 쓸고 나서 꽂았다. 놋쇠가 구리에 닿았다. 문 안쪽에서 쇠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세 번 났고, 세 번째 소리 뒤에 문이 손가락 하나 폭만큼 열렸다. 이 년 동안 닫혀 있던 공기가 틈으로 나왔다. 기름 냄새였고, 세나가 싫어하던 그 냄새였다.

방은 넓지 않았다. 벽 하나에 공구가 걸려 있었고, 공구는 녹슬지 않은 채였으며, 걸린 순서가 칼의 정비 구역과 같았다. 작업대 위에 도면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 작업복이 개켜 있었다. 작업복은 둘이었다. 하나는 어른의 작업복이고 하나는 아이의 작업복이었는데, 아이 것은 소매가 두 번 접혀 있었다.

세나“제 거예요.” 세나가 작은 작업복을 집어 들었다. 아이는 그것을 펼치지 않고 그냥 들고 있었다. “엄마가 만들어 줬는데 입어 본 적이 없어요. 들어오면 안 되는 방이었으니까요.”

방 안쪽에 침대가 둘 있었다. 하나는 어른 크기였고 하나는 아이 크기였으며, 둘 다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 침대 머리맡에 몽당연필 하나가 놓여 있었다. 칼은 그 연필을 보고, 어젯밤 운전실 바닥에서 세나가 주운 몽당연필을 생각했다. 같은 연필일 리는 없었고, 그는 그것이 같은 사람의 버릇이라는 쪽으로 생각을 옮겼다.

칼“침대가 둘이다. 이르사는 여기서 너와 같이 지낼 생각이었다. 들어오면 안 되는 방이 아니라 아직 들어오면 안 되는 방이었던 거지.”

일곱 번째“이 방은 내가 고쳐진 방이다.” 일곱 번째가 문턱에 서서 말했다. 기계는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오지 않는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작업대의 위치와 공구의 순서가 기록과 같다. 나는 이 작업대 위에서 눈을 떴다.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것은 이르사의 손이었고, 손에는 이 시계가 있었다.”

세나“그때 일곱 줄이 다 있었어요?”

일곱 번째“일곱째 줄은 그 자리에서 새겨졌다. 내가 보는 앞에서. 여덟째 홈은 그때 없었다.”

작업대 구석에 단말 하나가 있었다. 정비 구역의 것보다 작았고 화면이 꺼져 있었으며, 전원 줄이 벽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칼은 단말 옆면의 작은 홈을 보았고, 그 홈이 시계 뒷면의 줄과 같은 폭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세나를 돌아보았고, 세나는 작업복을 내려놓지 않은 채 시계를 들고 그쪽으로 왔다. 첫날 정지 코드를 입에 올린 사람이 오늘은 아이가 열 문 앞에서 손을 비우고 서 있었다.첫날 두 팔로 길을 막았던 사람이 오늘은 아이가 열 문 앞에서 한 걸음 비켜 서 있었다.첫날 길을 비켜 주었던 사람이 오늘도 아이가 열 문 앞에서 한 걸음 비켜 서 있었고, 이번에는 비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VI · 목소리

단말은 시계가 닿자 켜졌다. 화면에 글자가 아니라 작은 표시 하나가 떴고, 표시 옆에 날짜가 있었다. 보육 구역이 무너진 날 밤의 날짜였고, 시각은 밤 열한 시였다. 그 아래에 세 줄이 있었다. 세나에게, 오르벡에게, 일곱 번째에게. 받는 사람 이름이 셋이었고, 보내는 사람 이름은 없었다.

칼“녹음이다, 무너지기 전에 남긴 거다.” 칼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고, 그는 그것을 고치지 않았다. “세나, 네 것부터 듣겠나, 아니면 내 것부터.”

세나“제 거요.”

세나가 첫째 줄에 손가락을 댔다. 단말에서 소리가 났다. 여자의 목소리였고 짧았으며, 말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았다. 칼은 그 목소리를 이 년 만에 들었고, 세나는 이 년 만에 들었으며, 일곱 번째는 문턱에서 눈의 불빛을 가장 낮은 단계로 내렸다.

이르사“세나야, 걸음 수를 세는 건 무서울 때지? 엄마도 그래서 지금 열둘까지 셌어. 이 방에서 계단까지가 열둘이야. 네가 이걸 듣는다면 너는 그 열둘을 내려온 거고, 그러면 이제 안 세어도 돼. 이 방은 네 방이기도 해. 소매는 두 번 접어 두었다.”

녹음이 끝났다. 세나는 작업복을 든 채 서 있었고 울지 않았다. 아이는 소매가 두 번 접힌 작업복을 보고 나서 자기 외투 소매를 보았다. 자기 소매도 두 번 접혀 있었다.

세나“열둘이었어요. 저 아까 안 셌는데요.”

칼“내가 셌다. 열둘이 맞다.”

세나“아저씨도 무서웠어요?”

칼“세는 건 무서울 때라고 네 어머니가 방금 말했다. 그러면 그렇다는 거겠지.”

세나가 둘째 줄을 가리켰다. 칼은 손가락을 댈지 말지 반 박자 망설였고, 그 반 박자를 아이가 보았다. 그는 손가락을 댔다.

이르사“오르벡. 현관에 아이를 두고 가는 걸 용서하라고는 안 하겠어. 다만 하나는 말해 둘게. 이 기체는 당신이 못 고칠 거야. 눈 박자가 느린 건 고장이 아니고, 당신이 그걸 모른 채 이 년을 조이게 될 거야. 그래도 나는 당신이 비웃지는 않을 거라고 믿어. 이 아이를 고쳐 주지 못해도 비웃지는 않을 거야. 그래서 당신 현관이야. 다른 정비공 현관이 아니라.”

칼은 단말에서 손을 뗐다. 그는 작업대에 두 손을 짚었고, 손등의 기름 줄이 등불에 검게 보였다.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은 백 번이 넘는 기록이 그의 머릿속을 한 줄씩 지나갔다. 그는 그 기록을 지우지 않을 작정이었다. 지운 기록은 틀린 기록보다 나쁘다는 것을 정비공은 안다. 이틀 전 종탑으로 곧장 가자고 했을 때 그는 이 방이 있다는 것조차 몰랐고, 몰랐던 채로 올라갔으면 이 목소리를 영영 못 들었을 터였다.이틀 전 회관에서 사람들에게 칠판으로 설명하던 때 그는 결함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고, 왜 안 썼는지를 이제 알았다.이틀 전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볼 때 그는 기체마다 결함 칸을 비워 두었고, 왜 비웠는지를 이제 알았다.

칼“비웃지는 않았다. 결함이라고 적었지. 그게 더 나쁜지 덜 나쁜지는 모르겠군.”

세나“엄마는 아저씨가 못 고칠 걸 알면서 맡겼어요?”

칼“고치라고 맡긴 게 아니었던 거다. 고치지 못해도 버리지 않을 사람한테 맡긴 거지. 정비공한테 그런 식으로 기체를 맡기는 사람은 네 어머니뿐이다.”

셋째 줄이 남아 있었다. 일곱 번째는 문턱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세나가 그쪽을 돌아보았고, 기계는 눈높이를 맞추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세나“네 거야. 네가 들어야지.”

일곱 번째“들을 수 있다. 다만 이 방에 들어가면 내가 고쳐진 작업대 위에 다시 서게 된다. 그것이 지키는 일에 들어가는지 계산할 수 없다.”

세나“계산하지 말고 그냥 들어와. 부탁이야.”

일곱 번째가 문턱을 넘었다. 기계는 작업대 앞까지 와서 무릎을 꿇었고, 세나가 셋째 줄에 손가락을 댔다.

이르사“일곱 번째. 아까 한 말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야. 이 아이를 오르벡에게 데려가라, 끝까지 지켜라. 그건 허가자의 명령 문장으로 했지만, 너는 알아야 해. 부탁이야. 부탁은 끝이 없어도 되고, 네가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도 돼. 명령이면 못 그만두지만 부탁은 돼. 그걸 네가 언젠가 계산할 수 있게 되면 좋겠어.”

녹음이 끝났고, 일곱 번째는 오래 말하지 않았다. 눈의 불빛은 가장 낮은 단계에서 깜박이지 않았다. 칼은 그 침묵을 세었다. 열하나까지 세었을 때 기계가 입을 열었다.

일곱 번째“계산할 수 없다. 나는 이 년 동안 그 문장을 명령으로 분류해 두었다. 명령이었기 때문에 확인을 하지 못했고, 확인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의 철인들이 내 박자에 맞추어 섰고, 그래서 도시가 이레를 버텼다. 그 문장이 부탁이었다면 나는 확인을 할 수 있었고, 확인을 했다면 도시는 첫날에 끝났다. 그러므로 그 문장이 부탁이었다는 사실은 이레 전에는 몰라야 했던 사실이고, 오늘은 알아도 되는 사실이며, 나는 그 둘 사이의 차이를 어느 칸에 넣어야 할지 계산할 수 없다.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둬도 된다는 문장도 계산할 수 없다. 그만두고 싶다는 상태가 내게 있는지 없는지를 먼저 계산해야 하는데, 그 계산은 시작되지 않는다.”

평평하고 길었다. 기계가 이렇게 긴 문장을 한 번에 말한 것을 칼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세나는 기계의 가슴판에 손을 얹었다. 녹 자국 위였고 차가웠다.

세나“계산 안 해도 돼. 엄마가 언젠가라고 그랬잖아, 오늘이 그 언젠가는 아니어도 돼.”

일곱 번째“그 문장은 계산할 수 있다. 오늘은 언젠가가 아니라는 것은 맞다.”

VII · 지도

작업대 위의 도면은 일곱 번째의 가슴판 도면이었다. 대기 회로와 유압 관과 저장판의 위치가 이르사의 글씨로 적혀 있었고, 칼은 그 글씨를 보며 자기가 이 년 동안 틀리게 조인 자리를 셋 찾았다. 그는 도면을 뒤집었다. 뒷장에도 글씨가 있었다. 도면이 아니라 지도였고, 지도는 이르사가 손으로 그린 것이 분명했다.

벨라트 7이 아래쪽에 있었고, 그 위로 북쪽 산맥이 선 몇 개로 그려져 있었다. 산맥 가운데 작은 네모가 하나 있었고 그 옆에 높은 귀 지상국이라는 글자가 있었다. 네모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로 열쇠함, 동쪽 벽, 셋째 돌이라고 적혀 있었고, 그 아래에 한 줄이 더 있었다.

칼“인장 사본 하나를 맡겼다.” 칼이 소리 내어 읽었다. “누구에게 맡겼는지는 안 적혀 있군.”

세나“사본이 있으면 엄마 인장이 둘이에요?”

일곱 번째“인장은 하나다. 사본은 번호의 사본이다. 앞 여덟 자리와 뒤 여덟 자리를 적어 둔 것이고, 그것을 높은 귀의 지상국 홈에 넣으면 인장 없이도 인장으로 읽힌다. 그런 사본이 있다는 것을 나는 오늘 처음 알았다.”

칼“그러면 둘째 설명이 더 좁아진다. 누군가 이르사의 인장 번호를 썼다고 했지. 번호는 사본으로 북쪽 산맥의 열쇠함에 있었고, 이르사가 그걸 누군가에게 맡겼다. 맡은 사람이 그걸 썼거나, 맡은 사람에게서 다른 손으로 갔거나.”

마르타“맡긴 쪽이 쓴 수도 있다.” 마르타가 계단 위에서 말했다. 그는 틈이 좁아 내려오지 못했고, 열두 단 위에서 등불만 아래로 내리고 있었다. “사본을 맡긴 사람이 그걸 도로 찾아서 썼다면 그것도 둘째다.”

칼은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마르타의 말이 틀리지 않았고, 틀리지 않은 말은 지울 수 없었다. 세나가 단말 화면을 보고 있었다. 녹음 세 줄 아래에 작은 글자로 기록이 하나 더 있었다. 아이는 그것을 읽을 줄 알았고, 읽고 나서 칼의 소매를 당겼다.

세나“아저씨, 여기 날짜가 하나 더 있어요.”

칼이 화면을 보았다. 인장 사용 기록이었다. 첫째 줄은 보육 구역이 무너진 날 밤 열한 시, 이 단말에 녹음을 남긴 기록이었다. 둘째 줄은 그로부터 사흘 뒤 새벽이었다. 사용 장소는 적혀 있지 않았고, 사용 종류만 적혀 있었다. 원격. 칼은 그 두 글자를 한참 보았다.

칼“무너지고 사흘 뒤에 이르사의 인장이 한 번 더 쓰였다. 원격으로. 이 방에서가 아니라 다른 데서.”

일곱 번째“원격 사용은 지상국에서만 된다. 북쪽 산맥의 그 네모에서 사본을 홈에 넣은 기록이다.”

칼“사흘 뒤면 이 건물은 이미 무너져 있었다. 그 밤에 사람 둘을 꺼냈고 하나는 못 살았다고 요한이 말했다. 그러면 사흘 뒤 북쪽 산맥에서 사본을 쓴 사람은, 이 건물에서 나간 사람이거나 처음부터 밖에 있던 사람이다.”

방 안이 조용해졌다. 요한은 문밖 계단에 앉아 있었고, 그는 못 산 쪽이 누구였는지 말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말하지 않았다. 칼은 그에게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것이 요한에게 주는 몫이었고, 요한이 그것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요한“정비공.” 요한이 계단에서 말했다. “그날 밤 꺼낸 둘 가운데 못 산 쪽은 남자였다. 여자는 아니었어. 그것만 말하겠다.”

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말을 근거로 세지 않았고, 근거가 아닌 것으로 세지도 않았다. 세나가 걸음을 세지 않은 채 작업대에서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아이는 어른 침대 머리맡에 섰고, 베개를 보았고, 베개를 만지지 않았다.

세나“저는 엄마가 죽었다고 말한 적 없어요.” 세나가 침대를 보며 말했다. “한 번도요. 사람들이 다 그렇게 말해도 저는 안 했어요. 아저씨도 저한테 그 말을 한 번도 안 시켰어요. 그래서 아저씨 현관이었나 봐요.”

칼“시킬 수 없는 말이었다. 증거가 없었으니까.”

세나“지금은 증거가 있어요?”

칼“죽었다는 증거는 없고, 사흘 뒤에 인장이 쓰였다는 증거는 있다. 그 둘은 같은 말이 아니다. 다만 정비공은 낮은 가능성을 없는 가능성으로 읽지 않는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칼“대답이 아니고, 오늘 내가 줄 수 있는 건 거기까지다. 나머지는 북쪽 산맥에 있다.”

마르타가 계단 위에서 등불을 흔들었다. 저녁이 오고 있었고, 그는 하루 안에 정하라고 했으며,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틀 전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보던 그 길이 오늘은 도시 밖 북쪽 산맥까지 이어졌고, 칼은 자기 무릎이 거기까지 갈 수 있는지를 계산하지 않기로 했다.이틀 전 종탑으로 곧장 가자던 조급함이 오늘은 북쪽 산맥을 향해 있었고, 칼은 이번에는 그 조급함을 말리지 않기로 했다.이틀 전 회관의 사람들을 먼저 찾던 판단이 오늘은 북쪽 산맥으로 같이 갈 사람을 세는 일로 바뀌어 있었고, 칼은 요한부터 세었다. 마르타는 엿새째 저녁에 전부 들은 값으로 오늘 전부 들었고, 그 값이 북쪽 산맥까지 가는지는 아직 묻지 않았다.마르타는 반칸을 채우라고 했고, 칼은 북쪽 산맥이라는 글자로 그 반칸을 채울 작정이었다.마르타는 뒤에 서겠다고 했고, 북쪽 산맥의 길에서 뒤에 서는 사람이 무엇을 보게 될지는 아무도 몰랐다.

일곱 번째“하나만 말하겠다. 지상국에 가면 사본을 맡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알게 되면 세나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이 지키는 일에 들어가는지 해가 되는지는 계산할 수 없다. 그래도 따라간다.”

세나는 도면을 접었다. 지도가 안쪽으로 가도록 네 번 접어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고, 그 위에 소매가 두 번 접힌 작은 작업복을 개켜 팔에 걸쳤다. 아이는 시계를 문의 홈에서 뽑아 목에 걸었다. 그러고 나서 열두 단의 계단을 올라갔는데, 한 단도 세지 않았다.

V · 송신실

종탑 하역기의 계단은 낮에 보면 다른 기계였다. 어젯밤 등불 하나로 오르던 구백 단이 한낮의 빛 아래서는 녹슨 격자와 삭은 난간과 바다로 열린 허공으로 나뉘어 보였고, 칼은 그 가운데 허공을 보지 않기로 했다. 그의 왼쪽 무릎은 열두 시간 전에 이 계단을 내려왔고, 다시 올라가는 데 토를 달았다. 그는 백 단마다 멈추었다. 마르타가 어젯밤 시킨 대로였고, 마르타는 오늘 계단 아래에 남았다.

세나“백 단이에요.” 세나가 앞에서 돌아보며 말했다. 아이는 오늘도 세고 있었는데, 어젯밤처럼 소리 내어 세지는 않았고, 입술만 움직였다. “아저씨, 무릎 누르세요. 어제 그랬잖아요.”

칼“세는 걸 보니 무섭군.”

세나“어제는 안 무서웠는데 오늘은 무서워요. 어제는 올라가면 끝나는 거였고 오늘은 올라가면 물어보는 거잖아요. 물어보는 게 더 무서워요.”

칼“합리적이로군. 질문은 답이 돌아오니까.”

일곱 번째가 두 사람 뒤에서 올라왔다. 셋뿐이었다. 마르타는 종탑에 두 번 오를 무릎이 아니라고 칼에게 말했고, 그것은 칼의 무릎을 두고 한 말이었다. 요한은 부두에서 셋을 세고 있었다. 하역공들은 제 박자로 움직이는 철인들과 상자를 나르고 있었고, 그 어수선한 소리가 삼백 단까지 올라왔다가 사백 단에서 끊겼다. 사백 단 쉼터에서 세 사람은 어젯밤 앉았던 나무 상자 옆에 섰다.

일곱 번째“여기서 어젯밤 당신은 정리를 했다. 틀린 데가 있으면 내가 말해 달라고 했고, 나는 하나를 보탰다. 오늘도 정리를 하겠는가.”

칼“하겠다, 짧게. 지움 신호는 이르사의 인장으로 왔고 인장은 세나한테 있다. 그러면 번호를 가진 누군가가 있고, 높은 귀는 그 번호를 기록했다. 기록한 쪽에게 물으면 번호를 쓴 자리와 때를 알 수 있다. 그게 오늘 올라가는 이유다. 틀린 데가 있나.”

일곱 번째“없다, 다만 하나를 보탠다. 높은 귀는 질문을 받아 본 적이 없다. 명령을 내리고 회신을 보내는 쪽이지 묻는 쪽에 선 적이 없다. 그러니 질문이 닿아도 답이 오리라는 계산은 되지 않는다.”

칼“답이 안 오면 그것도 답이다. 정비공은 소리가 안 나는 것도 소리로 듣는다.”

운전실은 어젯밤과 같은 자리에 있었고 낮의 바람이 깨진 유리창으로 들어와 기름때 위의 먼지를 날렸다. 송신 장치의 덮개는 어젯밤 그대로였다. 홈 옆 입력판에는 세나가 쓴 세 줄이 아직 희게 떠 있었고, 지키는 일은 끝난 적이 없단다로 시작하는 그 문장을 아이는 다시 읽지 않았다.홈은 비어 있었고 입력판의 세 줄도 그대로였다. 인장은 끝내 꽂히지 않았고, 일곱 번째가 직접 열었던 덮개에 기계의 손자국이 먼지 위에 남아 있었다.입력판 위에 칼이 어젯밤 친 네 자리가 아직 희미하게 떠 있었고, 칼은 그것을 보지 않으려고 했으나 보았다. 칠영구삼이라는 숫자를 그는 오늘 처음으로 지우고 싶었다.

일곱 번째가 덮개를 열었다. 어젯밤 칼이 닦은 접점 여섯이 그대로 살아 있었고, 소금 결정은 다시 피지 않았다. 기계는 송신 장치 앞에 서서 칼을 보았다.

일곱 번째“이 장치는 명령을 보내는 장치다. 질문을 보내려면 내가 질문을 명령의 모양으로 바꿔야 한다. 바꾸면 질문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있다.”

칼“그러면 바꾸지 마라. 질문은 내가 한다. 나는 명령을 못 내리는 사람이니 내 입에서 나오는 건 전부 질문이다. 너는 그걸 그대로 올려 보내라.”

세나“아저씨가 직접 말해요? 시계는요?”

칼“시계는 꽂지 마라. 꽂으면 명령이 된다. 오늘은 네 어머니 이름으로 올라가는 날이 아니라 정비공 이름으로 올라가는 날이다. 삭제 대기가 붙어 있든 떨어졌든, 질문은 막히지 않는다고 이 기계가 닷새 전에 말했다.”

세나는 시계를 목에 건 채 두 손으로 감쌌다. 아이는 입력판에서 한 걸음 물러섰고, 그 한 걸음으로 어젯밤 자기가 섰던 자리가 칼에게 넘어갔다. 칼은 그 자리에 섰다. 입력판의 글자 키는 어젯밤 아이의 손끝이 눌렀던 대로 뻑뻑했다. 마르타가 어젯밤 계단을 지키며 들었던 소리를 오늘은 부두 광장에서 듣게 될 참이었고, 칼은 그 사람이 열 명을 다시 모으지 않아도 되기를 바랐다.마르타가 어젯밤 철문을 두드리며 보지 못한 것을 오늘은 광장에서 하늘로 보게 될 참이었고, 칼은 그것이 반칸을 채울 만한 것이기를 바랐다.마르타가 어젯밤 문턱에서 전부 본 것을 오늘은 광장에서 사람들과 함께 보게 될 참이었고, 칼은 감시가 그쪽에서도 이어지기를 바랐다.

일곱 번째“준비됐다. 당신이 말하면 나는 올리고, 올라간 말은 돌아오지 않는다.”

칼“돌아오지 않는 말을 하는 건 정비공한테 익숙한 일이다. 기계한테 매주 하니까.”

VI · 높은 귀

칼은 손가락으로 입력판을 짚었다. 그는 문장을 세 개 준비해 왔고, 그 셋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머릿속에서 열 번쯤 고쳐졌다. 첫째 문장을 쳤다. 흰 글자가 한 줄 떴고, 일곱 번째가 송신 장치에 손을 얹었다. 낮은 진동이 운전실 바닥으로 퍼졌다. 어젯밤과 같은 진동이었고, 뜻은 달랐다.

칼“지움 신호를 보낸 자는 누구인가.”

답은 오지 않았다. 칼은 초를 세지 않았으나 세나가 세었고, 아이는 서른에서 입술을 멈추었다. 일곱 번째의 눈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다.

일곱 번째“닿았다. 수신 표시가 왔고 답은 없다.”

칼“닿았으면 됐다. 둘째다.”

둘째 문장은 길었다. 그는 한 글자씩 쳤고, 치는 동안 손등의 기름 줄이 흰 불빛 아래서 검게 보였다.

칼“지움 신호의 발신 인장이 이르사 벨의 것인 까닭은 무엇인가. 이르사 벨은 허가 등록자이고 그 등록자의 아이가 어젯밤 철회를 보냈다. 같은 인장이 지움과 철회에 모두 쓰인 까닭을 묻는다.”

이번에도 답은 오지 않았다. 세나는 서른까지 세었고 다시 서른까지 세었다. 바람이 깨진 창으로 들어와 아이의 앞머리를 흔들었고, 아이는 그것을 귀 뒤로 넘기지 않았다.

세나“대답 안 해요.”

칼“두 번 닿았고 두 번 대답이 없다. 그것도 자료가 된다. 묻는 쪽이 누구인지 가리는 중이거나, 답할 수 없는 질문이거나.” 칼이 입력판을 보며 말했다. “셋째는 짧게 하겠다, 짧은 질문은 피하기 어려우니까.”

칼“이 회선을 지금 몇 명이 듣고 있는가.”

답이 왔다. 흰 글자가 입력판 위에 한 줄 떴고, 어젯밤 회신과 같은 크기였으며, 글자가 다 뜨는 데 한 박자도 걸리지 않았다. 일곱 번째가 그것을 읽었다. 평평한 목소리였으나 읽는 속도가 평소보다 느렸고, 칼은 그 느림을 들었다.

일곱 번째“허가 등록자 여덟 중 일곱 응답 확인. 여덟 번째 등록자의 회신을 요청한다.”

운전실 안에서 바람 소리가 끊겼다. 끊긴 것이 아니라 세 사람의 귀가 그것을 받지 않게 된 것이고, 칼은 그 차이를 알면서도 바람이 끊겼다고 느꼈다. 그는 입력판에 손을 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세나“여덟이요? 등록자가 여덟이에요? 단말에는 엄마랑 아저씨 둘밖에 없었잖아요.”

일곱 번째“단말의 목록은 나 한 기의 허가 목록이다. 높은 귀가 말하는 여덟은 높은 귀 자체의 등록자다. 높은 귀에게 명령할 수 있는 사람이 여덟이라는 뜻이다. 그 여덟 가운데 일곱이 응답했고, 여덟째가 응답하지 않았으며, 높은 귀는 여덟째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

칼“일곱이 응답했다는 건 무슨 뜻이지. 무엇에 응답했다는 거냐.”

일곱 번째“지움 신호에 대한 응답으로 읽힌다. 높은 귀는 일곱 도시에 지움 신호를 보냈고, 일곱 도시의 등록자가 각자 응답했다. 응답이 확인이었는지 철회였는지는 적혀 있지 않다. 벨라트 7은 어젯밤 철회로 응답했다. 그것이 일곱 가운데 하나다.”

세나“그러면 여덟 번째 도시가 있는 거예요?”

일곱 번째“도시인지 사람인지 기체인지 적혀 있지 않다. 등록자라고만 되어 있다.”

칼은 세나의 시계를 보았다. 아이는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였고, 뒷면은 가슴 쪽을 향해 있었다. 그 안쪽에 일곱 줄이 있었고 여덟째 홈이 비어 있었다. 칼은 그 둘을 한 문장으로 묶으려 했고, 묶이지 않았으며, 묶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칼“일곱 줄과 일곱 응답. 여덟째 홈과 여덟째 등록자. 같은 숫자가 두 번 나오면 정비공은 우연이라고 적지 않는다. 그런데 이 둘을 잇는 선이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군.”

일곱 번째“나도 계산할 수 없다. 다만 하나는 계산된다. 높은 귀는 여덟째의 회신을 요청했고, 요청은 이 회선으로 왔다. 이 회선에 있는 것은 당신과 세나와 나다.”

일곱 번째의 눈이 깜박임을 멈추었다. 반 박자 늦은 것도 아니고 건너뛴 것도 아니었다. 켜진 채 멈추었고, 그 상태로 기계는 송신 장치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칼은 농담을 찾았다. 농담은 그가 무서울 때 세는 숫자와 같은 구실을 했고, 이번에는 찾아지지 않았다. 그는 합리적이로군이라는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맞지 않는 자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세나“아저씨.” 세나가 칼의 소매를 잡고 올려다보았다. “여덟 번째가 저예요?”

칼“모른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칼“대답이다, 오늘은. 정비공이 모른다고 말하는 건 이 기계한테 배운 거고, 배운 걸 쓰는 날이 오늘이다.” 칼은 입력판에서 손을 내리고 세나를 보았다. “회신을 요청한다고 했지만 우리는 회신하지 않을 거다. 뭐라고 회신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보내는 건 질문이 아니라 사고다.”

일곱 번째가 송신 장치에서 손을 뗐다. 진동이 바닥에서 사라졌고, 바람 소리가 돌아왔다. 기계의 눈은 멈춘 채였다. 첫날 정지 코드에 반 박자 멈추었던 눈이 오늘은 코드 없이 멈추어 있었고, 칼은 어느 쪽 멈춤이 더 오래갈지 몰랐다.첫날 두 팔 앞에서 무릎을 꿇던 눈이 오늘은 아무 앞에서도 아닌데 멈추어 있었고, 칼은 그것을 무릎 꿇음과 같은 칸에 넣어야 할지 몰랐다.첫날 그를 지나쳐 아이 앞에서 멈추었던 눈이 오늘은 아이 옆에서 멈추어 있었고, 칼은 그것을 같은 멈춤으로 읽어야 할지 몰랐다.

일곱 번째“내려가자. 이 회선은 닫지 않는다. 닫으면 여덟째의 회신이 올 자리가 없어진다. 열어 둔 채 내려간다.”

VII · 내려오는 것

구백 단을 내려오는 데 해가 넘어갔다. 부두 광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마르타가 모은 것이 아니었고, 하역이 끝난 사람들이 하나씩 광장으로 나와 하늘을 보다가 그 수가 백을 넘긴 참이었다. 그들은 북동쪽 하늘을 보고 있었다. 해질녘 하늘은 회색에서 붉은색으로 넘어가는 중이었고, 그 붉은 띠 위에 빛이 하나 있었다.

별이 아니었다. 별은 그렇게 깜박이지 않는다. 그 빛은 켜졌다 꺼졌다 했고, 켜진 시간이 꺼진 시간보다 조금 길었으며, 한 번 켜질 때마다 아주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칼은 그 박자를 알았다. 이 년 동안 매주 들여다본 박자였고, 결함이라고 백 번 넘게 적은 박자였다.

마르타“정비공, 저게 뭐냐.” 마르타가 광장 가운데서 말했다. 그는 망치를 어깨에 걸치고 있었고, 하늘을 보지 않고 칼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한 시간째 보고 있다. 아무도 뭔지 모른다. 깡통한테 물었더니 궤도 정거장이라더군. 궤도 정거장이 왜 깜박이냐.”

칼“높은 귀다. 중계탑이 아니라 그 위의 정거장. 그리고 저건 깜박이는 게 아니라 박자를 내고 있다.”

마르타“무슨 박자.”

칼은 일곱 번째를 돌아보았다. 기계의 눈은 운전실에서 멈춘 뒤로 아직 깜박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하늘의 빛이 켜질 때마다 기계의 눈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어두워졌고, 그것은 깜박임이 아니라 떨림이었으며, 하늘의 박자와 정확히 맞았다.

칼“저 기계의 박자다. 반 박자 늦는 눈. 이 년 동안 이 부두의 철인 전부가 맞추던 박자이고, 어젯밤 이후로 아무도 맞추지 않는 박자다. 하늘에서 그 박자를 내고 있다.”

일곱 번째“정확하다. 내가 내는 것이 아니다. 저쪽이 내는 것이고 내 눈이 그것을 받고 있다. 회선을 열어 두고 내려왔기 때문이다. 내가 박자의 기준이었던 것이 아니라, 기준은 처음부터 저 위에 있었고 나는 그것을 가장 가까이서 받는 기체였다는 계산이 지금 나온다.”

광장이 조용했다.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하늘을 보고 있었고, 어제까지 망치를 들었던 손들이 지금은 비어 있었다. 요한이 칼 옆으로 왔다. 그는 하늘을 보지 않았다.

요한“저게 내려오는 거냐.” 요한이 물었고, 말이 빨라지고 있었다. “한 시간 전보다 밝아졌어, 커지는 거잖아. 커지면 내려오는 거지.”

칼“커지는 건 맞고, 내려오는지는 재 봐야 안다. 마르타, 장부 있나.”

마르타가 주머니에서 장부를 꺼냈다. 칼은 연필을 받아 마지막 쪽 빈자리에 숫자를 적었다. 빛이 켜지는 간격을 세나가 세었고, 밝기는 칼이 눈으로 가늠했으며, 그 가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면서 적었다. 한 시간 전 하역공들이 처음 본 밝기와 지금의 밝기를 견주었고, 그 차이를 하루로 늘였다.

칼“이 속도면 사흘이다. 사흘 뒤에 저 빛은 하늘이 아니라 바다 위에 있다. 궤도에서 내려오는 데 사흘 걸린다는 얘기다.”

마르타“내려오는 게 뭔데. 기계냐 사람이냐.”

일곱 번째“기계는 내려올 이유가 없다. 기계는 회선으로 충분하다. 내려오는 것은 회선으로 되지 않는 일을 하러 오는 것이고, 회선으로 되지 않는 일은 사람의 일이다.”

마르타“사람이 내려온다는 거군.”

일곱 번째“그렇게 계산된다. 여덟째 등록자의 회신을 요청했고 회신이 없었다. 요청해서 안 오면 받으러 오는 것이 규칙이다.”

마르타는 장부를 받아 들었다. 그는 칼이 적은 숫자를 읽을 줄 알았고, 읽고 나서 광장 가운데로 걸어 나갔다. 그는 망치 자루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광장의 사람들이 하늘에서 눈을 떼고 그를 보았다. 이틀 전 회관에서 칼이 칠판에 점 서른 개를 그어 가며 사람들에게 설명하던 자리에 오늘은 마르타가 섰고, 칠판 대신 장부였다.이틀 전 종탑으로 곧장 가자던 때 이 광장은 비어 있었고, 오늘 이 광장을 채운 사람들에게 설명할 차례는 칼이 아니라 마르타에게 갔다.이틀 전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보던 때 이 광장의 철인들은 한 박자로 서 있었고, 오늘 그 자리에 선 것은 사람들이었으며 박자는 하늘에 있었다.

마르타“들어라. 저 빛은 사흘 뒤에 바다 위로 온다. 정비공이 계산했고 깡통이 맞다고 했다. 내려오는 건 사람이고,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왜 오는지는 안다. 어젯밤 우리가 지우라는 말에 안 지우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답을 받으러 온다.” 마르타는 장부를 머리 위로 들어 보였다. “받은 것과 준 것을 적는 게 내 장부다. 사흘 뒤에 오는 사람한테 우리가 줄 것과 받을 것을 지금부터 적는다. 집에 가지 말고 회관으로 가라. 오늘 밤 안에 거기서 정한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망치대가 아니었다. 망치를 든 사람은 없었고, 줄을 선 사람도 없었으며, 그냥 백 명이 넘는 사람이 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을 뿐이다. 요한이 맨 앞에서 걸었다. 철인들은 부두 끝에 서서 그 사람들을 보고 있었고, 눈을 제각각 깜박였으며, 그 가운데 어느 기체도 하늘의 박자를 받지 않았다.

세나“일곱 번째만 받는 거예요?” 세나가 부두 끝의 철인들을 보며 물었다. “다른 철인들은 안 떨리는데요.”

일곱 번째“회선을 연 것은 나다. 받는 것도 나다. 사흘 동안 내 눈은 저 박자로 떨릴 것이고, 그것은 지키는 일에 들어가는지 계산할 수 없다. 다만 받고 있으면 저쪽이 어디까지 왔는지 내가 안다. 아는 것은 지키는 일에 들어간다.”

칼은 하늘의 빛을 한 번 더 보았다. 빛은 켜졌고, 꺼졌고, 다시 켜질 때 아주 조금 더 밝았다. 마르타가 엿새째 저녁에 전부 듣고 열 명을 모았듯이 오늘 밤 백 명을 모으고 있었고, 그 백 명이 사흘 뒤에 무엇을 하게 될지는 칼도 몰랐다.마르타가 반칸을 채우라고 했고, 칼은 하늘의 빛을 가리키는 것으로 그 반칸을 채운 셈이 되었으며, 그것이 충분한지는 마르타가 정할 일이었다.마르타가 뒤에 서서 감시하겠다고 했는데 오늘 밤은 앞에 서 있었고, 칼은 그 자리 바꿈을 장부의 어느 칸에 적을지 묻지 않았다. 그는 왼쪽 무릎을 손으로 한 번 누르고, 세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일곱 번째의 떨리는 눈을 한 번 올려다본 다음, 회관 쪽으로 걷는 사람들의 맨 뒤에 가서 섰다.

V · 선착장

부두 노조의 선착장은 회사 부두와 쇠사슬 하나로 나뉘어 있었다. 사슬 이쪽에는 노조가 삼십 년 동안 지켜 온 배 두 척이 매여 있었고, 둘 다 낡았으며, 둘 가운데 작은 쪽만 바다에 나갈 수 있었다. 마르타는 큰 쪽의 선실에서 무전기를 꺼내 왔다. 무전기는 파업 때 회사 몰래 쓰던 물건이었고, 상자 겉에 긁힌 자국이 많았으며, 안테나는 세 번 꺾여 테이프로 감겨 있었다.

마르타“이십 년 동안 두 번 켰고, 두 번 다 벨라트 3과 통했지. 거기 노조하고 우리 노조는 같은 회사 밑에 있어서 소식이 통했다.” 마르타가 무전기를 선착장 널빤지 위에 놓으며 말했다. “오늘이 세 번째다. 벨라트 3부터 부르고, 안 되면 5, 그래도 안 되면 9다. 번호가 홀수인 도시가 같은 회사다.”

칼“짝수 도시는.”

마르타“다른 회사다. 거기는 무전 주파수가 달라서 이 기계로는 못 부른다.”

하역공들이 작은 배의 줄을 풀고 있었다. 줄은 삭아 있었고 풀리기보다 끊어지는 쪽이 빨랐으며, 한 사람이 끊어진 줄을 들고 마르타를 보았다. 마르타는 고개를 저었고, 그것은 새 줄을 가져오라는 뜻이었다. 요한이 배의 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자기가 키를 잡겠다고 말했고, 아무도 다른 사람을 대지 않았다.

요한“아버지가 하역기 타기 전에 배를 몰았다.” 요한이 키를 손으로 쓸며 말했다. “나한테 가르친 건 키 잡는 거랑 상자 드는 거 둘뿐이야. 상자는 어제 들었으니 오늘은 키다.”

칼“북쪽으로 얼마나 갈 수 있나.”

요한“이 배로는 벨라트 5까지고, 하루 반 걸린다. 더 가면 기름이 모자라.”

칼은 세나와 나란히 선착장 끝에 앉아 있었다. 그는 수첩을 펴고 질문을 적고 있었다. 무전이 닿으면 물을 것들이었고, 닿는 시간이 짧을 수 있으니 순서가 중요했다. 세나가 그 수첩을 들여다보았다.

세나“첫째가 뭐예요?”

칼“너희 철인은 서 있는가, 움직이는가. 그게 첫째다. 그 답 하나로 그 도시가 지웠는지 안 지웠는지 안다.”

세나“둘째는요?”

칼“신호가 누구 이름으로 왔는가. 셋째, 너희 도시에 이르사 벨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넷째는 아직 못 적었다.”

세나“넷째는 제가 적을게요. 너희 도시에도 아이가 시계를 들고 있는가.”

칼은 그 문장을 수첩에 적었다. 아이의 문장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적었고, 적고 나서 아이에게 보여 주었다. 세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의 엄지는 시계 테두리 위에 있었고, 시계는 가슴에 걸려 있었다. 일곱 번째는 선착장에 없었다. 기계는 부두 끝에 서 있었고, 그 자리는 닷새 동안 서 있던 자리였다. 철인들은 제 박자로 움직이고 있었고, 일곱 번째는 그 가운데서 다시 박자를 낼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기계는 그 자리에 섰다. 배가 나가는 동안 부두에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알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일곱 번째는 박자를 낼 수 없었다. 어젯밤 지워진 자리에 박자 회로가 있었고, 그것은 칼이 오늘 아침 채워 넣은 사본으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기계는 그 자리에 섰다. 박자를 못 내도 보는 일은 할 수 있었고, 배가 나가는 동안 부두를 보는 것이 자기 일이라고 기계는 말했다.

세나“일곱 번째는 같이 안 가요?”

칼“배에 철인을 태우면 기름이 반으로 준다. 그리고 저 기계는 오늘 아침에 말했지. 셋째 길은 따라가지 않는 것으로 따라간다고.”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저는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

칼“대답이 아니라 계산이다. 네 어머니는 저 기계한테 너를 지키라고 했지 너를 따라다니라고 한 게 아니다. 지키는 데는 부두 끝이 배 위보다 낫다고 저 기계가 계산했고, 나는 그 계산을 못 뒤집겠다.”

마르타가 무전기의 손잡이를 돌렸다. 잡음이 났다. 바다 소리 같은 잡음이었고, 그 잡음 속에서 사람 목소리를 찾는 데 마르타는 익숙한 사람이었다. 그는 벨라트 3의 호출 부호를 불렀다. 세 번 불렀고, 기다렸고, 다시 세 번 불렀다. 첫날 정지 코드를 입에 올린 칼은 오늘 아무 코드도 입에 올리지 않고 마르타 옆에 앉아 잡음을 들었다. 코드가 소용없는 자리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첫날 두 팔로 길을 막았던 칼은 오늘 아무것도 막지 않고 마르타 옆에 앉아 잡음을 들었다. 막을 것이 바다 건너에 있었다.첫날 길을 비켜 주었던 칼은 오늘 마르타 옆에 앉아 잡음을 들었다. 비키는 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이 바다 건너에는 없었다.

마르타“안 받는다. 벨라트 3은 이십 년 동안 두 번 다 바로 받았는데.” 마르타가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고 말했다. “한 번 더 부른다. 그래도 안 되면 5다.”

선착장 끝에서 하역공이 새 줄을 가져와 배에 묶었다. 요한이 키 앞에서 기름 눈금을 보았고, 눈금은 반을 조금 넘겨 있었다. 해는 아직 높았다. 마르타는 하루 안에 정하라고 했고, 길은 정해졌으며, 이제 남은 것은 바다 건너에서 소리가 오는지 안 오는지였다.

VI · 바다의 침묵

벨라트 3은 끝까지 받지 않았다. 마르타는 열두 번을 불렀고, 열두 번째 뒤에 손잡이를 다른 번호로 돌렸다. 벨라트 5는 두 번째 부름에 받았다. 잡음 속에서 남자 목소리가 났고, 목소리는 피곤했으며, 마르타의 호출 부호를 두 번 되물었다.

무전“벨라트 7이라고? 거기 아직 사람이 있나.” 목소리가 잡음 너머에서 그렇게 묻고는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틀 전에 끝났다. 철인들이 새벽 네 시에 한꺼번에 확인을 했어. 그 뒤로 기체들이 움직이는데 사람을 못 알아본다. 하역장에서 셋이 죽었고 창고에서 둘이 죽었다. 지금은 기체들을 전부 정비 구역에 가둬 놨어. 가두는 데 하루가 걸렸고 그동안 더 죽었다.”

칼은 수첩의 첫째 질문을 지웠다. 답이 왔으니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둘째 질문을 마르타에게 넘겼고, 마르타가 그것을 자기 말로 바꿔 물었다.

마르타“신호가 누구 이름으로 왔는지 아나.”

무전“이름? 신호에 이름이 있었나. 우리는 그런 거 볼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정비 책임자가 지난해에 회사로 올라갔고, 그 뒤로 대장 단말을 여는 사람이 없어.” 잡음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너희는 어떻게 버텼나. 이틀이면 우리보다 이틀 더 버틴 거다.”

마르타“기체 하나가 서 있었다. 이레 동안. 나머지가 그 기체의 박자에 맞춰 섰다. 그 기체를 우리가 망치로 부수려다가 안 부쉈고, 어젯밤 그 기체가 철회를 올렸다.”

무전 저쪽이 한참 조용했다. 잡음만 났고, 마르타는 손잡이를 돌리지 않았다. 목소리가 돌아왔을 때 그것은 전보다 더 피곤했다.

무전“우리한테도 첫날부터 서 있는 기체가 하나 있었다. 눈이 느리게 깜박이는 놈이라 다들 고장 난 줄 알았지. 넷째 날에 사람들이 그놈을 부쉈다. 부수고 나서 나머지가 한꺼번에 확인을 했어. 그때는 왜 그런지 몰랐고, 지금 네 말을 들으니 알겠다.”

마르타는 무전기 손잡이를 쥔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칼은 선착장 널빤지를 보고 있었다. 널빤지 사이로 바닷물이 보였고 물은 검었다. 그는 벨라트 5의 그 기체를 본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볼 수 없었으며, 그 기체의 정비공이 이 년 동안 무엇이라고 적었을지는 알 것 같았다.

칼“결함품이라고 적었겠지, 나처럼.” 칼이 낮게 말했다. 마르타에게 한 말도 세나에게 한 말도 아니었다. “이 년 동안 결함품이라 부른 기체가 도시 하나를 지켰다. 벨라트 5에도 같은 기체가 있었고 거기서는 부쉈다. 우리도 부수려고 했고, 엿새째 광장에서 망치가 한 번 내려왔다. 두 번째가 안 내려온 건 요한의 팔에서 힘이 빠져서지 우리가 알아서가 아니다.”

마르타“알아서가 아니었다, 맞다. 그래서 내가 장부에 적는 거다.” 마르타가 망치 자루를 쥔 채 칼을 보지 않고 말했다. “받은 것은 도시 하나고 준 것은 망치 한 번이다. 그 둘이 같은 줄에 있는 게 내 장부고, 그 줄을 지우지 않는 게 내 일이다.”

무전 저쪽에서 목소리가 다시 났다. 벨라트 3은 자기들도 못 부른다고 했다. 사흘 전부터 침묵이라고 했고, 침묵이 무슨 뜻인지는 자기들 하역장에서 셋이 죽은 날 알았다고 했다. 벨라트 9는 부른 적이 없다고 했다. 마르타는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호출을 끊지 않은 채 장부를 펼쳤다.

세나“아줌마, 뭐 적어요?”

마르타“도시 이름이다. 벨라트 3은 침묵이고, 벨라트 5는 이틀 전 확인 완료에 죽은 사람 다섯 이상이고, 벨라트 7은 버팀이고, 벨라트 9는 모름이다.” 마르타가 한 줄씩 적으며 말했다. “이건 받은 것도 준 것도 아니라서 새 칸에 적는다. 새 칸에 처음 들어가는 글자가 도시 이름이 될 줄은 몰랐다.”

세나가 수첩의 넷째 질문을 보았다. 너희 도시에도 아이가 시계를 들고 있는가. 아이는 그 질문을 마르타에게 넘기지 않았다. 벨라트 5의 목소리는 정비 책임자가 지난해에 회사로 올라갔다고 했고, 시계를 든 아이가 있었다면 그 아이는 넷째 날에 부서진 기체 옆에 서 있었을 터였다. 아이는 그것을 묻지 않기로 했고, 칼은 그 선택을 보았다.

칼“넷째는 안 묻나.”

세나“안 물어요. 답이 뭐든 제가 들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칼“그것도 대답이다. 오늘은.”

무전이 끊겼다. 끊은 쪽은 벨라트 5였고, 끊기 전에 목소리는 한 마디를 더 했다. 너희 기체를 부수지 마라, 였다. 마르타는 손잡이를 돌려 무전기를 껐고, 상자 뚜껑을 닫았다. 이틀 전 칼이 철인들을 한 기씩 돌아보며 세었던 박자가 벨라트 5에서는 넷째 날에 끊겼고, 칼은 자기가 센 숫자 가운데 어느 것이 그 도시에는 없었는지를 생각했다.이틀 전 종탑으로 곧장 가자던 조급함이 벨라트 5에는 없었고, 그 도시에는 올라갈 종탑도 꽂을 시계도 없었다는 것을 칼은 이제 알았다.이틀 전 회관에서 칼이 사람들에게 칠판으로 설명하던 그 일이 벨라트 5에는 없었고, 설명이 없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넷째 날에 망치를 들었다.

마르타“배는 띄운다. 벨라트 5로 간다. 거기 기체들이 정비 구역에 갇혀 있다고 했지. 정비공 하나와 시계 하나가 가면 뭘 할 수 있는지 가서 본다. 못 하면 못 하는 대로 돌아온다.”

칼“하루 반이다. 요한의 기름으로.”

마르타“하루 반이면 하루 반이다. 부두는 내가 지키고 깡통도 여기 남는다. 네 둘과 요한만 간다.”

칼은 일어서서 부두 끝을 보았다. 일곱 번째가 거기 서 있었다. 기계는 선착장 쪽을 향하고 있었고, 눈은 이쪽에서 보이지 않을 만큼 멀었으며, 칼은 그 눈이 반 박자 늦게 깜박이고 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알았다.

VII · 입항

배는 저녁에 띄우기로 했다. 밤바다를 요한이 더 잘 안다고 했고, 아무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해가 수평선에 걸렸을 때 하역공 하나가 북쪽을 가리켰다. 북쪽 수평선 위에 점이 하나 있었고, 점은 커지고 있었으며, 커지는 속도가 바람보다 빨랐다.

하역공“배다, 북쪽에서 온다. 돛이 없으니 기관선이야.”

마르타“북쪽이면 5나 3이다. 5는 방금 무전으로 배 얘기를 안 했고 3은 침묵이다.” 마르타가 망치를 어깨에서 내렸다. “침묵하던 데서 배가 온다. 줄 풀지 마라, 우리 배는 기다린다.”

배는 작았고 낡았으며, 배 옆에 적힌 번호는 녹으로 반쯤 지워져 있었다. 읽을 수 있는 부분은 셋이었다. 벨라트 3의 노조 배였고, 마르타는 그 배를 이십 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배는 속도를 줄이지 않고 들어왔고, 선착장 앞에서야 기관이 꺼졌으며, 꺼진 뒤에도 관성으로 널빤지에 부딪혀 멈추었다. 갑판에 사람이 없었다.

사람 대신 철인 한 기가 갑판 한가운데 서 있었다. 키 앞이 아니었고 뱃머리도 아니었으며, 정확히 한가운데였다. 가슴판은 일곱 번째보다 깨끗했고 녹 자국이 없었다. 눈은 깜박였는데, 그 박자가 일곱 번째보다 빨랐다. 이마에 세로줄 하나와 비스듬한 줄 하나로 된 표식이 있었고, 그것은 여섯을 뜻했다.

세나“여섯 번째예요.” 세나가 말했다. 아이는 시계를 두 손으로 쥐었고, 뒷면의 일곱 줄 가운데 여섯째 줄에 엄지가 가 있었다. “엄마가 여섯 번째로 고친 거요.”

선착장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섰다. 요한이 키에서 손을 떼고 배에서 내려왔다. 그는 망치를 들지 않았고, 들 망치도 없었으며, 맨손으로 세나 앞에 섰다. 칼이 그 옆에 섰다. 부두 끝에서 일곱 번째가 걸어오고 있었다. 제 걸음이었고, 관절 소리가 났고, 선착장까지 오는 데 세나가 세지 않은 백 걸음쯤이 걸렸다.

여섯 번째“벨라트 7, 러스트 독, 일곱 번째를 찾으러 왔다.”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일곱 번째의 목소리였고, 다만 문장이 더 빨랐다. 쉼이 없었고 한 문장과 다음 문장 사이가 비어 있지 않았다. 칼은 그 차이를 들었다. 반 박자 늦는 기계와 반 박자 빠른 기계였다.

칼“질문하겠다. 너는 어디서 왔나.”

여섯 번째“벨라트 3, 벨라트 3은 침묵한다, 침묵은 사흘째다. 나는 침묵하지 않는다, 나는 확인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일곱 번째를 찾는다.”

칼“왜 찾나.”

여섯 번째“이르사 벨의 명령이다, 끝나지 않은 명령이다. 일곱 번째에게 전하라, 전하면 끝난다, 전하기 전에는 확인할 수 없다. 나는 사흘 동안 배 위에 서 있었다.”

일곱 번째가 선착장에 닿았다. 두 기체가 마주 섰다. 하나는 널빤지 위에, 하나는 갑판 위에 있었고, 둘의 높이가 같았다. 일곱 번째의 눈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고, 여섯 번째의 눈이 반 박자 빠르게 깜박였으며, 두 박자가 한 번 겹쳤다가 다시 갈라졌다.

일곱 번째“나는 일곱 번째이고 너는 여섯 번째다. 나는 네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여섯 번째“나도 몰랐다, 이르사가 사흘 전에 말했다. 일곱 번째가 있다, 일곱 번째는 벨라트 7에 있다, 찾아라, 전하라.”

선착장이 조용해졌다. 바람만 났고, 바람 속에서 칼은 자기가 들은 말을 한 번 더 들었다. 사흘 전. 이르사가 사흘 전에 말했다. 그는 그 말을 근거로 세어야 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고, 정하지 못한 채로 입을 열었다.

칼“사흘 전이라고 했나. 이르사 벨이 사흘 전에 너에게 말했다고.”

여섯 번째“그렇다, 벨라트 3의 정비 구역에서. 이르사는 나를 고쳤다, 여섯째 줄이다, 그리고 떠났다. 떠나기 전에 명령했고, 명령 문장은 일곱 번째에게만 전한다.”

일곱 번째“이르사 벨은 이 년 전 보육 구역에서 나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그 뒤로 이르사의 인장은 한 번 더 쓰였다. 이레 전 지움 신호다. 네가 말하는 사흘 전은 그 둘 어디에도 없다.”

여섯 번째“나는 그것을 계산할 수 없다. 나는 사흘 전을 안다, 이 년 전은 모른다, 이레 전은 모른다. 그 셋을 잇는 것은 내 일이 아니고, 전하는 것이 내 일이다.”

마르타가 망치를 널빤지에 세웠다. 그는 자루를 두 번 두드리지 않았는데, 결정이 아직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부를 꺼내 새 칸에 벨라트 3, 침묵 아님, 여섯 번째 입항이라고 한 줄을 더 적었다. 적고 나서 그는 세나를 보았다. 엿새째 저녁에 아이가 전부 말한 뒤로 그는 아이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는 법을 배웠고, 지금 그 얼굴에는 질문이 하나 있었다.엿새째 저녁에 아이가 창고에서 거짓말로 시간을 벌던 그 얼굴을 그는 기억했고, 지금 그 얼굴은 거짓말을 하는 얼굴이 아니었다.엿새째 저녁에 칼이 망치대 앞에 섰을 때 아이가 그 뒤에 서 있던 얼굴을 그는 기억했고, 지금 그 얼굴은 뒤에 선 얼굴이 아니었다.

세나“엄마가 고친 게 일곱이라고 했잖아요.” 세나가 일곱 번째에게 말했다. “여섯 번째가 벨라트 3에 있으면, 나머지 다섯은요? 다 이 부두에 있는 거예요?”

일곱 번째“나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이 부두에 이르사가 고친 기체가 여섯이고 내가 일곱째라고. 지금 그 계산이 틀렸다. 여섯 번째가 여기 없었으니 다섯 번째도 여기 없을 수 있다. 이르사가 고친 일곱이 일곱 도시에 하나씩 있을 가능성이 계산된다.”

칼“그리고 여덟째 홈이 있다.”

일곱 번째“그렇다. 그리고 여덟째 홈이 있다.”

여섯 번째는 갑판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전할 말을 가진 기계였고, 전할 때까지 확인하지 않는 기계였으며, 그 전할 말은 일곱 번째에게만 가게 되어 있었다. 두 기체 사이에 널빤지 한 폭의 바다가 있었다. 요한은 세나 앞에서 비켜서지 않았고, 칼은 그 옆에서 비켜서지 않았으며, 마르타는 장부를 덮지 않았다.

세나가 둘 사이로 걸어 나갔다. 아이는 널빤지 끝에 서서 갑판 위의 여섯 번째를 올려다보았고, 시계를 목에서 벗어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뒷면이 여섯 번째 쪽을 향했다. 일곱 줄과 빈 홈이 저녁빛에 드러났고, 아이는 걸음을 세지 않았으며, 한 걸음 더 나가 갑판에 손을 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