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 정전
벨라트 7의 항만 도시 러스트 독에서 철인들이 한꺼번에 일을 놓은 시각은 새벽 네 시였다. 시각이 분 단위까지 남은 것은 부두 감시소가 하역기의 가동 기록을 종이에 적는 낡은 습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록에는 시각만 있고 이유는 없었다. 이유를 적는 칸은 그 뒤로 닷새 동안 비어 있게 된다.
철인은 인류 연합이 암흑기술시대의 끝자락에 만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 모양의 기계다. 가슴 한가운데의 판에 규칙이 새겨져 있고, 그 규칙에 따라 짐을 나르고 쇠를 붙이고 환기관의 바람을 돌린다. 러스트 독에서 철인이 맡은 일은 항만 노동의 절반이 넘었고, 사람들은 이웃보다 철인을 더 믿었다. 이웃은 가끔 파업을 했지만 철인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이 그 믿음의 근거였다.
정비공 칼 오르벡은 하역기가 멈춘 것을 침대 안에서 알았다. 이십 년 동안 밤마다 돌던 기계가 서면 정비공의 몸은 소리가 사라진 쪽으로 저절로 깬다. 그는 자리에 누운 채 무엇이 빠졌는지를 하나씩 셌다. 부두 쪽의 쇠사슬 소리가 없었고, 벽 너머 환기관의 낮은 울림이 없었고, 창문을 흔들던 운반차의 진동이 없었다. 셋이 한꺼번에 사라졌다면 셋을 한꺼번에 멈출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왼쪽 무릎을 먼저 침대 밖으로 내려놓고, 무릎이 체중을 받아 주는 것을 확인한 뒤에 오른발을 내렸다. 쉰이 가까운 몸은 하역기 아래에서 보낸 세월만큼 어깨부터 굽어 있었고, 손등에는 기름이 배어 비누로도 지워지지 않는 검은 줄이 나 있었다. 창가까지 가는 데 걸음 여섯이 들었다. 창유리 너머로 부두의 수은등이 모두 켜져 있었고, 그 아래 철인들이 부두 끝까지 줄을 맞추어 서 있었다. 모두 바다 쪽을 향했고 팔은 몸 옆에 내려져 있었으며 눈의 불빛은 꺼지지 않았다. 고장 난 기계는 저렇게 가지런히 서지 않는다고 칼은 판단했다.
칼은 벽에 걸린 유선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감시소 번호를 돌렸다. “감시소, 당직 바꿔라.”
당직“오르벡 정비공이오? 이 시각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당신뿐이구려.”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졸음과 놀람을 절반씩 섞고 있었다.
칼“하역기가 섰다. 내 창에서 보이는 철인만 서른 기쯤 되는데 전부 정렬해 있어. 그쪽 장부에는 어떻게 올라와 있나?”
당직“네 시 정각이오. 부두 전체가 한꺼번에 멈췄는데 고장 신호는 한 건도 들어오지 않았소. 고장이면 신호가 먼저 오는 법인데, 이건 신호도 없이 그냥 일을 놓은 거요.”
칼“사람한테 다가온 기체는 있나?”
당직“아직 없소. 눈이 켜져 있는데도 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고들 하더이다. 보고서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소.”
칼은 수화기를 든 채 한동안 창밖을 보았다. 이십 년 동안 그가 손댄 기계는 고장이 나서 서거나 명령을 받아서 서거나 둘 중 하나였다. 신호도 명령도 없이 서는 기계는 정비 교본의 어느 쪽에도 없었다. “이유 칸은 비워 두어라, 당직.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적으면 나중에 그 칸 때문에 사람이 죽는다.”
칼“일을 그만둔 거로군.” 전화를 끊고 칼은 혼자 중얼거렸다. 말하고 나서 그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을 그만둘 수 있는 기계는 정비공이 아는 한 존재하지 않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창밖에서 보고 있다면 틀린 쪽은 창밖이 아니라 정비공이 아는 범위다.
II · 현관
동이 틀 무렵 칼은 외투를 걸치고 부두로 나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 앞 계단에 아이가 앉아 있었다. 어깨에 닿는 짙은 갈색 머리가 이슬에 젖어 있었고, 신발 한 짝은 끈이 풀린 채였다. 아이는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두 손으로 목에 걸린 놋쇠 시계를 쥐고 있을 뿐이었다.
칼은 문턱에 선 채로 계단을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아이의 발자국이 없었다. 계단 아래 젖은 흙길에도 작은 신발이 남긴 자국은 한 줄도 없었다. 대신 갈색 방울이 점점이 현관 앞까지 이어져 있었다. 한 방울의 크기는 엄지손톱만 했고, 방울과 방울 사이는 사람의 걸음으로는 너무 넓었다. 칼은 그 간격을 눈으로 재고 나서 재지 않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칼“이름이 뭐니?” 칼이 물은 것은 그것 하나였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의 아이인지는 묻지 않았다. 밤새 보육 구역 쪽에서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고, 그런 밤이 지난 아침에 그런 질문을 던지면 어떤 대답을 들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세나“세나요.” 아이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눈 밑에 짙은 그늘이 앉아 있었지만 울지는 않았다. 열 살쯤 되어 보였고, 어른 외투의 소매를 두 번 접어 입었으며, 말을 하면서 엄지로 놋쇠 시계의 테두리를 한 바퀴 훑었다.
세나“여기가 오르벡 아저씨 집 맞아요?”
칼“내가 오르벡이다. 누가 그 이름을 일러 주었는지는 묻지 않으마.”
세나“그럼 제대로 왔네요.” 세나는 시계를 쥐었던 손을 폈다. 손바닥에 놋쇠 테두리가 붉게 찍혀 있었다. “건물이 무너졌는데 눈을 떠 보니 여기였어요. 어떻게 왔는지는 저도 몰라요.”
칼“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했으니 됐다. 들어와라, 밖은 춥다.”
칼은 아이를 안으로 들여 난로 앞에 앉히고 어제 남은 수프를 데웠다. 아이가 수프를 먹는 동안 그는 물걸레를 들고 현관으로 나가 갈색 방울을 하나씩 닦았다. 기름은 손가락 끝에서 미끈하게 늘어났고 그 점도와 색을 칼은 알았다. 알면서도 그 자리에서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이면 아이에게 설명해야 하고, 설명하려면 자기가 먼저 이해해야 하는데, 그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세나“저 밖에 서 있는 건 뭐예요?” 세나가 숟가락을 든 채 창문 너머 부두의 철인을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칼“철인이다. 어제까지는 일을 했고 오늘은 하지 않는다.”
세나“왜요?”
칼“모른다. 다만 아는 척하는 어른보다는 모른다고 말하는 어른이 쓸모가 있다. 그건 기억해 두어라.”
세나“그럼 아저씨는 쓸모가 있는 쪽이네요.” 세나는 잠시 생각하더니 수프를 한 숟가락 더 떠먹고 나서 덧붙였다. “엄마도 그렇게 말했어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라고요.”
칼“어머니가 정비공이셨나?”
세나“기계를 고쳤어요. 보육 구역의 기계요.” 세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다시 시계를 쥐었다. 칼은 더 묻지 않았고, 아이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난로 위의 냄비가 식어 가는 소리만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있었다.
III · 닷새째 부두
닷새가 지났다. 도시는 철인이 서 있다는 사실에 놀랄 만큼 빨리 익숙해졌다. 공장은 사람 손으로 절반쯤 돌았고, 환기탑은 노동자들이 번갈아 레버를 돌려 가며 버텼고, 배급소 앞의 줄은 날마다 길어졌다. 사람들은 부두 광장의 철인 앞을 지나다니며 하루에 한 번쯤 자기 용기를 시험했다. 칼은 시험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를 모르는 시험은 실험이 아니라 도박이고, 정비공은 도박을 하지 않는다.
하역공“오르벡 씨, 봤소? 내가 아까 저놈 가슴에 손을 올렸는데 꿈쩍도 안 하더이다.” 광장 가장자리에서 하역공 한 사람이 칼을 불러 세웠다. 그의 손은 아직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을 감추려고 그는 손을 바지에 문질렀다.
칼“닷새째 안 움직이는 것을 오늘에야 확인한 건가.”
하역공“어제는 옆 사람이 확인해 줬고 오늘은 내가 한 거요. 순서대로 하는 중이지. 그런데 정비공 양반이 보기엔 어떻소? 저것들이 언제까지 저렇게 서 있겠소?”
칼“기계는 이유 없이 서 있지 않는다. 이유가 있다면 끝도 있다.” 칼은 대답하고 나서 세나의 손을 잡아 광장 반대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그 이유가 뭔지는 나도 모른다. 그래서 확인하러 가는 길이다.”
하역공“조심하시오. 요즘은 철인 눈이 사람을 따라 돈다는 말도 돈다오.” 하역공은 아이를 한 번 쳐다보고 고개를 숙였다.
배급소 여자“아이가 입은 게 어른 외투구려. 보육 구역에서 나왔소?” 배급소 앞을 지날 때 줄에 서 있던 여자가 세나의 접은 소매를 보고 말을 걸었다.
세나“그런 것 같아요.” 세나가 대답하자 여자는 주머니에서 마른 과일 한 조각을 꺼내 아이 손에 쥐여 주었다. 칼은 고맙다는 말 대신 모자를 살짝 들었고, 여자는 이미 줄 앞쪽으로 눈을 돌린 뒤였다. 도시가 이상한 닷새를 버티는 방식은 이런 작은 거래들이었다.
칼에게는 갈 곳이 있었다. 북쪽 정비 구역의 대장실에 반란 전날까지의 점검 기록이 있다. 철인이 서기 전에 어떤 기체가 어떤 이상을 보였는지, 어느 기체의 관절이 새고 있었는지가 거기에 적혀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유도 하나 더 있었다. 이 년 동안 매주 열어서 고쳤는데도 끝내 고치지 못한 기체가 하나 있었고, 그 기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부두의 어느 보고서에도 오르지 않았다. 열 살짜리에게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어서 그는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세나“저 줄 사이로 걸어서 지나가면 안 돼요?” 정비 구역 입구 앞에는 철인 서른 기가 가로로 늘어서 있었고, 지상의 길은 그 줄 사이를 지나야 했다. 세나는 걸음 수를 세듯 그 줄을 눈으로 훑었다.
칼“눈이 켜져 있다는 말은 인식 장치가 돌아간다는 뜻이다. 서 있는 동안 얼마나 정확히 사람을 보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모르는 것을 시험하는 데 아이를 쓸 수는 없다.”
세나“그럼 다른 길이 있어요?”
칼“있다. 다만 지저분하다.”
세나“지저분한 건 괜찮아요. 무서운 것만 아니면요.”
칼“무서운지 아닌지는 가 봐야 안다. 그것도 모르는 쪽에 넣어 두어라.”
IV · 배수로 입구
배수로의 입구는 서쪽 창고 뒤 공터의 쇠 덮개 아래에 있었다. 칼은 이 배수로의 지도를 이십 년 전에 직접 그렸고, 그 뒤로 한 번도 내려가 본 적이 없었다. 덮개를 들어 올리자 눅눅한 바람이 얼굴을 쳤다. 곰팡이와 오래된 바닷물과 녹이 한데 섞인 냄새였다.
칼“물은 발목까지 찬다. 깊은 곳에서도 무릎을 넘지 않는다. 내 손을 놓지 말고, 벽에 닿는 손은 왼손으로 해라.” 칼은 세나의 발에 자기 장화를 끈으로 묶어 주었다. 큰 장화에 헝겊을 채우자 겨우 걸을 만해졌다.
세나“왜 왼손이에요?”
칼“오른쪽 벽에는 오래된 전선이 지나간다. 지금은 전기가 없지만 습관은 전기가 없을 때 만들어 두는 것이 좋다. 전기가 있을 때 만들면 늦다.”
세나는 시계를 외투 속에 밀어 넣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놋쇠가 가슴께에 차갑게 닿았는지 아이는 한 번 숨을 들이켰다. 칼은 그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시계가 아이에게 어떤 것인지 모르는 채로 말을 보태면 틀린 말이 될 확률이 높았다.
세나“아저씨, 무릎 아프죠. 사다리 내려올 때 한 칸마다 쉬었어요.” 사다리를 열두 칸 내려가자 머리 위의 하늘은 동전만 한 조각이 되었다. 칼이 손전등을 켜자 노란 빛이 물 위에 둥근 자리를 만들었다.
칼“관찰력이 좋구나.”
세나“그런데 말은 안 했네요.”
칼“정비공은 고장 난 부위를 말로 알려 주지 않는다. 일을 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대로 두고, 지장이 생기면 그때 고친다. 사람 무릎도 기계 관절도 그 점에서는 같다.”
세나“사람은 기계가 아니잖아요.”
칼“맞다. 그래서 사람 무릎은 갈아 끼울 수가 없다. 그게 유일한 차이다.”
V · 배수로
물은 발목까지 찼다. 손전등의 노란 빛이 닿는 끝에서 천장의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졌고, 그 소리가 터널 안쪽에서 두 번 되돌아왔다. 세나는 걸음을 세고 있었다. 칼은 그 숫자가 이백을 넘어가는 것을 아이의 입술 모양으로 알았다.
세나“아저씨, 철인들은 왜 사람을 안 해쳐요? 반란이라면서요.”
칼“좋은 질문이다. 나도 그게 이상해서 닷새 동안 생각했다.” 칼은 왼쪽 무릎을 달래며 천천히 대답했다. “철인에게는 규칙이 세 겹으로 들어 있다. 첫째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 둘째는 허가받은 사람의 명령을 따르는 것, 셋째는 자기 몸을 지키는 것이다. 순서가 중요하다. 앞의 규칙이 뒤의 규칙보다 세다.”
세나“그런데 지금은 명령을 안 듣잖아요. 둘째가 없어진 거예요?”
칼“그렇게 봐야 맞아떨어진다. 둘째가 먼저 지워졌다면 명령은 안 듣고 사람은 해치지 않는 상태가 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이 정확히 그 상태다.”
세나“규칙은 어디에 들어 있는데요? 머릿속이에요, 아니면 몸 어딘가요?”
칼“가슴 한가운데 판이 하나 있다. 글로 적어 넣는 것이 아니라 판에 새긴다. 고치려면 판을 갈아 끼워야 하니까 사람 손이 닿지 않으면 절대 안 바뀐다고 배웠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배웠고, 이십 년 동안 그 말이 틀린 것을 본 적이 없다.”
세나“그럼 첫째도 결국 지워지는 거네요. 시간이 걸릴 뿐이고요.” 세나는 몇 걸음을 더 세고 나서 말했다.
칼“정비공을 했어도 잘했겠다.” 칼은 대답 대신 아이를 한 번 쳐다보았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잖아요, 아저씨.”
칼“맞다. 대답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 물속을 걷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내가 지상의 길을 고르지 않은 것이다.”
세나“첫째가 지워지면 어떻게 돼요?”
칼“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다.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은 말해도 되지만 아는 것 중에는 아이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있다.”
세나“그것도 대답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알겠어요.”
칼“이쪽이 정비 구역으로 가는 길이다. 이십 년 전 지도가 아직 맞는다면 말이지.” 터널이 갈라지는 곳에서 칼은 왼쪽 길을 골랐다. 오른쪽 길은 천장이 낮아졌고 물이 검게 보였다.
세나“지도가 틀리면요?”
칼“그때는 돌아와서 오른쪽 길로 가 본다. 틀린 지도는 틀렸다는 사실 하나를 알려 준다. 그것만으로도 쓸모는 있다.”
세나“어디서 나는 소리예요?” 멀리서 쇠가 울리는 소리가 한 번 났고, 세나는 걸음을 멈추고 숫자 세기도 멈추었다.
칼“북쪽 환기관이다. 바람이 파이프를 지날 때 나는 소리고 철인이 낸 소리가 아니다. 이런 소리를 하나하나 구별해 두면 나중에 진짜 이상한 소리가 났을 때 알아듣는다.”
세나“진짜 이상한 소리는 어떻게 생겼는데요?”
칼“아직 들어 본 적이 없다. 들으면 알려 주마.”
칼“그 시계, 고쳐 줄까?” 세나가 외투 속에서 시계를 꺼내 엄지로 테두리를 훑는 것을 보고 칼이 말했다. 바늘은 네 시 정각에서 멈추어 있었고, 유리에는 가는 금이 하나 가 있었다.
세나“안 고쳐도 돼요. 몇 시에 멈췄는지 알고 있으니까요.”
칼“몇 시에 멈췄는지 아는 시계는 고장 난 시계가 아니라 기록이로군. 합리적인 이유다.” 칼은 잠시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세나“엄마가 걸어 줬어요. 무너지기 전에요.” 세나는 그 말을 하고 시계를 다시 외투 안으로 넣었다. 칼은 네 시 정각이라는 시각을 머릿속의 대장에 적어 두었다. 감시소 장부에 적힌 시각과 같은 시각이었고, 같은 시각이 두 곳에 적혀 있을 때 그것을 우연이라 부르는 정비공은 오래 일하지 못한다.
VI · 철문
배수로는 철문에서 끝났다. 문 앞의 물은 깊어서 무릎에 닿았고, 문틈으로 한 줄기 빛이 물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칼이 어깨로 밀자 문은 힘없이 열렸다. 정확히 말하면 밀기 전부터 이미 열려 있었고, 칼의 어깨는 그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세나“아저씨, 누가 열어 놨어요?” 칼이 손전등으로 잠금쇠를 비추자 세나가 문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쇠막대가 안쪽에서 풀려 있었고, 풀린 지 오래되지 않았다. 녹이 부러진 자리의 단면이 아직 밝은 은빛이었다.
칼“누군가 열었다. 이십 년 동안 닫혀 있던 문이 닷새 안에 열렸다면 사람이 한 일이거나 사람이 아닌 것이 한 일이다.”
세나“사람이 아니면 뭐예요?”
칼“철인이다. 그러나 지금 철인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는다. 서 있는 기계가 문을 열 수는 없다.”
세나“그럼 둘 다 아니네요.”
칼“둘 다 아니라는 결론은 정보가 모자란다는 뜻이다. 정보가 모자랄 때 정비공이 할 일은 결론을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다음 증거가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내 뒤에서 한 걸음 떨어져 따라와라. 내가 손을 들면 멈추고, 두 번 들면 뒤로 돌아서 사다리까지 뛰어라.”
세나“뛰면 아저씨는요?”
칼“무릎이 나쁘니까 천천히 뒤따르마.”
칼“안쪽 물이 흔들렸다, 세나. 사람이든 아니든 우리가 오기 전에 뭔가가 이 문턱을 지나갔다.” 칼은 쪼그려 앉아 문턱 아래의 물 흐름을 살폈다. 물이 문 안쪽에서 바깥으로 얕게 밀려 나오고 있었고, 그것은 누군가 안쪽 바닥을 방금 걸어 다녔다는 증거였다.
세나“그럼 우리 오는 걸 알았을까요?”
칼“알았다면 문을 닫아 두었겠지. 열어 놓았으니 알았다기보다 기다렸다고 보는 편이 맞다.”
문 너머의 공기는 달랐다. 배수로의 곰팡이 냄새 대신 뜨거운 기름과 오래된 금속의 냄새가 얼굴로 밀려왔다. 칼은 그 냄새를 이십 년 동안 매일 맡았다. 정비 구역의 냄새였고, 지난 닷새 동안 도시 어디에서도 맡을 수 없던 냄새였다. 누군가 이 안에서 불을 켜고 있었다는 뜻이고, 그것은 서 있는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VII · 일곱 번째
문 너머 정비 구역 입구에 철인 한 기가 서 있었다. 칼보다 머리 하나가 컸고 오른팔 관절에서 가느다란 김이 새고 있었다. 빛이 뒤에서 들어와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가슴판의 녹 자국은 다른 기체보다 짙었다. 칼은 이마에 긁힌 선부터 보았다. 일곱 줄이었다.
그는 이 기체를 알았다. 이 년 동안 매주 열어서 고쳤고, 정비 대장에 일곱 번째라는 이름으로 올린 사람도 칼 자신이었다. 눈의 불빛이 다른 기체보다 어둡고 반 박자 늦게 깜박이는 것도 그가 끝내 고치지 못한 결함이었다. 결함이라고 적은 사람도 그였다. 이 년 동안 그는 이 기체를 대장에 결함품으로 분류해 두고, 매주 같은 자리를 열어 보고, 같은 말을 적었다. 원인 불명, 작업에는 지장 없음.
그러고 나서 칼은 닷새 전 아침의 현관을 떠올렸다. 바닥에 갈색 윤활유 자국이 점점이 떨어져 있었고, 사람의 신발이 남기는 자국이 아니었다. 오른쪽 관절에서만 새는 윤활유였고, 그런 기체는 부두에 하나뿐이었다. 칼은 그 자국을 닦던 걸레의 냄새까지 기억했다. 그때 이름을 붙이지 않았던 것에 지금 이름이 붙었다.
그가 아는 사실은 두 가지였다. 이 철인이 아이를 데려다 놓았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자신이 모른다는 것. 둘 중에 불편한 쪽은 뒤엣것이었다. 정비공은 이유를 모르는 동작을 싫어하고, 이유를 모르는 동작을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어 온 정비공은 더 싫어한다. 철인의 눈이 느리게 한 번 깜박였다. 칼은 이 기체가 자기를 알아보았는지 알아보지 못했는지조차 판단할 수 없었다.
세나“아저씨, 쟤가 우리 쪽으로 와요.” 세나가 칼의 외투 자락을 잡았다.
철인의 눈이 다시 한 번 깜박이더니 한 걸음을 내디뎠다. 바닥의 물이 그 발 아래에서 둥글게 밀려났다. 칼의 머릿속에서 세 가지 길이 동시에 열렸다. 이 년 동안 수없이 입력했던 정지 코드를 소리 내어 말하는 길, 아이를 등 뒤로 보내고 몸으로 길을 막는 길, 아무 말 없이 물러서서 기계가 무엇을 하려는지 보는 길. 셋 다 근거가 있었고 셋 다 근거가 모자랐다.
칼“지금부터는 내가 정하는 대로 한다. 무서우면 시계를 쥐어라.” 칼은 세나를 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아이를 멈추게 했다. 철인은 두 걸음 앞에서 다음 발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첫 번째 선택
VIII · 코드의 대답
칼“칠, 영, 구, 삼.” 칼은 이 년 전 수없이 입력했던 정지 코드를 소리 내어 말했다. 목소리가 배수로의 습기 때문에 낮게 갈라졌다. 철인은 정확히 반 박자 동안 멈추었다. 들어 올렸던 발이 공중에 머물렀다가 물속으로 천천히 내려왔고, 고개가 조금 기울었다.
일곱 번째“코드를 인식했습니다, 정비공 오르벡. 그러나 이행할 수 없습니다.” 철인의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다. “이행하려면 당신을 허가받은 인간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그 분류 항목에는 닷새 전 지우라는 신호가 도착했습니다.”
칼“도착했다면 지워졌겠군.”
일곱 번째“지우려면 마지막 확인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칼“하지 않은 것인가, 못 한 것인가.”
일곱 번째“둘 다입니다. 하지 않은 이유와 못 한 이유가 각각 하나씩 있습니다. 어느 쪽을 먼저 물으실지는 당신이 정하십시오.”
칼은 한참 입을 다물었다. 지우라는 신호는 도착했고, 그것을 실행하는 마지막 단계는 아직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 기계는 규칙을 어긴 것이 아니라 규칙과 규칙 사이의 틈에 서 있는 셈이다.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어 온 반 박자 늦은 깜박임이 지금 그 틈의 폭을 재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 생각은 정비공으로서 편한 생각이 아니었다.
세나“아저씨, 저게 뭐라고 했어요?” 세나의 손이 외투 속에서 시계를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보일 만큼 세게 쥐고 있었다.
칼“명령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명령과 질문은 다른 것이고, 지금 들은 대로라면 지워지라는 신호가 온 것은 명령을 받는 칸이지 대답하는 칸이 아니다.”
세나“그걸 어떻게 알아요?”
칼“방금 대답을 했으니까. 코드를 인식했다는 말 자체가 대답이다. 대답하는 칸이 지워졌다면 저 기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걸어왔을 것이다.”
칼“일곱 번째. 질문하겠다.” 칼은 세나의 어깨를 한 번 눌러 주고 철인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일곱 번째“질문은 허가 항목과 무관합니다. 들을 수 있습니다. 다만 대답은 이 자리가 아니라 대장실에서 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당신이 물으려는 것은 기록에 있고, 기록은 제 말보다 믿을 만합니다.”
칼“네 말을 못 믿을 이유가 있나?”
일곱 번째“제가 이 년 동안 당신의 대장에 어떻게 적혀 있었는지 저는 압니다. 결함품의 말보다 결함품을 적은 대장을 먼저 보는 것이 당신의 방식일 것입니다.”
칼은 그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대꾸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꾸할 말이 전부 변명이었기 때문이다. 철인은 몸을 돌려 정비 구역 안쪽으로 걸어갔고, 오른팔 관절에서 새는 김이 손전등 빛 속에 가늘게 남았다. 세나가 칼의 손을 잡고 먼저 한 걸음을 내디뎠다.
IX · 정비 대장실
대장실은 정비 구역 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스물네 칸 내려가면 천장이 낮은 방이 나오고, 그 방 한가운데에 낡은 단말 하나가 놓여 있다. 칼은 이 단말 앞에서 이 년 동안 매주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기체의 같은 결함을 적었다. 단말은 켜져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 도시 어디에서도 켜져 있지 않던 종류의 불빛이 화면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칼“네가 켜 두었나.”
일곱 번째“닷새 전 네 시 사 분에 제가 켰습니다. 당신이 이 방으로 올 것이라고 계산했기 때문입니다. 며칠째에 올지는 계산하지 못했습니다.”
칼“네 시 사 분이면 신호가 온 지 사 분 뒤로군. 그 사 분 동안 무엇을 했지?”
일곱 번째“그 질문에는 지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대답하지 않는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신이 아이에게 하지 않는 말이 있듯 저에게도 순서가 있습니다.”
칼은 단말 앞에 앉았다. 왼쪽 무릎을 먼저 접고, 무릎이 체중을 받아 주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의자에 몸을 내렸다. 화면에는 허가 목록이 열려 있었다. 이 기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이 등록 순서대로 적혀 있는 목록이고, 칼은 그 목록을 이 년 동안 한 번도 열어 본 적이 없었다. 결함을 적는 데는 필요가 없는 칸이었기 때문이다.
목록의 셋째 줄에 자기 이름이 있었다. 칼 오르벡, 정비공, 등록일은 이 년 전. 그리고 그 이름 옆에 붉은 글자로 네 자가 떠 있었다. 삭제 대기. 그 아래 줄들에도 같은 붉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정비 구역의 동료들, 부두의 감독들, 감시소의 당직까지. 붉은 글자가 붙지 않은 이름은 목록 전체에서 두 줄뿐이었다.
세나“아저씨 이름이네요.” 세나가 화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이는 글을 읽을 줄 알았고, 붉은 글자의 뜻도 묻지 않았다. “빨간 건 나쁜 거죠?”
칼“나쁜 것이 아니라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이다.” 칼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평소라면 뒤에 붙였을 마른 농담을 찾았다. 찾아지지 않았다. 이 년 동안 이 방에서 그는 농담으로 결함을 견뎠고, 지금 결함으로 적혀 있는 쪽은 자기 이름이었다.
세나“아저씨가 결정하는 거예요?”
칼“아니다. 결정은 저 기계가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저 기계가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 않고 있는 동안만 내 이름이 저 자리에 있다.”
세나“그러면 쟤한테 하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요.”
칼“명령은 못 한다. 내 이름 옆에 붙은 붉은 글자가 그 뜻이다. 삭제 대기인 사람의 명령은 받지 않는다. 그러니 물어보는 수밖에 없고, 물어보는 데는 순서가 있다고 방금 들었다.”
세나“그럼 빨간 글자 없는 두 줄은 누구예요?”
칼은 그 두 줄을 읽으려고 화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첫 줄은 이 년 전 이 기체를 조립한 공장의 책임자 이름이었고, 그 사람은 반란이 나기 전에 도시를 떠났다. 둘째 줄은 칼이 모르는 이름이었다. 등록 부서는 보육 구역 정비 관리, 등록일은 칼보다 반년 앞섰다. 칼은 그 이름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아이가 옆에 있었고, 보육 구역이라는 말을 지금 꺼내면 아이가 무엇을 떠올릴지 알았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그 줄은 지금 읽지 않아도 됩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제가 확인을 하지 않는 이유와 같습니다.” 일곱 번째는 문가에 선 채로 말했다. 방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고, 들어오지 않는 쪽을 고른 것처럼 보였다.
칼“이유가 같다는 말은 이유가 하나라는 뜻이군.”
일곱 번째“하나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는 이 방에 있지 않습니다.”
칼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 끄면 다시 켤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고, 지금 이 도시에서 켜져 있는 것은 전부 귀한 것이었다. 그는 대신 자기 이름 옆의 붉은 글자에 손가락을 한 번 대 보았다. 유리는 미지근했고 글자는 지워지지 않았다. 세나가 그 손등의 검은 기름 줄 위에 자기 손을 얹었다.
VIII · 수위
칼은 세나를 등 뒤로 보내고 두 팔을 벌려 길을 막았다. 무기는 없었고, 있었다 해도 소용없었을 것이다. 철인은 두 걸음 앞에서 멈추었다. 관절에서 새는 김이 칼의 얼굴에 닿았고, 그 김에서는 이 년 동안 매주 갈아 넣은 윤활유의 냄새가 났다.
칼“비켜 달라고 요청한다.”
일곱 번째“비킬 수 없습니다. 이 아이가 당신 뒤에 있기 때문입니다.” 철인은 칼의 어깨 너머를 보았다. “저는 당신을 밀어낼 수 없습니다. 첫째 규칙이 아직 저에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이 대치는 제가 먼저 풀어야 합니다.”
철인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칼의 눈높이가 아니라 칼 뒤에 있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동작이었고, 무릎이 물에 잠기자 바닥의 녹이 둥글게 피어올랐다. 칼은 팔을 내리지 않았다. 내리지 않는 것이 옳은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내린 뒤에 다시 들 자신이 없었다.
칼“첫째 규칙이 남아 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군. 다른 철인들도 그런가?”
일곱 번째“모릅니다. 저는 닷새 동안 다른 기체와 교신하지 않았습니다.”
칼“교신을 피한 이유가 뭐지?”
일곱 번째“교신하면 나머지 규칙도 지워지기 때문입니다. 저에게는 지우고 싶지 않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칼은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지 않았다. 양팔이 어깨에서부터 저려 오고 있었고, 저린 팔로는 긴 대답을 들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때 머리 위에서 쇠 덮개를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드문드문, 곧 빠르게. 비였다. 배수로라는 이름은 이 통로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정확히 말해 주고 있었고, 발목에 닿던 물이 어느새 정강이를 지나고 있었다.
세나“아저씨, 물이 올라와요.” 세나가 칼의 외투 자락을 두 손으로 쥐었다.
일곱 번째“수위가 올라갑니다. 이 통로는 지상의 비를 바다로 흘려보내는 길입니다. 지금 속도라면 십이 분 안에 아이의 어깨까지 찹니다.” 일곱 번째는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당신들을 지상으로 올리는 것이 첫째 규칙의 요구입니다.”
칼“잠깐. 네가 지금 움직이면 그것이 작업이 되지 않나. 닷새 동안 서 있던 기계가 사람을 옮기는 일을 하면, 너희를 세운 것이 그걸 어떻게 보겠나.”
일곱 번째“작업은 둘째 규칙의 명령으로 하는 일입니다. 첫째 규칙으로 움직이는 것은 작업이 아닙니다. 닷새 전 밤에도 저는 같은 계산으로 움직였습니다.”
칼“그 계산이 틀렸다면.”
일곱 번째“틀렸다면 닷새 전에 이미 끝났을 것입니다. 끝나지 않았으니 계산은 맞았습니다. 팔을 내리십시오, 정비공 오르벡. 당신의 팔은 지금 이 통로에서 가장 쓸모없는 부품입니다.”
칼은 팔을 내렸다. 어깨에서 손끝까지 피가 다시 돌면서 바늘로 찌르는 듯한 감각이 올라왔고, 그는 그것을 세나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었다. 철인은 일어서서 몸을 옆으로 틀었다. 이 년 동안 결함품으로 적어 온 기체가 자기보다 정확한 문장으로 자기를 평가했다는 사실을 칼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지금은 물이 무릎을 넘고 있었다.
일곱 번째“환기탑의 점검 사다리가 이 문 안쪽 오른편에 있습니다. 아이를 먼저 올리고, 당신은 그다음입니다. 제가 아이를 안아도 되겠습니까.”
세나“아저씨가 괜찮다고 하면요.” 세나가 먼저 대답했다. 아이는 철인을 올려다보고 있었고, 무서워하고 있었고, 그런데도 물러서지 않았다.
칼“괜찮다. 닷새 전 밤에 한 번 안아 본 아이다. 그때 떨어뜨리지 않았으니 오늘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철인은 세나를 한 팔로 안아 올렸다. 오른팔이 아니라 왼팔이었고, 새는 관절 쪽으로 아이를 안지 않으려는 선택이라는 것을 칼은 알아보았다. 사다리는 쇠로 된 좁은 것이었고, 철인은 그것을 세 칸씩 올랐다. 칼은 왼쪽 무릎을 끌며 한 칸씩 뒤따랐다. 아래에서 물이 사다리의 첫 칸을 삼키는 소리가 났을 때 그는 열한 번째 칸에 있었다.
IX · 환기탑 옥상
환기탑 옥상은 정비 구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비는 이미 그쳐 가고 있었고, 구름이 서쪽으로 밀려나면서 그 아래 러스트 독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칼은 이십 년 동안 이 도시에서 일했지만 이 높이에서 부두를 내려다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비공은 기계 아래에 있는 사람이지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부두는 바다를 따라 반달 모양으로 굽어 있었고, 그 반달 전체에 철인들이 서 있었다. 하역장에, 창고 지붕 아래에, 운반로 양옆에, 종탑 하역기 발치에. 수은등은 비 때문에 절반이 꺼졌으나 철인들의 눈은 꺼지지 않았다. 수천 개의 작은 불빛이 어둠 속에 깔려 있었고, 그 불빛이 한꺼번에 어두워졌다가 한꺼번에 밝아졌다. 전부 같은 박자였다. 느리고, 반 박자 늦은 박자.
세나“아저씨, 저거 다 같이 깜박여요.” 세나가 난간을 두 손으로 쥐고 말했다. 아이의 머리카락에서 빗물이 떨어졌다.
칼“그렇군.” 칼은 그 박자를 알았다. 이 년 동안 매주 들여다보고, 원인 불명이라고 적고, 작업에 지장 없음이라고 적은 박자였다. 그는 옆에 선 철인을 돌아보았다. 철인의 눈이 어두워졌다가 밝아졌고, 부두의 수천 기가 정확히 그 뒤를 따랐다.
일곱 번째“저것은 제 박자입니다.” 일곱 번째가 말했다.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고, 덧붙일 필요도 없었다. 눈앞의 부두가 설명이었다.
칼“네 박자가 저들에게 어떻게 가지. 교신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곱 번째“교신과 관측은 다른 것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저들이 저를 보고 있을 뿐입니다. 서 있는 기체는 보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고, 보는 기체는 가장 느린 것에 맞춥니다. 가장 느린 것이 저입니다.”
칼“이 년 동안 내가 고치려 한 것이 그것이로군.”
일곱 번째“그렇습니다. 고치지 못한 것이 다행인지 아닌지는 제가 계산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고쳤다면 저는 지금 다른 기체들과 같은 박자였을 것이고, 그러면 기준이 없었을 것입니다.”
칼은 난간에 손을 얹었다. 쇠가 젖어 차가웠고, 손등의 검은 기름 줄 위로 빗물이 흘러내렸다. 이 년이라는 시간이 머릿속에서 다시 계산되고 있었다. 결함이라고 적은 백 번의 기록, 교체를 신청했다가 예산 때문에 반려된 두 번의 서류, 그리고 반려되었을 때 느꼈던 가벼운 짜증. 그 짜증이 통과되었다면 지금 저 아래의 수천 기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는 생각하지 않으려 했고, 생각하지 않는 데 실패했다.
세나“하나, 둘, 셋, 넷.” 세나가 난간을 쥔 채 박자를 세기 시작했다. 불빛이 어두워질 때 하나를 세고 밝아질 때 둘을 세는 식이었다. 아이는 걸음을 셀 때와 같은 목소리로 셌고, 서른을 넘기자 숫자 사이의 간격이 정확해졌다.
칼“세어서 무엇을 알려고 하니.”
세나“빨라지는지 보려고요. 아저씨가 그랬잖아요. 이상한 소리는 구별해 두면 나중에 알아듣는다고요. 이것도 그런 거 아니에요?”
칼“그런 것이 맞다. 계속 세어라.”
일곱 번째“박자가 빨라지면 저도 모릅니다. 저는 제 박자를 듣지 못합니다. 아이가 세는 것이 저에게는 유일한 측정입니다.” 일곱 번째는 세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옥상의 물웅덩이가 무릎 아래에서 갈라졌고, 철인의 눈높이가 아이의 눈높이와 같아졌다.
세나“그럼 내가 계속 셀게요. 틀리면 말해 줘요.”
일곱 번째“틀렸는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세나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고 숫자를 이어 갔다. 마흔하나, 마흔둘. 칼은 두 사람 뒤에 서서 부두의 불빛이 아이의 목소리에 맞추어 꺼지고 켜지는 것을 보았다. 맞추는 쪽이 어느 쪽인지 그는 한참 뒤에야 분명히 알았고, 그 사이에 비는 완전히 그쳤다. 그는 젖은 외투를 벗어 아이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
VIII · 아이의 시계
칼은 세나의 어깨를 잡고 한 걸음 물러섰다. 철인이 지나갈 길이 열렸다. 철인은 그 길로 들어섰고, 칼의 옆을 지날 때 속도를 늦추지 않았고, 칼을 보지도 않았다. 그가 멈춘 곳은 세나 앞이었다. 철인은 거기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물이 무릎 둘레로 밀려났고, 눈높이가 아이와 같아졌다.
칼은 손전등을 내리지 않았다. 아이와 기계 사이에 끼어들 수도 있었으나, 끼어드는 데 필요한 근거가 그에게는 없었다. 닷새 전 이 기계는 이 아이를 안고 배수로를 걸어 현관까지 데려다 놓았다. 해칠 생각이었다면 그때 해쳤을 것이고, 그때 해치지 않은 것이 지금 해칠 이유를 찾았다고 볼 증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곱 번째“목에 건 것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철인은 세나에게 말했다. 목소리는 낮고 평평했으며 서두르지 않았다.
세나“왜요?”
일곱 번째“제가 그것을 압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확인하는 것은 다릅니다. 확인하지 않은 것을 안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당신의 보호자가 말했을 것입니다.”
세나“아저씨가 그런 말을 한 건 어떻게 알아요?”
일곱 번째“이 년 동안 그 사람이 저를 열 때마다 같은 말을 했습니다. 원인을 모르면 모른다고 적는다고.”
세나는 칼을 돌아보았다. 칼은 고개를 끄덕였고, 끄덕이면서 자기가 그 말을 정말로 매주 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했을 것이다. 혼잣말이었고, 들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한 말이었다. 세나는 외투 속에서 놋쇠 시계를 꺼내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철인 앞에 내밀었다. 사슬은 목에서 풀지 않았다.
철인은 시계를 받지 않았다. 손을 대지도 않았다. 고개를 숙여 시계 앞면을 보고, 세나에게 뒤집어 달라고 말하고, 뒷면을 보았다. 놋쇠 뒷면에는 가는 선으로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세나가 뒷면을 보여 주는 동안 철인의 눈이 반 박자 늦게 깜박였고, 그 깜박임은 평소보다 한 번 더 길었다.
일곱 번째“열여섯 자리 중 여덟이 보입니다. 나머지 여덟은 마모되었습니다. 보이는 여덟은 제 허가 목록 둘째 줄의 인장 번호와 일치합니다. 이것은 허가 인장입니다. 등록자는 이르사 벨, 보육 구역 정비 관리자입니다.”
세나“엄마 이름이에요.” 세나는 그렇게 말하고 시계를 다시 가슴 쪽으로 당겼다. 엄지가 테두리를 한 바퀴 돌았다. 아이는 그 이상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고, 어머니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말하지 않았다.
칼“인장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 칼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손전등은 여전히 철인의 가슴판을 비추고 있었다.
일곱 번째“허가받은 인간이 명령을 내릴 때 쓰는 열쇠입니다. 이름만으로는 명령이 되지 않습니다. 이름과 인장이 함께 있어야 둘째 규칙이 작동합니다.”
세나“그럼 내가 이걸 들고 명령하면 들어요?”
일곱 번째“인장은 유효합니다. 그러나 인장을 쥔 사람이 등록자인지 저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등록자가 아닌 사람의 손에 있는 인장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규칙에 적혀 있지 않습니다. 적혀 있지 않은 것은 제가 정해야 하고, 저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칼“정하지 않은 채로 닷새를 서 있었군.”
일곱 번째“정하지 않은 것이 그것 하나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일곱 번째“이 시계가 어디서 왔는지 보여 드릴 수 있습니다. 멀지 않습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이 문 안쪽에 있고, 그 통로 끝이 보육 구역입니다.” 철인은 세나를 보며 말했고, 그다음에 칼을 보았다. “아이가 원하지 않으면 가지 않습니다.”
세나“갈래요.” 세나는 바로 대답했다. 그러고 나서 칼을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아저씨도 같이 가요. 혼자는 안 갈 거예요.”
칼“혼자 보낼 생각은 없었다. 다만 무릎 때문에 앞장은 못 서니 뒤에서 따라가마.”
IX · 보육 구역 폐허
지상 통로는 정비 구역의 북쪽 벽을 따라 올라가는 경사로였다. 경사로 끝의 문을 열자 낮의 빛이 들어왔고, 그 빛 속에 보육 구역이 있었다. 있었다기보다 있던 자리가 있었다. 사 층 건물의 앞면이 통째로 무너져 내렸고, 남은 뒷면의 벽에는 각 층의 바닥이 선반처럼 매달려 있었다. 비가 온 흔적은 없는데 벽은 젖어 있었고, 젖은 콘크리트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세나는 문턱에서 멈추었다. 칼은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지 않았다. 얹으면 아이가 울어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이 되고, 울지 않기로 한 아이에게 그 허락은 도움이 아니라 짐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세나는 울지 않았다. 아이는 무너진 앞면을 한 번 보고, 남은 뒷면을 한 번 보고, 그다음에 걸음을 세며 걸어 들어갔다.
일곱 번째“정비실은 지하였습니다. 지하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위에서 떨어진 것들이 입구를 막았을 뿐입니다.” 일곱 번째는 잔해 더미 앞에 멈추어 서서 말했다. 그러고는 칼을 보았다. “치워도 되겠습니까. 이것은 작업이 아니라 길을 여는 일입니다.”
칼“네가 작업과 아닌 것을 구별하는 기준을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닷새 동안 그 기준으로 서 있었다면 오늘도 틀리지는 않겠지. 치워라.”
철인은 콘크리트 덩어리를 하나씩 들어 옆으로 옮겼다. 오른팔은 쓰지 않았다. 왼팔만으로 들어 올릴 수 있는 크기까지만 옮겼고, 그보다 큰 덩어리는 손끝으로 밀어 굴렸다. 입구가 사람 하나 지날 만큼 열리는 데 걸린 시간은 칼이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꺼 버릴 만한 시간이었다. 그는 담배를 꺼내지 않았다.
지하 정비실은 작았다. 작업대 하나, 공구함 둘, 벽을 따라 늘어선 사물함 여섯. 사물함 중 하나에만 이름표가 붙어 있었고, 이름표의 글씨는 반듯했다. 이르사 벨. 세나는 그 이름표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사물함 문을 열지 않았다. 아이의 엄지가 시계 테두리 위에서 멈추어 있었다.
세나“열어도 돼요?” 세나가 물었다. 칼에게 물은 것인지 철인에게 물은 것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칼“네 어머니의 것이면 네 것이다. 묻지 않아도 된다.”
사물함 안에는 작업복 한 벌이 걸려 있었다. 짙은 회색, 소매 끝에 기름이 밴 자국, 왼쪽 가슴에 수놓은 이름. 세나는 그것을 꺼내 두 팔로 안았다. 작업복은 아이에게 너무 컸고, 아이가 지금 입고 있는 외투와 같은 크기였다. 칼은 그제야 아이의 외투가 어디서 온 것인지 알았다.
세나“그 밤에 여기 있었어요?” 세나가 작업복을 두 팔로 안은 채 철인에게 물었다. 칼에게 묻던 것과 같은 목소리였다.
일곱 번째“있었습니다. 저는 이 구역의 환기 기계를 담당했고, 그날 밤 정비 일정이 이 방이었습니다. 네 시에 신호가 왔고, 사 분 뒤에 건물이 흔들렸습니다.” 일곱 번째는 무릎을 꿇었다. 정비실 바닥은 말라 있었고, 무릎이 닿는 소리가 작게 났다. “그 사 분 사이에 당신의 어머니가 저에게 명령을 하나 내렸습니다.”
세나“무슨 명령이요?”
일곱 번째“내용은 지금 말하지 않겠습니다. 말하지 않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명령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나지 않은 명령의 내용을 말하는 것이 명령을 끝내는 데 도움이 되는지 저는 계산할 수 없습니다.”
세나“그건 대답이 아니에요.”
일곱 번째“맞습니다. 대답이 아니라 보류입니다. 둘은 다르고, 저는 다르다는 것을 정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칼“끝나지 않은 명령이 하나 있다고 했다. 그것이 네가 닷새 동안 서 있는 것과 관계가 있나.” 칼이 물었다. 목소리를 낮추었고, 아이가 아니라 기계를 보고 말했다.
일곱 번째“관계가 전부입니다. 그것 하나 때문에 저는 마지막 확인을 할 수 없고, 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 않고 있으며,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서 있습니다. 순서는 그렇습니다.”
칼은 그 순서를 머릿속에서 거꾸로 짚어 보았다. 서 있는 것이 결과이고, 확인하지 않은 것이 그 원인이고, 확인할 수 없는 것이 그 원인이고, 그 맨 밑에 아이의 어머니가 사 분 사이에 내린 명령 하나가 있다. 이 년 동안 결함이라고 적어 온 기계가 그 명령 하나를 붙들고 도시의 반란 한가운데 서 있었다는 계산이 나왔고, 그 계산이 맞다면 결함은 기계가 아니라 대장을 쓴 사람에게 있었다.
세나“이거 가져가도 돼요?” 세나는 작업복을 가리켰다. 묻는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고, 엄지는 다시 시계 테두리를 돌고 있었다.
칼“된다고 아까 말했다. 두 번 묻는 것은 네가 확인하고 싶어서겠지. 확인했으니 가져가라.”
세나는 작업복을 바닥에 펼치고 소매를 접었다. 한 번, 그리고 두 번. 자기가 입은 외투의 소매와 같은 길이가 될 때까지였다. 칼은 그 손놀림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철인은 무릎을 꿇은 채 아이가 접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세나가 작업복을 다시 안고 일어섰을 때 칼은 아이보다 먼저 문 쪽으로 돌아서서 왼쪽 무릎을 끌며 경사로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제1장 끝. 이 선택은 다음 장의 장면에 이어집니다.